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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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사무실 5곳 중 1곳 ‘텅’… 엔데믹 이후 공실률 되레 늘어 [세계는 지금]

상업용 부동산 시장 ‘침체 일로’

맨해튼 중심부 최고 명소 ‘플랫아이언’
임차인 못 구해 결국 콘도로 개조 예정

재택근무 확산 영향 사무실 수요 감소
50개 도시 공실률 18% 넘어 사상 최고

고금리 장기화로 빌딩 투자자 큰 타격
WSJ “건물주들 공실률 반등 희망 잃어”

미국 뉴욕 맨해튼 5번가와 22, 23번가, 브로드웨이까지 4개 도로가 교차하는 지점 모퉁이에 삼각형 모양으로 우뚝 솟아 있는 플랫아이언(Flatiron) 빌딩. 건물 모양이 마치 다리미(iron)처럼 특이하게 생겼다 해서 플랫아이언(플랫은 미국에서 다중집합시설, 아파트, 연립주택 등을 뜻함)이라는 별명이 붙었다가 별명이 빌딩명이 됐다.

이 빌딩을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찾았다. 건물은 공사가 한창이었다. 누구나 카메라를 들이대는 뉴욕 최고의 명소 중의 한 곳이지만 건물 출입문들은 굳게 닫혔고, 건물 모퉁이에는 노숙인들이 웅크리고 있었다.

건물 1층, 미국 이동통신사 T모바일 매장에 들어서자 직원 마이클이 반갑게 인사했다. 건물 상황이 궁금해서 들렀다고 하자 마이클은 “이곳은 콘도가 될 예정”이라며 “최소 지난 1년 동안 이 건물에는 유일하게 우리 매장만 영업하고 있고, 건물 전체가 텅 비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 매장도 7개월 동안 리모델링을 위해 문을 닫았다가 다시 문을 연 지 한 달 정도 됐다”면서 “이 건물은 여러 번 매매가 이뤄졌고 이제 콘도로 개조될 예정이다. 역사가 있는 랜드마크라 철거는 할 수 없다고 한다”고 말했다.

 

1902년, 맨해튼 중심부에 22층, 87m 높이의 철골 구조로 지어진 플랫아이언 빌딩은 실제 건물의 앞쪽이라고 할 수 있는 가장 뾰족한 부분이 성인 걸음으로 두 걸음, 약 2m에 불과하고 반대편 역시 서른 걸음이 채 안 되는 독특한 외형으로 뉴욕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악당 ‘고블린’이 나온 영화 스파이더맨에서 스파이더맨이 사진을 찍어 제보한 신문사가 있던 건물이다.

지난 11월 29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 중심에 있는 ‘플랫아이언 빌딩’ 공사가 한창인 가운데 시민들이 빌딩 앞을 지나가고 있다. 뉴욕=박영준 특파원

신문사와 잡지사, 출판사, 음반사, 식당 등이 가득 차 120년 동안 상업용 빌딩으로 명성을 떨친 플랫아이언 빌딩은 최근 몇 년간 공실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골칫거리’ 신세가 됐다가 결국 고급 아파트로 용도를 변경한다. 건물이 노후한 탓도 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재택근무를 포함한 원격근무가 활성화하면서 상업용 빌딩으로서의 수명이 끝났다.

 

미국의 상업용 부동산 시장이 악화 일로를 거듭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재택근무가 자리 잡으면서 사무실 공실률이 급격히 늘고 있다. 미국 상업용 부동산 부실이 미국 경제 위기의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지난 25일 미 부동산 정보업체 커머셜에지에 따르면 미국 상위 50개 도시의 평균 사무실 공실률은 지난달 기준으로 18.2%를 기록, 이 업체가 자료를 공개하고 있는 2020년 12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외신 보도 등을 종합하면 미국 사무실 공실률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는 중이다.

업체가 매달 발간하는 ‘국가 사무실 리포트(National Office Report)’를 분석한 결과, 코로나19가 발생하고 약 1년이 지난 2020년 12월 미국 공실률은 14.2%였던 것이 꾸준히 상승해 지난달 처음으로 18%를 넘겼다.

사무실 공실률은 특히 미국의 코로나19 사태가 어느 정도 진정되고, 일상생활이 가능해지면서 증가하는 추세를 나타냈다. 2022년 1월 미국의 코로나19 일일 신규 확진자가 101만명을 기록하며 정점을 찍은 뒤 확진자가 눈에 띄게 감소하던 지난해 9월에 공실률이 16.6%로 껑충 뛰었다. 공실률은 지난 5월에 17%를 돌파하더니 결국 18%도 넘겼다.

주요 도시별 공실률을 보면 문제는 더 심각하다.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의 공실률은 25.7%를 기록했고, 텍사스 휴스턴은 25.4%,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는 24.2%, 워싱턴주 시애틀도 공실률이 22.3%에 달했다. 수도 워싱턴의 공실률도 18.5%로 평균을 웃돌았고, 일리노이주 시카고도 18.3%, 뉴욕주 맨해튼은 17.4%였다. 사무실 5개 중 1개는 비어 있다는 의미다.

공실률이 고공 행진을 하는 이유는 수요 감소의 영향이 크다. 보고서는 미국 주요 도시의 사무실 활용도가 코로나19 사태 이전의 50∼60%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재택근무의 영향으로 다수의 임차인이 사무실 공간을 줄였고, 일부 기업이나 회사의 경우 최근 들어 사무실 복귀 정책을 강화하고 있지만 여전히 코로나19 이전 수준을 회복하는 데는 역부족이라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사무실 대출 연체율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향후 몇 년 동안 사무실 대출이 대거 만기 됨에 따라 사무실 공간에 대한 수요는 감소하고, 비용은 증가하고, 가치는 하락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 자회사인 무디스 애널리틱스에 따르면 미국의 상업용부동산저당증권(CMBS)의 올해 3분기까지 만기 상환율은 31.2%를 기록했다.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의 47%보다 더 낮은 수준이다. 사무실 공실이 늘어나면서 이자를 감당하기가 어려워졌고, 고금리의 장기화로 인해 빌딩 투자자들이 상업용 부동산을 헐값에 내놓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내년 기준금리 하향 조정을 예고했지만 임대인들의 재정 압박은 당분간 지속할 것이란 관측이다. 자연스럽게 상업용 부동산 대출 비중이 높은 중소형 은행들의 부실화 가능성도 제기된다.

미국 상업용 부동산 시장이 내년에 더욱더 위축될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도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 20일 “수요 감소와 높은 이자율로 타격을 입은 빌딩 소유주들은 2023년을 가까스로 버텨냈지만 내년에는 더 어려워질 것”이라며 “내년에는 대출 연장이 만료되고, 건물주들은 공실률이 반등할 것이라는 희망을 잃고 있다”고 전망했다.


뉴욕·워싱턴=박영준 특파원 yjp@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