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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재판 지연 최대 원인은 ‘법관 수 부족’… 10년째 정원 그대로 [심층기획-법조 미래를 묻다]

(상) 변호사들이 본 법조의 현재

정부 증원안 檢 증원과 맞물려 국회 표류
“고법 부장 승진제 폐지 영향 지연” 17%
‘사법행정 역량 부족’ ‘자질’ 원인 꼽기도

상고법원 설치엔 찬성 46% 반대 52%
압색영장 사전심문제 贊 52% 反 45%
“변회 법관평가 인사에 반영해야” 79%

변호사들은 김명수 전 대법원장 시절 심화된 ‘재판 지연’ 문제의 최대 원인으로 ‘법관 수 부족’을 꼽았다. 법관 수 부족을 법원의 최대 현안으로 꼽은 건 이런 맥락으로 풀이된다.

24일 세계일보와 서울지방변호사회(회장 김정욱)가 실시한 ‘법조의 미래를 묻다’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 554명 중 재판 지연 문제가 ‘심각하다’거나 ‘다소 있는 편이다’고 답한 496명(89.53%)은 가장 큰 원인으로 ‘법관 수 부족’(303명·61.09%)을 꼽았다.

법관 증원은 사법부 숙원 중 하나다. 판사 정원은 2014년 말 ‘각급 법원 판사 정원법(판사정원법)’ 개정·시행으로 3214명이 된 뒤 10년째 그대로다. 올해 6월 말 기준 판사 현원은 3079명이다. 정부 역시 난이도 높은 사건 증가, 재판제도 변화 등에 따른 재판 장기화로 국민 불편이 가중되고 있다고 보고, 판사 정원을 5년간 단계적으로 370명 늘려 3584명이 되게 하는 법 개정안을 지난해 말 국회에 제출했지만 검사 증원 문제와 맞물리며 논의에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뒤를 이어 김 전 대법원장이 단행한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제 폐지’(86명·17.34%), ‘사법 행정 역량 부족’(58명·11.69%), 법조 일원화에 따른 ‘법조 경력 5년(2029년부터 10년) 이상 법조인 법관 임용 제도’(20명·4.03%) 순으로 영향을 미쳤다고 봤다. 이 밖에 재판 지연 원인을 사명감이나 의지, 자질 부족 등 법관 개인에게서 찾는 의견도 있었다.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등 사회 분위기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지목됐다.

사법부의 또 다른 숙원 사업인 ‘상고법원 설치(상고 수리·허가제 도입)’에 대해선 찬반 의견이 갈렸다. ‘동의하지 않는다’(286명·51.62%)와 ‘동의한다’(255명·46.03%)는 응답률이 엇비슷했다. 대법관 수를 늘려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한 변호사는 “모든 법조 문제의 정점엔 대법원이 있다”며 “대법관 수가 적어 (상고심) 대부분 제대로 된 검토 없이 심리불속행이니, 하급심이 부실해도 파기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2008년 서울변회가 처음 도입해, 현재 전국 14개 지방변호사회가 실시하는 ‘법관 평가’를 법원 인사에 반영해야 한다는 응답자는 440명(79.42%)이었다. 법관들에 대한 일종의 외부 견제 장치가 필요하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평가 참여도와 조사 방법의 신뢰도 증진이 선결 과제”란 지적이 함께 제기됐다.

같은 연장선상에서 356명(64.26%)은 ‘판결문이 더 폭넓게 공개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법조인·교수 대상으로는 판결문 공개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142명·25.63%)는 답변도 적지 않았다. 현재는 법원 홈페이지를 통해 2013년 1월1일 이후 확정된 형사사건 판결문, 2015년 1월1일 이후 확정되거나 올해 1월1일 이후 선고된 민사·행정·특허 사건 판결문만 열람할 수 있다.

김 전 대법원장이 올 초 도입을 추진했다가 법무부와 검경 등이 일제히 반대해 매듭짓지 못한 ‘압수수색영장 사전 심문제’를 두고는 ‘동의한다’(286명·51.62%)는 답변이 ‘동의하지 않는다’(250명·45.13%)보다 소폭 높게 나왔다. 이와 관련해 “제도 운영 방안에 대한 정확한 설명이 필요하다”는 제언이 있었다.

 

법조계 전반의 현안과 미래를 다각도로 짚어 본 ‘법조의 미래를 묻다’ 설문조사는 세계일보 법조팀이 기획하고, 서울지방변호사회(회장 김정욱)가 실시했다. 지난 8월7일∼9월11일 한 달여간 서울변회 소속 회원들을 상대로 구글 폼을 이용한 온라인 설문 방식으로 진행됐다. 응답자는 554명이다. 성별로는 남성 434명(78.34%), 여성 120명(21.66%)이다. 법조 연차별로는 △11∼20년차 169명(30.51%) △6∼10년차 154명(27.80%) △1∼5년차 134명(24.19%) △21년차 이상 97명(17.51%) 순으로, 10년차 이하 청년 변호사(288명)와 11년차 이상 중견 변호사(266명)들이 고르게 응답했다.

박진영·이종민·안경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