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권 붕괴 실태를 알린 계기가 된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에 대해 경찰이 넉 달간의 수사 끝에 “학부모의 갑질, 폭언 정황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결론짓고 사건을 종결했다. 서이초 교사 사망으로 교권 침해 현실이 수면 위로 드러나며 지난 9월 교권보호 4법이 국회 본회의까지 통과했지만, 현장에선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찰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 내사 종결…“범죄 혐의점 없어”
14일 송원영 서울 서초경찰서장은 오전 10시쯤 기자 브리핑을 열고 “고인의 유족, 동료 교사, 지인, 학부모 등을 모두 조사하고, 교사생활 2년 차인 올해(2023년)뿐 아니라 교사생활을 시작한 2022년도 관련 사실도 철저히 확인했다”며 “조사 결과 지금까지 확보한 자료에서 특정 학부모의 지속적인 괴롭힘이나 협박·폭행 등 범죄 혐의점으로 볼 수 있는 내용은 발견하지 못했다”며 입건 전 조사(내사) 종결 방침을 밝혔다.
이어 송 서장은 “경찰 조사 내용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 심리 부검 결과 등을 종합해볼 때, 고인은 작년 부임 이후 학교 관련 스트레스를 겪어오던 중 올해 반 아이들 지도, 학부모 등 학교 업무 관련 문제와 개인 신상 등의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달 18일 국과수는 “학급 아이들 지도 문제와 아이들 간 발생한 사건, 학부모 중재, 나이스 등 학교 업무 관련 스트레스와 개인 신상 문제로 인해 심리적 취약성이 극대화돼 극단 선택에 이른 것으로 사료된다”는 취지의 심리 부검 결과를 회신했다.
앞서 지난 7월18일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1학년 담임이었던 2년 차 새내기 교사 A씨가 교내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한 학생이 다른 학생의 이마를 연필로 그은 이른바 ‘연필 사건’으로 학부모들이 고인에게 늦은 시각 연락하거나 개인 번호로 수차례 연락하는 등 갑질을 일삼았다는 의혹에 대해 수사해 왔다.
경찰은 수사 과정에서 A씨의 일기장, 메모, 진료내역, 통화내역, 태블릿 PC, 업무용 PC 등을 분석하고, 동료 교사 44명을 포함해 유족, 지인, 학부모 등 총 68명을 조사해 고인의 사망에 타살 혐의점은 없으며 극단적 선택을 했다고 최종 결론을 냈다.
‘연필 사건’ 의혹에 대해선 “해당 사건과 관련해 고인과 통화한 두 명의 학부모의 휴대폰도 포렌식을 통해 범죄 혐의점을 살폈다”며 “밤늦게 연락한 건은 문자 1건으로 확인됐고, 학부모가 고인에게 일반 전화로 건 것이 고인의 개인 전화로 착신전환된 것으로 조사됐다”고 설명했다.
한편 경찰은 ‘연필 사건’ 학부모가 누리꾼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사건과 관련해 악성 댓글 총 40건을 확인해 13명의 신원을 특정했다. 이 중 10명에 대해서는 서초서를 포함해 해당 관서로 사건을 이첩하고 인적 사항이 불특정된 25건에 대해서는 계속 수사를 이어갈 예정이다.
◆교권 4법 통과됐지만…교원 절반 이상 “학교 현장 변화 없어”
이번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은 학교 현장에서 빈발하는 교권 침해 현실을 공론화시키고, 국회에서 교권보호 4법 제정으로까지 이어졌다.
교권보호 4법이란 ▲교육기본법 ▲초중등교육법 ▲유아교육법 ▲교원의 지위 향상 및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 개정안을 뜻한다. 교원의 정당한 생활지도는 아동학대로 보지 않고, 아동학대로 신고된 교원의 직위해제를 까다롭게 하며, 교육활동을 침해한 학부모에 대한 법적 조치를 추가하는 등 내용이 담겼다.
이 같은 교권보호 4법은 지난 9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현장에선 실질적 변화를 체감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지난달 전국 교원 5461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교사 절반 이상이 교권 4법 통과에도 현장은 변화가 없다고 답했다.
그 이유로는 ‘무분별한 아동학대 고소, 고발에 대한 불안감이 여전’(28.4%)하다는 점이 가장 많이 꼽혔다. ‘인력·예산 등 교육부·교육청 지원 부족’(16.4%), ‘학칙 미개정으로 세부 생활지도 적용 한계’(15.8%) 등도 원인으로 지적됐다. 교원(98.6%) 대다수는 아동학대로 신고됐지만 교육감이 정당한 교육활동으로 판단하고 경찰이 무혐의로 처분한 경우, 검찰로 넘어가지 않도록 아동학대처벌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교원 10명 중 4명(42.5%)은 학교폭력 중 학교장이 자체 해결할 수 있을 정도의 경미한 사안의 경우 학교 측에서, 심각한 사안의 경우 경찰이 업무를 담당해야 한다고 답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