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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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무기 NO, 한국산 YES…동남아에 ‘K방산’이 분다 [박종현의 아세안 코너]

러시아, 무기수출·외교 분야 위상약화
“러시아 동남아 무기수출 빈자리는 한국이 메워”
러시아·미얀마 무기·천연가스 거래로 돈독
미얀마 “근거리 중국은 못 믿어도, 러시아는 신뢰”

러시아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우크라이나전쟁으로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국제사회의 주요 세력으로부터 배척받고 있다. 자연스럽게 무기수출도 줄고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전투에서 무기력함을 드러내면서 무기 강국 이미지 타격에도 노출돼 있다.

러시아가 L-39 알바트로스 훈련기를 대체할 목적으로 개발한 야코블레프 Yak-130. 야코블레프 Yak-130는 쌍발 엔진을 탑재한 차세대 훈련기로 미얀마 군사정부가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러시아의 무기 경쟁력 약화…동남아 수입감소·미얀마는 예외

 

러시아는 그동안 무기수출을 통해 주요 외교정책의 면모를 드러내 왔다.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부터는 상황이 변했다는 분석이 잊을만 하면 보도되고 있다. 단적으로 최근 이코노미스트는 ‘동남아에서 러시아 무기의 공백을 한국 무기가 메우고 있다’는 내용을 게재했다. 스웨덴 싱크탱크인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의 분석을 인용해, 방위산업 분야 수출 강국인 한국이 동남아 지역의 최대 무기 공급자로 역할을 키우고 있다고 전한 것이다.

 

앞서 지난해 11월엔 미국 뉴욕타임스(NYT)가 무기 수출 분야에서 세계 2위의 위상을 지켜왔던 러시아가 동남아 지역을 비롯해  곳곳에서 무기 수출 감소를 경험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런 흐름과 관련해, 싱가포르 ISEAS-유소프 이샥 연구소의 이안 스토리 연구원은 당시에도 “무기 수출 강국의 입지가 훼손된 러시아가 이전의 위상을 회복하기는 장기적으로도 힘들 것”이라고 단언했다.

 

동남아 지역의 러시아 무기에 대한 수입 감소는 러시아 방산업체의 경쟁력 약화가 큰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러시아 방산업체들은 자국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 때문에 첨단기술 제품 확보에 애로를 겪고 있다. 이런 점은 필연적으로 무기 완제품 생산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와 함께 우크라이나전쟁에 개입하지 않고, 중립 입장을 견지하려는 동남아 국가들 입장도 러시아 무기 수입을 주저하게 만들고 있다.  

미얀마 군사정권을 이끄는 민 아웅 흘라잉 최고사령관이 1월 31일 미얀마 네피토에서 열린 국가방위안보위원회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네피도=AP연합뉴스

◆러시아·미얀마 무기·원유 거래 ‘윈윈관계’

 

동남아에 대한 러시아의  존재감 약화 와중에도 예외인 나라도 있다. 미얀마가 예외인 나라다. 러시아·미얀마 관계에 배경은 있다. 미얀마 군사정부의 정통성 결여와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등 국제사회의 제재로 어려운 상황에 놓인 군정의 한계 등이 작용했다. 미얀마에서는 2021년 2월 군사쿠데타로 군정 사태가 이어지고 있다. 이로 인해 국제사회의 제재 강도가 높아지고 있다. 미얀마에서는 군사쿠데타 이후 120만 명이 넘는 주민이 이재민으로 전락하고, 2010년대 일시적으로 진행됐던 민주화 과정이 중단됐다. 쿠데타 이후 미얀마 군정은 인권유린과 군부통치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판을 받고 있다. 이에 아랑곳없이 러시아는 중국과 미얀마 군정을 지지하고 있다. 

 

최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러시아가 미얀마 군정에 무기를 공급하면서 미얀마 정세 악화를 조장하고 있다는 게 미국 정부의 판단이다. 동남아 지역을 순방하고 있는 데릭 숄레이(Derek Chollet) 미국 국무부 고문은 “미얀마 군정에 군사적 지원을 지속하면서 사태를 악화시키는 러시아의 행태는 용인될 수 없다”며 “이런 사태 악화는 미얀마는 물론 동남이 지역 전체적으로도 문제로 작용한다”고 강조했다. 숄레이 고문은 “최근 수년 동안 러시아와 미얀마는 지속적으로 군사적 관계를 강화해 왔다“며 “러시아의 무기들이 미얀마로 흘러들어가는 것은 우려스러운 대목”이라고 설명했다.

 

미얀마와 러시아는 2021년 쿠데타 발발 이후 서구의 제재가 강화되면서 밀착해 왔다. 미국 고위인사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러시아가 미얀마 군정에 정치적·군사적 지원을 이어온 것을 잘 알려진 사실이다. 러시아의 일방적 지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양국 관계는 외형적으로는 상부상조의 형식을 갖췄다. 미얀마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비판하는 국가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않았으며, 러시아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미얀마 제재 의결에 반대해 왔다. 미얀마 군정의 최고사령관 민 아웅 흘라잉은 쿠데타 이후 수차례 러시아를 방문했으며, 러시아에서 명예박사 학위도 수여했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미얀마 사태를 동남아 지역의 가장 큰 위협 요인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게 슐레이 고문의 설명이다.

태국 거주 미얀마 교민들이 2월 1일 방콕 주재 미얀마대사관 앞에서 저항을 뜻하는 손가락 3개를 펼친 채 군부 정권에 항의하고 있다. 방콕=AP연합뉴스

◆“베트남, 러시아 의존 탈피 수십 년 걸릴 것”

 

러시아의 미얀마 무기 수출이 용이한 것은 아니다. 국제사회의 제재와 달러화 결제 등으로 무기거래 자체도 쉽지 않다. 그럼에도 러시아는 미얀마 군정의 장기적 안정화가 자국 이익에 부합된다고 판단하고 있다. 미얀마 군정으로서도 중국보다는 러시아가 덜 부담스러운 존재이다. 중국은 미얀마 군정에 대해서 비판을 하지 않고 있지만, 미얀마 군정으로서는 역사적 관계가 복잡한 중국을 무작정 가까운 상대로 삼기엔 부담이다. 러시아는 미얀마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차후 내정 간섭 가능성도 별로 없는 나라이다. 그런 점에서 러시아·미얀마 관계는 중국·미얀마 관계보다는 더 단단해 보인다.

한 방문객이 21일 미얀마 샨주 타웅기 인근의 카쿠 파고다 옆을 걸어가고 있다. 양곤=AFP연합뉴스

미얀마의 러시아 의존과는 달리, 다른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등 다른 동남아 국가들은 한국 방산업체와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러시아 무기의 주요고객이었던 베트남도 무기체계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그동안 소련·러시아 생산 무기를 기준으로 방위체제를 구축해 왔기에 한국이나 서방 무기로 급작스럽게 전환하면 호환성에 문제가 생길 수는 있다. 싱가포르 소재 제인연구소 군사연구원 리즈완 라흐마트는 “베트남은 서방 무기체제로 전환으로 방향을 잡았지만, 이 전환에는 수십 년이 걸릴 것”이라고 예상했다. 


박종현 기자 bali@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