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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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에 손 내미는 美… 관계 개선보다 ‘디리스킹’에 초점 [특파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7일(현지시간)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대화를 희망한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중국에 손을 내밀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의 방중과 고위급 인사들과의 회담 등을 계기로 중국과의 충돌을 막고 안정적인 소통 채널을 만들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미국이 최근 추진하는 중국으로부터의 위험 제거 또는 위험 줄이기로 풀이되는 ‘디리스킹’(de-risking) 전략의 연장선이기도 하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필라델피아로 이동하는 중에 앤드루스 공군기지에서 기자들과 만나 ‘블링컨 국무장관이 이번 방중에서 긴장을 완화할 수 있을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 “앞으로 몇 달 내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다시 만나 양국 간 합법적 차이점과 어떻게 서로 잘 지낼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로이터연합뉴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2월 중국 정찰 풍선이 미 영공을 통과하고, 미국이 이를 격추한 사건과 관련 “중국은 미국과 상관없는 (자체적인) 몇 가지 합법적인 어려움이 있다”면서 “(정찰) 풍선이 초래한 일 중 하나는 그것이 격추된 것만은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는 중국 지도부가 풍선이 어디에 있었는지, 풍선 안에 뭐가 있었는지, 어떤 일이 진행됐는지에 대해서 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내 생각에 그것은 의도적인 것보다는 당황스러운 것“이라고 말했다. 

 

정찰 풍선이 발견되면서 2월 블링컨 장관이 예정했던 방중 일정을 전격 취소하고 미·중 관계가 급격히 경색된 것과 비교하면 바이든 대통령이 시 주석을 포함한 중국 지도부가 정찰 풍선에 대해 몰랐을 것이라고 면죄부를 주면서 한발 물러난 것으로 풀이된다. 

 

바이든 대통령이 정찰 풍선 사건이 발생했을 당시 시 주석과 통화를 추진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NBC 방송은 16일 미 행정부 고위 관리 등 소식통 3명을 인용, 미군이 전투기를 출격시켜 중국 정찰 풍선 격추한 뒤 바이든 대통령이 시 주석과 전화로 대화하기를 원했지만 국가 안보 보좌진이 그를 말렸다고 전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시 주석과 직접 대화하고 문제를 해결할 기회가 있다면 격추로 인해 심화한 양국 간의 긴장을 줄일 수 있다고 믿었다는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중국 정찰 풍선을 격추한 지 보름만인 2월16일 “시 주석과 통화하고 이 일의 진상을 규명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고 매체는 전했다. 하지만 보좌진들이 당시는 정상 통화의 적절한 시점이 아니고, 실무진부터 접촉을 시작해 고위급으로 올라가는 방식을 조언했다고 것이다.

 

블링컨 장관은 중국으로 향했다. 블링컨 장관은 중국으로 출발하기 전 16일 “치열한 경쟁이 대립이나 충돌로 비화하지 않으려면 지속적인 외교가 필요하다”고 방중 의미를 설명했다. 그는 비비안 발라크리쉬난 싱가포르 외교부 장관과의 회담 뒤 진행한 공동 기자회견에서 방중 목표와 관련 “개방적이고 권한이 부여된 소통 채널을 구축할 것”이라며 “이를 통해 오해를 해소하고 오판을 피하면서 도전 과제에 대해 논의하는 등 양국이 책임 있게 관계를 관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블링컨 장관의 방중은 2월 중국 정찰 풍선 사건으로 방중 계획을 전격 취소한 지 4개월 만이다. 현직 미 국무장관이 중국을 찾는 것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때인 2018년 마이크 폼페이오 전 국무장관 방문 이후 5년 만이다.

 

로이터통신 등은 블링컨 장관이 18일 친강(秦剛)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과 왕이(王毅)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을 만나고 19일에는 시 주석을 예방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블링컨 장관과 시 주석과의 만남 가능성까지 예상되지만 미·중 관계 개선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바이든 행정부 역시 미·중 관계 개선보다는 소통을 통한 위기 관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CNN은 이날 블링컨 장관의 방중과 관련 국무부 고위 관계자를 인용 “중국 방문의 주요 목표는 워싱턴과 베이징 사이의 소통 채널, 특히 군사 대 군사 직접 소통을 재건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앞서 대니얼 크리튼브링크 국무부 동아태차관보는 14일 블링컨 장관의 방중과 관련 “많은 결과물을 기대할 방문은 아니다”라며 “미·중이 서로를 대하는 방식을 바꾸거나 어떤 돌파구를 마련하고자 하는 의도로 (블링컨이) 중국에 가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커트 캠벨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인도태평양 조정관도 “서로의 의도에 대한 명확한 그림이 중요한 진전이며 특히 현재 미·중 관계에서는 그렇다”고 설명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최근 경제 등의 분야에서 중국을 국제경제 무대에서 고립시키고 배제하려는 디커플링(decoupling) 전략에서 디리스킹 전략으로 전환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중국을 완전히 배제하지 않으면서 중국발 위험 요인을 제거해나가겠다는 의도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5월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디리스킹 전략 방침을 밝힌 뒤 미·중 관계에 대해 “조만간 해빙되는 걸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브루킹스연구소 패트리샤 김 선임연구원은 “미국과 중국 양측 모두 이번 방중이 미·중 관계를 근본적으로 바꾸거나 양국 간의 많은 분쟁을 해결하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언급하고 있다”면서 “기대치를 너무 높게 설정하거나 상대방에게 적극적인 것처럼 보이지 않으려는 욕구가 있다”고 말했다고 CNN은 전했다. 

 

블링컨 장관은 중국 방문에 맞춰 박진 외교부 장관에 이어 하야시 요시마사(林芳正) 일본 외무상과도 통화했다고 국무부는 밝혔다. 

 

국무부는 블링컨 장관과 박 장관의 통화 관련 보도자료를 통해 “블링컨 장관은 미·중 관계를 책임감 있게 관리하겠다는 미국의 약속을 강조했다”면서 “북한의 지속적인 불법 탄도미사일 발사를 규탄하고 중국이 북한의 진지하고 지속적인 외교를 장려하기 위해 영향력을 사용할 필요성을 언급했다”고 전했다. 국무부는 또 하야시 외무상과의 통화와 관련 “북한의 계속되는 불법적인 탄도미사일 발사를 규탄하고 일본 방위에 대한 미국의 철통 같은 공약을 재확인했다”고 소개했다.


워싱턴=박영준 특파원 yjp@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