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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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가방 속 납치된 필리핀 교민 자녀…용의자 작전 3시간 만에 검거 [박종현의 아세안 코너]

한·필리핀 가정 8세 자녀 집에서 납치돼
여행 가방 이용…피해 자녀, 정신적 충격
용의자는 건물 관리인·친밀함 이용 범행
현지 경찰·대사관·교민 공조…신속한 해결

한·필리핀 가정의 8살 자녀가 자신의 집에서 면식범에게 납치됐다가 당일 구조된 사건엔 교민 등 필리핀 세부 현지 주민들의 적극적인 협조가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11일 외교부 등에 따르면 사건은 전날 발생했으며, 용의자는 당일 체포됐다. 교민의 안전과 양국 협력 문제 등을 고려해서인지 사건과 관련된 세밀한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10일 필리핀 세부에서 납치됐다가 경찰의 용의자 검거로 가족의 품에 안겨 있는 교민 자녀의 모습. CDN 제공

◆ 트렁크 활용된 범죄과정 CCTV에 찍혀

 

외교부 당국자의 짧은 설명은 이랬다.

 

“어제(10일) 필리핀에서 우리 국민 1명이 납치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발생 당일 범인이 검거됐고 우리 국민 안전도 확인됐습니다. 우리 공관은 사건 접수 후 현지 치안당국과 긴밀히 협력했습니다.”

 

교민들의 전언과 세부 현지언론에 보도된 내용을 종합해보면 납치 사건의 얼개를 맞춰볼 수 있다.

 

사건은 전날 세부의 주택가에서 발생했다. 30대 용의자가 한·필리핀 교민 자녀를 대형 여행 트렁크에 넣어 납치했다. 용의자가 아이의 손발을 묶은 뒤, 강제로 아이를 넣은 트렁크를 끌고 차량으로 이동했다. 이런 모습은 인근에 설치돼 있던 폐쇄회로(CC)TV 카메라에 찍혔다.

 

납치 사건은 피해자의 어머니(타이리 래니 렌달 유)가 오후 5시 신고를 하면서 경찰에 실종사건으로 접수됐다. 어머니는 “딸아이가 아침부터 보이지 않는다”고 신고했다. 실종 시간은 오전 11시30분에서 정오 사이로 파악됐다.

교민 자녀의 납치에 사용된 여행 가방. CDN 제공

◆ 세부 교민들, 용의자 차량 정보 SNS에 공유

 

신고를 접수한 세부 만다우에 경찰서는 범행에 사용된 차량을 수배했고, 사건 발생 7~8시간 만, 신고접수 3시간 만에 용의자를 체포했다. 주필리핀대사관 세부 분관 등 외교당국은 현지 경찰과 공조했다. 세부 교민 등 현지주민들도 용의자의 차량 모델과 자동차번호 등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공유하며 경찰의 수사를 도왔다고 외신은 전했다.

 

교민 자녀는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다. 큰 외상은 없지만, 정신적 충격이 컸을 것으로 보인다. 부모는 신속한 수사를 펼친 경찰, 세부 분관, 세부 교민 등에 고마움을 표했다. 로미오 카코이 만다우에 경찰서장은 “납치 사건을 자세히 살피고 있다”고 밝혔다.

 

현지언론에 따르면 용의자는 32세 남성으로 피해자 가족이 살던 건물주의 동생으로 건물 관리인기도 하다. 피해자와의 친숙함을 이용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 용의자는 피해자의 어머니에게 “아이가 붙잡혀 있는데, 문자를 무시하지 말라”는 문자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필리핀 현지 경찰은 용의자 검거 이후 페이스북에 “현대기술과 탐사수사, 포괄적인 정보 활용으로 용의자와 피해자의 행적을 추적할 수 있었다”고 글을 남겼다. 경찰 지휘부는 “수 시간에 피해자를 구출하고, 용의자를 체포한 경찰들의 신속한 대응을 평가한다”고 밝혔다.


박종현 기자 bali@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