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화기금(IMF)이 올해 한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1.5%로 다시 낮추면서 경기 침체 우려가 더욱 짙어지고 있다. 지난해 10월부터 시작된 수출 감소세, 고금리에 따른 소비 회복세 둔화 등 대내외에 걸쳐 각종 악재가 여전한 데다 세계 경제 회복세마저 주춤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한국 경제 전반에 불확실성이 가중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정부는 상반기에 어려움을 겪다가 하반기에 살아나는 ‘상저하고’ 흐름을 기대하고 있지만 IMF는 내년 한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0.2%포인트 하향 조정하며 경기 반등 역시 제한적일 것임을 시사했다. 올해 세수 결손 가능성이 커지면서 정부가 경기 침체에 대응할 수단도 위축된 터라 경기 둔화의 그늘이 장기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IMF가 11일(현지시간) 내놓은 세계경제전망에 따르면 올해 한국의 성장률 전망치는 1.5%로 1월(1.7%) 대비 0.2%포인트 하락했다. 올해 한국이 잠재성장률(물가 상승을 유발하지 않는 최대 성장률) 수준인 2%대에 이르지 못할 것이란 점을 더욱 명확히 한 것이다. IMF의 전망치는 정부와 한국은행,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예측한 전망치(1.6%)보다 0.1%포인트, 한국개발연구원(KDI) 전망치(1.8%)보다는 0.3%포인트 낮다.
한국의 성장률 전망치가 하향 조정된 데에는 세계 경제 전망이 비관적으로 바뀐 점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지난 1월 IMF는 중국의 리오프닝(경제 활동 재개)에 따른 기대감 등을 반영해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2.9%)를 지난해 10월 대비 0.2%포인트 올려 잡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올해 세계 경제 여건을 ‘험난한 회복과정’(A Rocky Recovery)으로 규정,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8%로 0.1%포인트 내렸다. IMF는 “지난해부터 세계 경제를 괴롭혀 온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경제 분절화 심화, 인플레이션 등 불안 요인이 해결되지 못한 채 최근의 실리콘밸리은행(SVB), 크레디트스위스(CS) 사태 등 금융시장 불안이 확산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중국이 회복하면 한국의 성장률도 덩달아 좋아지는 공식 역시 옛말이 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과거에는 어려움이 있을 때 중국의 성장에 편승해서 극복해왔는데 이 공식이 예전처럼 잘 작동하지 않는다”면서 “대중국 성장 효과가 구조적으로 줄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김경수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금리 인상으로 시민들의 빚이 과다해지면서 재무 건전성이 위협받고 있기 때문에 소비 여력이 떨어진 점도 성장을 잠식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한국의 성장률 하향 전망은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두드러진다. IMF는 이번 전망에서 미국, 영국 등 41개국으로 구성된 선진국 그룹의 올해 예상 성장률을 1.3%로 예측해 지난 1월 전망(1.2%) 대비 상향 조정했다. IMF는 특히 내년 한국의 성장률을 2.4%로 전망, 1월(2.6%) 대비 0.2%포인트 내려 경기 둔화 회복 속도 역시 완만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경기 침체를 예고하는 경고음이 커지면서 통화 당국도 ‘물가 안정’보다는 ‘경기 방어’로 무게 추를 옮기고 있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지난 2월에 이어 이날 기준금리를 현행 3.50%로 두 번 연속 동결했다. 이에 따라 2021년 8월부터 총 10차례 기준금리를 3%포인트 올린 ‘금리 인상기’는 사실상 마무리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기자간담회에서 ‘경기’를 26번 언급하면서 이번 기준금리 동결의 배경에 경기 침체 요인으로 인한 불확실성이 작용했음을 암시했다. 이 총재는 모두발언에서도 SVB 사태, 국내 정보기술(IT) 경기 부진 심화, 산유국 감산 결정 등 우리 경기의 다양한 불확실성 요인을 언급했다. 이 같은 영향으로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도 2월 발표(1.6%)보다 밑돌 것으로 봤다. 이 총재는 다만 연내 금리 인하 가능성에는 “물가 상승률이 (한은의) 중장기 목표로 수렴한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는 금리 인하 논의를 안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며 선을 그었다.
통화 당국이 금리 동결에 나섰지만 향후 경기 전망은 불투명하다. 올해 세수가 당초 전망치(400조5000억원)에 미달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인 만큼 정부 재정으로 경기를 끌어올리기 힘든 데다 미국과의 기준금리 차이도 언제든 부담이 될 수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다음 달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현행 4.75∼5.00%인 정책금리를 추가로 0.25% 인상하면 현행 1.50%포인트(상단 기준)인 한·미 금리 차는 1.75%포인트로 벌어지게 된다. 1.75%포인트 차이는 유례 없는 기록이다. 한·미 금리 차가 확대되면 환율 상승, 외국인 자금 유출 기조가 강해져 금융·외환 시장의 안정을 해칠 수 있다. 하 교수는 “쉬운 일은 아니지만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을 수밖에 없다”면서 “산업정책으로는 그린에너지 전환 및 전략 기술에 투자해야 하고, 무역정책 측면에서는 신시장 개척 등 공급망 재편을 위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