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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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전쟁을 결심했을까… 새해 한·미 조야 의견 분분

새해 벽두에 계속되고 있는 북한의 거친 언사와 잇따른 미사일·재래식 도발을 일부 국내외 전문가들이 김 위원장이 ‘전쟁 결심’을 했다는 신호로 해석하면서 촉발된 논쟁이 지속되고 있다. 김 위원장은 조선인민군 창건일인 건군절(8일) 국방성을 방문해서도 “전쟁은 사전에 광고를 내지 않는다”며 위협적 언사를 늘어놨다. 북한의 의도에 대한 해석은 분분하지만 ‘두개의 국가’를 선언한 북한의 대남 도발은 올해도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와 관련된 논쟁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8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북한 국방성을 방문해 연설하는 모습. 평양=조선중앙TV·연합뉴스

◆北, “‘한국’, 언제든지 괴멸”

 

김 위원장은 8일 건군절 행사에서 “한국 괴뢰 족속들을 우리의 전정에 가장 위해로운 제1의 적대국가, 불변의 주적으로 규정하고 유사시 그것들의 영토를 점령, 평정하는 것을 국시로 결정한 것은 우리 국가의 영원한 안전과 장래의 평화를 위한 천만 지당한 조치”라고 주장했다. ‘남조선’ 대신 ‘한국’으로 지칭한 것이 눈에 띈다. 이어 “동족이라는 수사적 표현 때문에 공화국 정권의 붕괴를 꾀하고 흡수통일을 꿈꾸는 한국 괴뢰들과의 형식상의 대화나 협력에 힘써야 했던 비현실적인 질곡을 털어버렸다”며 “적대국으로 규제한 데 기초해 언제든 괴멸시킬 수 있는 합법성을 갖게 됐다”고 주장했다. 그 전날인 7일에도 북한은 남한의 국회에 해당하는 최고인민회의 전원회의를 열어 남북 경제협력 관련 법안을 폐지하고 남북 경협 관련 합의서도 일방적으로 폐기했다.

 

북한이 미사일 도발을 다변화하는데 이어 남북관계의 성격까지 바꾸려 하는 것을 놓고 북한이 전면전이든, 국지전이든 무력 충돌을 결심했다는 해석이 국내외에서 다각도로 나오고 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한반도전략센터장은 ‘김정은의 유사시 남한 ‘평정’ 준비 지시와 남북관계 단절 노선 평가’ 보고서에서 “김정은이 연말과 연초에 수백 명이 넘는 노동당과 군대 및 국가의 핵심 간부들 앞에서 이번처럼 노골적으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유사시 핵무기를 사용해 남한 영토를 ‘점령’할 준비를 지시한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 센터장은 특히 “올해 미국이 대선 국면에 들어가 국제문제에 관심을 집중하기 어려운 상황을 이용해 북한이 핵과 미사일 능력 고도화에 대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백령도나 대청도, 소청도 포격까지 감행할 가능성을 한국군은 고려하고 대비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1월 30일 북한이 서해상으로 시험발사한 전략순항미사일 '화살-2형' 모습. 평양=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보다 본격적인 김 위원장의 전쟁결심론은 미국 조야에서 먼저 나왔다. 앞서 로버트 칼린 미국 미들베리국제연구소 연구원과 시그프리드 헤커 미 스탠퍼드대 명예교수는 지난달 11일 북한 전문 매체 ‘38노스’ 공동 기고문에서 “한반도 정세는 1950년 6월 초 이후 그 어느 때보다 위험하다”며 “(김 위원장이) 언제 방아쇠를 당길지 알 수 없지만 위험의 수위는 한·미·일의 일상적 경고를 넘어선 상태”라며 “지난해 초부터 북한 관영매체에 등장하는 ‘전쟁 준비’ 메시지는 북한이 통상적으로 하는 ‘허세’가 아니다”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지나치게 극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우리는 김정은이 그의 할아버지(김일성)가 1950년에 그랬듯 전쟁을 하기로 전략적 결단을 내렸다고 본다”고 밝혔다.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지난 5일 미국의소리(VOA)와의 인터뷰에서 “김정은은 자신에게 이익이 된다면 충분히 군사력을 사용할 만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美 대선 앞 시점 주목…국지전 가능성은 열어둬

 

북한이 본격적으로 전쟁 결심을 했다는 주장도 있지만, 다수의 국내외 전문가들과 정부 관계자들은 올해 북한이 크고 작은 도발을 이어갈 것이라는 점에 동의하면서도 그 의도가 전면전은 아니라는 분석을 한다. 오히려 미국 대선을 앞두고 위협을 고조시키고 관심을 끄는 것에 더 초점이 맞춰져있다는 것이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10일 통화에서 “이스라엘, 우크라이나 등에 미국의 초점이 맞춰진 상황에서 북한이 (올해 내내) 미국 대선 전후 관심을 끌어오기 위한 도발을 이어갈 것”이라며 “11월 미국 대선을 전후해 이를 의식한 7차 핵실험이 있을 수 있다”고 관측했다.

 

한·미 정부 내에서도 북한이 대외적으로 위협하는 것과는 달리 전면전을 할 능력과 의도가 없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한·미 정보당국은 북한이 최근 대남 위협 수위를 높여가고 있지만 전면적인 전쟁 준비나 태세를 갖추고 있는 정황은 발견되지 않고 있다는데 공감대를 이룬 것으로 알려졌다. 더욱이 북한이 러시아에 포탄 및 탄도미사일 등 상당량의 군사적 지원을 하고 있는 점에 비춰 전쟁을 준비하고 있는 상황은 아니라는 것이다.

지난 8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딸 주애와 함께 북한 국방성을 축하 방문했다. 평양=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 연구원인 시드니 사일러 전 미국 국가정보국(DNI) 산하 국가정보위원회(NIC) 북한 담당관은 지난 2일 논평을 내고 북한의 전쟁결심론에 대해 “해당 문제를 지난 40년간 고민해온 사람으로서 대답은 일부 약점에도 ‘아니다’라는 것”이라며 “북한의 공격이 임박했다고 볼 수 있는 지표는 전혀 관찰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 재단 선임연구원도 북한이 러시아에 대량의 탄약과 로켓뿐 아니라 신형 KN-23 단거리탄도미사일까지 지원한 데다 접경 지역에 병력을 집중하는 모습도 감지되지 않아 전쟁을 준비하는 것 같지는 않다고 관측했다. 

 

하지만 북한이 전쟁 결심을 한 것이 아니라는 전문가들 중에서도 국지전 위험의 경고 목소리는 나오고 있다. 전직 미 중앙정보국(CIA) 출신인 한반도 전문가 수미 테리 박사는 지난달 30일 포린 어페어스 기고문에서 칼린과 해커 박사가 전쟁 준비론에 대한 뚜렷한 근거를 제시하지 않았다고 지적했지만, 국지전 가능성은 열어뒀다. 테리 박사는 “위험은 북한이 의도적으로 전쟁을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남한 영해를 향한 미사일 발사, 무인기(드론) 남한 섬 비행, 서해 북방한계선(NLL) 침범 등 북한의 무력시위와 낮은 수위의 정기적 도발이 (남한의) 보복(대응)을 자극함으로써 전쟁이 시작될 수 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홍주형 기자 jhh@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