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은 우리 일상생활과 아주 가깝다. 우리가 즐겨 먹는 참치는 90%가 태평양에서 온다. 매년 43만t에 달하는 원양어업 생산량 중에서도 75%가 태평양에서 어획한 것이다. 이 가치는 무려 7500억원에 달한다.
자원이 부족한 우리에게 태평양은 미래 산업에 꼭 필요한 핵심 광물자원의 보고이기도 하다. 우리가 확보하고 있는 11만5000㎢에 달하는 해외 심해저 광물자원 개발 및 탐사 광구 중 10만5000㎢는 태평양에 있다. 여기에는 석유, LNG와 같은 에너지원뿐 아니라 바다의 검은 황금으로 불리는 망간단괴, 해저열수광상 등 중요한 광물자원이 있다.
태평양 섬나라들이 갖고 있는 경제적인 가치도 크다. 태평양에 있는 도서 국가들의 크기는 작지만 배타적 경제수역을 합하면 4000만㎢에 달하는 해양 영토를 보유하고 있다. 그래서 이들을 “푸른 태평양 대륙(Blue Pacific Continent)”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해양 영토는 지구의 20%로 중국, 미국, 유럽 대륙 전체를 합한 것보다도 크다. 핵심적인 해상 통로로서의 가치도 빼놓을 수 없다.
문제는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유지되어 왔던 태평양의 질서가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2차 대전 이후 유엔의 신탁통치를 받던 태평양 3국(팔라우, 미크로네시아 연방, 마셜제도)이 독립한 후에도 미 해군은 1986년 자유연합협정(Compact of Free Association)을 통해 주둔을 이어 가면서 태평양의 경찰 역할을 해 왔다. 그런데 2013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에게 신형대국관계를 요구하면서 “광대한 태평양은 미·중 모두를 포용할 만큼 충분히 넓은 공간”이라고 암시한 이후 상황은 달라지기 시작하였다. 태평양도서국에 물량 공세를 펴는 한편 솔로몬제도 등지에 군사 기지를 건설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일차적으로 태평양도서국에서 대만 수교국 수를 6개에서 4개로 줄였다. 그 결과 현재 전 세계에서 대만 수교국은 15개국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 같은 중국의 태평양 진출은 미국을 위시한 서방 세계의 맞대응을 불러와 평화로웠던 태평양이 전략경쟁의 장이 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한국의 인도태평양(인태) 전략도 태평양도서국을 중요한 협력 대상으로 포함시켰다. 하지만 한국이 태평양에 대해 갖는 전략은 군비 증강과 지역의 전략경쟁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한국의 인태전략은 1982년 유엔해양법협약 채택을 계기로 형성된 국제 해양 질서를 수호하고 기후변화와 같은 지역의 당면 과제 해결에 적극 동참하겠다는 협력의 전략에 가깝다.
특히 한국의 인태전략은 태평양도서국에 대한 각별한 관여와 기여를 천명하였다. 구체적으로 태평양도서국 정상회의에서 채택한 ‘2050 푸른 태평양 대륙 전략’ 이행의 동반자가 되어 기후변화, 보건의료, 해양수산, 재생에너지 문제 등 이들의 수요에 밀착한 협력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이처럼 태평양도서국의 당면 과제를 함께 해결함으로써 선택의 자유(freedom of choice)를 넓힐 수 있도록 돕는 관여는 긍정적이다. 한국은 역량에 부합하는 역할과 기여에 대한 기대를 받고 있는 선진 중견 국가임을 기억하자. 태평양에서 기여 외교를 강조하는 인태전략의 정신을 구현하여 경쟁과 갈등이 아닌 번영을 촉진하는 역할을 한다면 글로벌 중추국가 비전에 한 발 더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이제 한국이 태평양도서국과 최초로 갖는 정상회의가 2주 남짓 앞으로 다가왔다. 윤석열정부 들어 처음으로 개최하는 다자회의이기도 하다. 여러모로 첫 번째 테이프를 끊는 이번 정상회의가 태평양의 질서와 번영이 지니는 의미를 잘 살릴 수 있기를 바란다.
한편 태평양도서국 중 무려 11개 국가가 국제박람회기구(BIE) 회원국이다. 우리의 2030 부산세계박람회 유치에 중요한 협력국이다. 이처럼 국제 행사 유치, 국제기구 진출 등 국제 무대에서 태평양도서국의 지지를 얻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니 오는 29∼30일 개최되는 한·태평양도서국 정상회의에 국민적 관심과 성원을 보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