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시설물인 줄 몰랐어요. 쓰레기가 모여있길래 버려도 되는 줄 알았죠.”
지난 28일 서울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 1번 출구 인근 해밀톤 호텔 앞. ‘이태원 참사’ 피해자를 기리는 임시 추모시설물 아래로 여러 개의 박스 등 쓰레기가 어지러이 널려있었다. 이곳에 아이스크림 막대기를 버리려던 대학생 심모씨는 “여기서 참사가 난 것도 알고 있었고, 자주 지나다니는 길이었지만 추모석 같은 게 있는 걸 처음 인지했다”며 “도로 가까이에 붙어있을 뿐 아니라 안내문에 글씨도 작고 많아서 눈에 잘 안 띄었다”고 말했다.
‘10.29 기억과 안전의 길’에 세워진 추모시설은 지난해 10월26일 이태원 참사 1주기를 맞아 참사 현장 인근에 세워졌다. 유족과 용산구청, 서울시 등이 협의해 도로 표지판과 바닥 표지석 등을 설치했는데, 이태원역이 참사의 아픔을 넘어 추모와 진실을 찾는 공간이라는 의미를 담았다. 구청과 유가족협의회 등에 따르면 좁은 골목에서 일어난 참사를 고려, 보행에 방해가 되지 않고 안전상의 문제가 없도록 최대한 길가 가깝게 설치됐다. 이는 ‘임시’로 설치된 시설물로, 유족의 요청에 따라 ‘이태원 참사 특별법’이 제정된 후에 정식 추모시설물이 세워질 예정이다.
그러나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 ‘이태원 임시 추모 시설물 근황’이라는 사진이 퍼지며 제대도 관리가 안 되고 방치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됐다. 해당 사진에는 추모 표지판 앞에 각종 주류 박스와 비닐봉지 등 쓰레기가 불법 투기된 모습이 담겼다.
실제 인근 상인과 주민 등 말을 종합하면 참사 이후 이태원 상권이 회복해가며 사람이 몰렸고 쓰레기 역시 늘어났다고 한다. 참사 이전부터 골목 초입 등 도로변에 수거가 용이하도록 재활용 쓰레기를 모아 버려왔는데, 공교롭게도 시설물 위치와 겹쳤다는 전언이다. 인근 한 상인은 “상인회 측에서 추모 시설물 위치 등과 관련해 협의를 한 걸로 알고 있는데 정확히 알지는 못한다”며 “버릴 곳이 마땅치 않아서 다들 원래 버려왔던 곳에 모아두는 것으로 알고 있다. 시설물을 훼손하거나 무시하려는 의도는 없었을 것”이라고 전했다.
쓰레기 투기가 늘어나며 구청 측에서도 이태원관광특구연합회 등 상인회 측에 거듭 자제를 요청했으나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한다. ‘희생자와 유가족에 대한 경건한 마음으로 유지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 주시길 부탁드린다. 불법광고물 부착 및 종량제 봉투 배출을 자제해달라’는 내용의 안내문도 설치했지만 이후에도 쓰레기 관련 민원이 수차례 들어온 것으로 전해졌다.
관련 법령이 미비해 지자체 등의 개입이 불가해 통제가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직접적인 훼손으로 경찰 신고 등이 접수되지 않는 이상 구청이 나서서 과태료 부과 등을 할 수는 없다. 이에 구청 측은 인근에 폐쇄회로(CC)TV를 설치하는 등 관리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며 상인들에게도 다시 안내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실제 취재 이튿날 다시 찾은 시설물 옆에는 그간 없었던 CCTV와 함께 ‘쓰레기 무단 투기 적발 시 1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는 경고문이 설치돼 있었다.
용산구청 관계자는 “논란이 된 사진은 쓰레기 수거 전, 순간을 담은 사진으로 보이는데 항상 이렇게 많이 쌓여있는 것은 아니다”며 “일요일을 제외하고 업체 측에서 매일 쓰레기를 수거하고 있으며 매달 한 번씩 동네를 청소하는 날도 따로 있다”고 설명했다. 또 “시설물 설치 위치가 원래 인근 상가에서 쓰레기를 자주 배출하는 장소는 맞지만 유족분들이 원하는 장소였다. 참사 골목과 가깝고 보행에 방해도 안 되는 장소였다”며 “상인, 주민들 의견도 모두 종합해 정했다”고 밝혔다.
이어 “시설물 유지에는 상인, 주민뿐 아니라 많은 시민들의 협조와 도움이 필요하다”며 “구청 측에서도 지속적으로 홍보나 단속 등을 통해 관리에 힘쓰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