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 찰스 헥(76)은 11살 때 취미인 우표 수집을 그만 뒀다. 우표보다는 또래 여자아이들이 더 눈에 들어오던 시절이었다.
2000년대 초 부동산 개발업과 투자로 큰 돈을 번 그는 다시 어린 시절 취미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중앙의 비행기 그림이 위아래가 뒤집혀 인쇄돼 ‘인버티드 제니(Inverted Jenny)’로 불리는 우표가 그의 눈을 사로잡았다. 이 우표가 경매에 나오자 그는 30만달러(약 3억9000만원)를 투자했다.
그는 14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에 “어린 시절부터 인버티드 제니는 장당 7500달러에 팔리던 우표의 ‘성배(聖杯)’였다”며 “(그 우표 중 하나를 수중에 넣고 나서) 나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우표 수집 분야에서 재탄생했다”고 말했다.
인버티드 제니는 1918년 미국의 정기 항공우편 서비스 시작을 기념해 발행된 우표다. 첫 비행에 맞추려고 제작을 서두르다 커티스 복엽기 ‘제니’가 뒤집힌 채 비행하는 모습으로 인쇄돼 버렸다. 우정 당국은 실수를 발견하고 파기에 나섰지만, 100장짜리 한 묶음이 시중에 유통됐다.
이후 이 우표는 영화 ‘백만장자 브루스터’와 TV 애니메이션 ‘심슨 가족’의 소재로 다뤄졌을 만큼 세계에서 가장 희귀하고 탐나는 우표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인버티드 제니 한 장의 주인이 됐음에도 헥의 열정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2007년 이보다 품질이 좋은 인버티드 제니가 경매에 나오자 그는 거의 100만달러를 썼다. 시중에 유통된 100장짜리 우표 묶음의 57번째 자리에 있던 우표였다.
2018년에는 그동안 행방이 묘연했던 49번째 우표가 우표 수집가들의 레이더망에 포착됐다. 1918년 최초 구입한 사람이 은행 금고에 넣어둔 뒤 후손들도 손대지 않아 최상의 상태였다.
로버트 시겔 옥션 갤러리의 스콧 트레펠 대표는 “(49번째 우표는) 색상이 정말 아름답고 생생하다”며 “이보다 좋을 수 없다”고 말했다.
헥은 다시 도전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5만달러 차이로 낙찰을 받지 못했다. 낙찰가는 160만달러에 달했다. 헥은 입찰 경쟁을 계속할까 하다가 포기했다. 그는 “이미 다른 인버티드 제니를 갖고 있었기에, 그렇게 많은 돈을 쓰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그의 생각은 5년 만에 바뀌었다. 49번째 인버티드 제니가 최근 뉴욕 시겔 경매에 다시 나오자, 그는 입찰 경쟁에 뛰어들고 말았다. 5년새 이 우표의 평가 점수는 90점에서 95점으로 올라 있었다. 다른 99장 중 이보다 품질이 뛰어난 우표는 존재하지 않았다. 헥은 최고를 원했다.
헥은 마침내 이 우표의 주인이 됐다. 낙찰가는 수수료 포함 200만6000달러(26억원). 우표 역사상 최고가다. 액면가(24센트) 대비로는 835만배에 해당하는 액수다. 그는 “이게 바로 프리미엄 카피(premium copy)”라며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고 했다.
향후 시겔 옥션으로부터 이 우표를 넘겨받으면 어떻게 할 지 헥은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다만 빛과 다른 모든 요소로부터 이 우표를 보존해 낸 100년 전통은 지킬 것이라고 다짐 중이다. 그는 일단 뉴욕에 있는 자택 금고에 이 우표를 보관해 두고서 우표라는 창을 통해 시간을 되돌아보는 데 관심이 있는 방문객들에게 가끔 꺼내 보일 것이라고 WP에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