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개막한 제19회 제주평화기 전국태권도대회가 한창인 1일 제주 한라체육관. 선수들과 학부모, 제주도민 등으로 관내가 가득 찬 가운데,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남자 경량급의 두 간판스타인 장준(24·한국가스공사)과 박태준(20·경희대)이 2024 파리올림픽 남자 –58kg급 출전권 티켓을 두고 벌이는 ‘사생결단’의 승부였다.
두 선수 모두 파리에서 메달을 따낼 수 있는 기량과 자격을 갖추고 있다. 올림픽 태권도에 출전하기 위해선 세계태권도연맹(WT) 올림픽 랭킹 5위 안에 들어야 한다. 도쿄 올림픽 동메달을 비롯해 2019 맨체스터 세계선수권 우승, 2022 과달라하라 세계선수권 2위 등 이 체급 국내 최강자로 군림해온 장준이 3위, 2023 바쿠 세계선수권 54kg급에서 우승하며 신흥강호로 떠오른 박태준은 5위다.
다만 체급별로 국가 당 한 선수만 참가할 수 있기 때문에 대한태권도협회는 이날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까지 두 시간 간격으로 세 차례 맞대결을 펼쳐 두 번을 먼저 이긴 선수에게 올림픽 출전권을 부여하기로 결정했다.
이날 경기 전까지 두 선수의 상대전적은 장준이 6전 전승으로 절대 우세를 점하고 있었다.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국가대표 자리를 두고 둘은 지난 2년간 6차례 맞붙었고, 장준이 모조리 승리를 거뒀다. 박태준을 누르고 나간 아시안게임에서 장준은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오전 10시에 시작된 1경기의 1회전. 장준이 1-2로 뒤진 상황에서 돌려차기로 박태준의 머리를 공격해 3점을 따낸 뒤 뒤 돌려차기로 몸통을 가격해 6-2로 벌린 끝에 6-4로 승리했다. ‘형만한 아우 없다’는 말대로, 이번 선발전도 장준의 무난한 승리로 진행되는 듯 했다.
그러나 박태준의 반격은 매서웠다. 2회전들어 강력한 발차기로 파상공세를 이어간 끝에 12-5로 승리해 승부를 원점으로 돌린 뒤 3회전에서도 4-5에서 머리 공격을 성공시켜 8-4로 역전한 뒤 10-4까지 점수차를 벌린 뒤 안정적으로 시간을 끌며 11-9로 승리해 1경기를 따냈다.
12시에 개시된 2경기도 1경기와 양상이 비슷했다. 2경기마저 패하면 파리행 티켓이 좌절되는 장준은 1회전을 7-4로 잡고 기선을 제압했다. 그러나 박태준은 2회전 들어 다시금 힘을 냈다. 2회전 시작하자마자 몸통 발차기를 주고 받은 두 선수는 2-2에서 팽팽한 승부를 이어나갔다. 종료 10초 전까지 이어진 동점 상황에서 박태준이 오른발 옆차기로 장준의 몸통을 강타하며 2점을 획득해 4-2로 2회전을 가져왔다.
마지막 3회전. 벼랑 끝에 몰린 장준에 비해 여유가 생긴 박태준이 경기를 주도했다. 초반부터 발차기로 장준의 몸통을 때리며 4-0으로 앞서나간 박태준은 안정적으로 리드를 이어나갔다. 7-5로 앞선 종료 16초 전 박태준은 몸통 공격을 성공시켜 9-5로 앞서나가며 승기를 잡았고, 결국 9-7 승리를 거뒀다.
1,2경기 모두 2-1(4-6 12-5 11-9), (4-7 4-2 9-7)의 짜릿한 역전승을 거둔 박태준은 꿈에 그리던 올림픽 출전권을 따낸 뒤 경기장 밖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지도한 정을진 코치(경희대)를 안으며 기쁨을 만끽했다.
경기 직후 인터뷰에 나선 박태준의 온 몸에는 땀으로 흥건했다. 그는 “어릴 땐 국가대표 한 번만 해보는 게 소원이었는데, 이제 올림픽에 나가게 됐다는 게 아직 믿기지 않는다”라면서 “수비가 좋고 왼발 앞발을 정말 잘 쓰는 선수라 이를 최대한 묶어 놓은 게 잘 먹혔다”고 소감과 승리 비결을 밝혔다.
박태준은 이전까지 6번 붙어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한 장준을 가장 결정적인 순간 잡아낼 수 있었던 것은 ‘배드민턴 여제’ 안세영이 동기부여가 됐다. 2022년까진만 해도 천위페이를 상대로 1승8패로 압도적으로 밀리던 안세영은 지난해 6승2패로 극복해내며 명실상부 배드민턴 여자 단식의 최강자로 올라섰다. 그는 “안세영 선수가 천위페이에게 그렇게 지면서도 멘털을 잡고 이겨냈다는 영상을 본 적이 있다. 그걸 보면서 나 역시 ‘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멘털을 확실하게 붙잡으면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극복한 것 같아 기쁘다”라고 말했다.
이제 박태준의 시선은 파리로 향한다. 박태준은 “국가대표로 올림픽에 출전하게 됐다. 태권도 종주국의 자존심을 드높일 수 있도록 꼭 금메달을 따내서 돌아오겠다”고 각오를 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