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총선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14일 치러지는 총선 결과에 따라 향후 태국 자체는 물론 국제사회에 끼칠 영향도 달라질 것이다. 태국 총선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이웃인 아세안(동남국가연합) 회원국 언론의 관심이 커 보인다. 말레이시아 버리타 하리안, 싱가포르 스트레이츠타임스 등 동남아 언론은 다양하게 이번 선거의 의미를 짚었다. 이들 언론이 짚은 단어와 문장으로 태국 총선의 의미를 대별해 본다.
◆2014년 쿠데타 이후 2번째 총선
이번 총선은 2014년 5월 당시 육군 참모총장 쁘라윳 짠오차가 주도한 군부 쿠데타 이후 실시되는 2번째 선거이다. 앞서 쿠데타 이후 첫 선거는 2019년 3월에 치러졌다. 올해 선거는 쿠데타 이후 권력자로 등극한 쁘라윳 총리가 3월 20일 의회를 해산하면서 가능하게 됐다. 선거에서는 하원의원 500명을 선출한다. 후보들은 약 6000명으로 70개 가까운 정당에서 출사표 던졌다. 후보들은 평균 12대 1의 경쟁률을 뚫어야 의사당에 진입하게 된다. 유권자는 태국 전역 77개 지역에 걸쳐 5200만명에 달하며, 투표율은 80%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예상대로라면 역대 최대 투표율 달성도 가능해 보인다.
◆총리는 누가 될 것인가
가장 큰 관심은 역시 차기 총리가 누가 될 것인지에 쏠려 있다. 총리는 의회가 7월 중순 개원하면, 개원 의회에서 며칠 내에 선출될 것으로 예상된다. 총리직을 노리고 있는 정치인은 여럿이다. 집권세력이었던 보수파에서는 한때 동맹을 구축했던 쁘라윳 총리와 쁘라윗 웡쑤완 부총리가 눈에 띈다. 쁘라윳 총리는 2019년엔 보수정당 팔랑쁘라차랏당(PPRP) 후보로 직접 나서서 총리로 선출됐지만, 이번엔 당권투쟁 끝에 팔랑쁘라차랏당을 탈당해 신생 정당 루엄타이쌍찻당(UTN)에 입당했다. 신생정당의 당세는 당연히 약화한 상태다. 팔랑쁘라차랏당 창당 당시 산파역을 했던 쁘라윗 부총리도 총리 자리를 노리고 있다.
보수 성향 후보의 대척점에 있는 군부 연장 반대를 기치로 내걸고 있는 개혁적 정당의 후보들도 눈길을 끈다. 프아타이당의 패통탄 친나왓은 2000년대 초반 태국을 이끌었던 탁신 친나왓 전 총리의 막내딸이다. 패통탄과 지지율 1, 2위를 다투고 있는 피타 림짜른닷은 개혁을 화두로 내건 전진당 후보다. 그는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와 하버드 행정대학원에서 각기 경영학, 공공정책학을 공부했다. 이외에도 여러 명의 후보들이 나서고 있어 향후 선거결과에 따라 연립을 구성할 공간 확보를 노릴 것으로 보인다.
◆쁘라윳과 프아타이당의 대결
보다 선명한 핵심 포인트는 군부가 연장될 것인지, 개혁적 성향의 총리 후보 탄생이 가능할지 여부다. 스트레이츠타임스는 이번 총선을 쁘라윳 총리와 패통탄의 프아타이당의 대결 구도로 설명했다. 2014년 쿠데타 이후 쁘라윳 총리 등 친군부 세력은 탁신 전 총리 및 그와 연관된 정당의 영향력 줄이기에 노력해 왔다.
쁘라윳 총리는 새로운 정당의 후보로 나섰지만, 그는 여전히 보수세력의 지지를 받고 있다. 패통탄의 프아타이당은 탁신 전 총리 영향력을 배경으로 총선 흐름을 주도해 왔다. 탁신 전 총리는 재임 시절인 2006년 군부 쿠데타로 축출됐다가 2008년 부패 혐의 재판을 앞두고 해외로 도피했다. 그는 농민과 도시 빈민층 등을 중심으로 강력한 지지세를 형성했다. 이러한 지지세를 바탕으로 탄식의 여동생인 잉락 친나왓도 2011~2014년 태국 총리로 활동할 수 있었다.
