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사설] 홍해發 중동전 확전 위기, 공급망 위기·인플레 대비하길

미국과 영국이 주도하는 다국적함대가 12일(현지시간) 홍해와 접한 예멘 반군 ‘후티’ 근거지 곳곳에 폭격을 감행했다. ‘親이란’ 이슬람 무장세력 후티가 지난해 10월 가자지구 전쟁 이후 하마스 지지를 표명하며 홍해를 지나는 민간선박을 잇달아 공격한 데 대한 대응 차원이다. 미국은 하루 뒤에도 독자적으로 후티 반군의 레이더 시설에 토마호크 미사일 공격을 단행했다. 미국은 지난해 10월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하면서 전쟁이 벌어진 이후 중동 내 친이란 무장단체의 잇따른 도발에도 신중한 대응으로 일관해 왔다. 하지만 이틀에 걸친 미국의 후티 반군 군사시설 폭격은 미국의 중동전 개입을 기정사실화한 동시에 확전 위기감까지 키운다. 같은 날 호르무즈해협에서 미 유조선이 이란에 나포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국제사회가 중동발 사태의 확산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는 자명하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14일로 100일을 맞았지만 여전히 가자지구 곳곳에서 공습과 교전이 이어지고 있다. 아직은 국지전 양상이지만 그동안 가자지구 전쟁의 실질적 배후로 서방국가들이 이란을 지목해 온 점을 감안하면 미국과 이란의 대리전이나 신중동전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커졌다.

한국 경제엔 비상이다. 우리나라는 교역의 99%를 해운에 의존한다. 홍해와 유럽을 잇는 수에즈운하는 한국 물동량의 16%를 차지한다. 세계 컨테이너 물동량의 30%를 차지하는데 홍해 항로에서 세계 10대 컨테이너 선사 가운데 머스크 등 6개사가 사실상 철수했다. 호르무즈해협은 원유 수입의 72%를 차지하는 요충지다. 극심한 가뭄으로 파나마운하의 운항이 제한되는 상황에서 우회로였던 홍해발 위기는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중동산 원유 비중이 69%에 달하는 상황에서 북해산 브렌트유 가격이 하루에 6% 가까이 급등하는 등 요동쳤다.

코로나19와 글로벌 인플레이션 충격에서 회복 기미를 보이던 우리 경제가 또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중동발 공급망 위기는 유가·물류비 상승을 촉발시킬 게 뻔하다. 수송로가 막힌 전기차 업체 테슬라는 29일부터 2주간 독일 베를린 공장 가동을 중단하기로 했다. 국제유가 상승은 세계 경제를 고유가와 고물가, 저성장의 늪으로 몰아넣는다. 중동발 공급망 혼란과 2차 물가파동에 대비해 민관이 힘을 합쳐 선제 대응에 나서야 한다. 정부도 사태의 장기화를 염두에 두고 경제·안보 등에서 빚어질 시나리오별 대비책을 서둘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