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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국 위원장 “예술위 자율성 위해 민간 후원 규모 늘려야” [차 한잔 나누며]

정병국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

“문예기금 고갈… 정부 의존도 높아
소통 늘리고 공정성 등 강화 추진
예술인 후원 확산 축제 열 예정”

“커피 한잔하시겠어요?”

지난 21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예술가의 집’. 2층에 있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예술위) 위원장 집무실에 들어선 순간 정병국(65) 위원장이 반갑게 맞았다. 뜨거운 물을 부으며 직접 커피를 내리는 그에게 차가운 커피도 되는지 조심스레 묻자 금방 만들어 건넸다. 맛이 아주 좋았다. ‘바리스타 정’이란 별명이 붙을 만했다. 5선 국회의원에 이명박정부 당시 여당(한나라당) 사무총장과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역임한 거물 정치인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대신 자신이 왜 ‘예술위 구원투수’로 등판하게 됐는지를 잊지 않고 제 역할을 다하겠다는 의지가 읽혀졌다.

정병국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21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예술가의 집’ 2층 카페 ‘예술나무 라운지’에서 직접 내린 커피를 들고 포즈를 취했다. 최상수 기자

1973년 문예진흥원으로 설립됐다 2005년 민간 자율성을 확대하면서 이름도 바뀐 예술위는 문학·미술·연극·무용·전통 등 순수예술 분야를 지원하는 기관이다. 하지만 경고등이 켜진 지 오래다. 영화관 입장료 등에 부과돼 주요 재원으로 쓰인 문예진흥기금 적립금은 2003년 헌법재판소 위헌 결정 이후 계속 줄어 고갈 위기에 놓였다. 그만큼 정부 예산 의존도가 커졌고 급기야 박근혜정부 때 벌어진 ‘예술인 블랙리스트’ 집행기관으로 지목돼 된서리를 맞았다. 정치인 출신으론 처음 지난 1월 8대 예술위원장에 취임한 정 위원장은 예술위 내부 수습과 대외적인 불신 해소에 팔을 걷어붙였다. 2∼3월 14차례에 걸쳐 분야별 예술인들과 만나 예술위 사업 현황을 소개하고 여러 의견을 들은 현장 업무보고도 파격적이었다. 이 장면은 온라인 생중계로 문화예술계 종사자뿐 아니라 국민 누구나 볼 수 있도록 했다. 예술위 50년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동안 예술인과 위원회가 소통이 안 된다는 지적이 많아 실질적으로 쌍방향 소통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한 거죠.”

예술가의 집 공간 재배치로 2층에 카페 ‘예술나무 라운지’를 만든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는 매주 월요일 오후 2∼4시 이곳을 찾아오는 예술인들에게 직접 커피를 만들어주면서 현장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다.

정 위원장은 “예술위의 공모 사업별 심사위원 후보군의 자질 등 지원 사업 심사과정에 대한 예술인들의 불만이 상당했다”며 “심사위원 사전 검증 및 임기제 도입 등 심사 공정성·투명성 강화 방안을 마련 중”이라고 했다. 아울러 예술위 본관이 2014년 전남 나주로 이전하면서 생긴 업무 비효율성 개선을 위해 조직 통폐합 등 예술위 혁신 작업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뭐니 뭐니 해도 정 위원장의 어깨를 짓누르는 건 예술위 재정을 어떻게 확충할지다. 복권·체육기금과 국고 등으로 조성된 올해 예산은 3846억원이지만 예술인들에게 절실한 창작지원 사업 예산은 1033억원에 그친다. 2700억원 정도가 ‘문화누리카드’ 등 사용처가 정해진 문화복지 분야에 쓰이기 때문이다. 기금 적립금은 지난해 928억원으로 쪼그라들었고, 문화예술 후원 활성화를 위해 2012년 시작한 ‘예술나무 운동’ 사업 후원금도 170억원에 불과하다.

정 위원장은 “윤석열 대통령이 장애인 예술 등 문화예술 분야에도 관심이 많은데 문화체육관광부의 관련 예산은 당장 돈이 되는 영화·가요 등 문화콘텐츠산업 쪽에 편중돼 있는 게 아쉽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예산을 1000억원만 늘려줘도 매년 지원 대상 예술인 비율을 현재 20%에서 50% 가까이 확대할 수 있다”며 “다만 예술위 독립성과 자율성을 위해선 중장기적으로 정부 의존도를 낮추고 민간 후원 규모를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오는 9월 예술나무 운동을 범국민 운동으로 확산하는 대규모 축제를 열 계획이다. 시민들이 문화예술의 가치와 후원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할 수 있도록 하는 흥겨운 자리를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지난달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국제예술위원회·문화기관 연합 지도자 회의(IFACCA·이파카)와 제9차 문화예술세계총회에 다녀온 정 위원장은 “한국문화예술에 대한 세계의 높은 관심을 확인한 자리였다”며 “나는 4차 산업혁명시대를 맞아 예술과 기술 결합의 중요성과 우려되는 점을 강조했다. 3년 후쯤인 다음 세계총회를 한국에서 유치해 이를 다루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