탁신 가문은 그동안 탁신 전 총리 자신과 여동생 외에도 매제까지 3명의 총리를 배출했다. 이러한 배경을 바탕으로 프아타이당은 제1야당으로 사실상 압승을 예고해 왔다. 최근엔 젊은 층을 중심으로 형성된 전진당 지지세로 막판에 흔들리고는 있지만, 총선 이후에라도 범개혁세력 연대의 중심에 자리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의원 선출 방식은
하원의원 500명을 뽑는 이번 총선은 지역구에서 400명, 비례대표로 100명을 뽑는다. 유권자들은 각자 2장의 투표용지를 받아서 한 장은 후보들 중에, 또다른 한 장은 선호 정당을 고르게 된다. 1인 2표 병립형 비례대표제가 적용되는 것이다.
투표는 현지시간으로 오후 5시에 종료된다. 비공식 집계결과는 총선 당일 오후 11시쯤 도출될 것으로 선거관리위원회는 예상하고 있다. 공식 선거결과는 총선 이후 2개월이 되는 7월 13일 이전 발표돼야 한다.
◆총리 선출 방식은
하원의원 전체 500명 중 251명 이상을 배출하면 총선에서 승리했다는 평가를 받게 된다. 그게 집권여당을 곧장 의미하지는 않는다. 총선 승리 여부와 상관없이 다른 정당과 연합해 의원 정원 과반을 점하면 총리를 선출할 수 있다. 선거에 참여하고 있는 정당이 많아서 정부 구성을 확정하기 위해서는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총리가 되기 위해서는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전체 정원의 과반 의석 이상을 확보해야 한다. 하원의원 500명, 상원의원 250명 전체 750명의 과반은 376석이다. 총리가 되기 위해서는 총선 전에 정당의 추천명단에 올라 있어야 한다. 각 정당은 최대 3명까지 총리 후보의 명단을 제출할 수 있다. 총선에서 전체 의석의 5%인 25석을 확보하면 7월 개원 의회에서 총리 후보를 정식으로 낼 수 있다.
상원의원의 절대 지지를 받는 후보가 있다면 상원의원 250명에다가 하원에서는 126명의 지지만 확보하면 된다. 2019년 총선 이후엔 상원의 절대 다수가 쁘라윳 총리를 지지했다.
◆선거의 최대 이슈 ‘민생문제’
총선 유세에서 후보들은 민생 문제를 집중 거론했다. 코로나19 이후 심각해진 인플레이션과 가구 부채 증가 등을 거론하며, 이들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저임금 인상, 부채상환 연장, 농산물 가격 보장 등도 약속했다. 프아타이당은 16세 이상 모든 국민에게 1만 바트 지급 등을 공약으로 제시하며 대중인기에 영합한다는 비판을 야기했다.
야당은 군부연장 타도와 민주정치 복원을 화두로 제시했다. 쁘라윳 총리는 자신을 정치 조정자로 강조했다. 자신을 다른 정당들과 연합해 민주주의를 강력히 지지하는 국가통합을 이뤄낼 적임자로 묘사한 것이다. 전진당 등 개혁 정당들은 군부가 상원의원 250명 임명을 가능하게 했던 2017년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2020년 반정부 시위 이후 첫 선거
이번 총선은 반정부 시위가 강력하게 전개된 2020년 이후 첫 선거이다. 2020년 당시 태국 주요도시의 거리들은 민주화와 군부 통치 종식, 개헌을 요구하는 젊은이들로 가득 찼다. 이들은 자신들의 3대 주장인 민주화·군정종식·개헌을 상징하는 ‘세 손가락’ 시위를 이어갔다. 세 손가락 시위는 인근 동남아 지역에도 영향을 미치며 정치의식 제고의 현상으로 인식됐다. 하지만 쁘라윳 정부의 강경진압과 코로나19 사태 등으로 시위는 잦아들었다. 그럼에도 세 손가락 시위는 태국 현대 정치사를 대표하는 반정부 시위로 평가받았다.
당시 반정부 시위를 주도했던 젊은 유권자들의 표심이 어느 정도 표출될지는 그만큼 관심을 끌고 있다. 젊은 세대의 표심은 일단 개혁정당인 전진당과 프아타이당에 몰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번 총선의 유권자 5200만 명 가운데 Y세대(26~41세)와 Z세대(18~25세)로 불리는 41세 이하 비중이 41%가 넘는 것으로 파악됐다. 태국 언론은 Y세대와 Z세대 유권자 비율이 각기 28,9%와 12.8%에 달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