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틱톡금지법·라인 사태… ‘데이터 주권’에 높아지는 e국경 [세계는 지금]

美·中·日 ‘디지털 장벽’ 강화

美, 틱톡 압박에… 中 반발

젊은층 중심 틱톡 성장세에 보안 우려
대선 앞두고 초당적 지지로 금지 법안
美 자본에 매각 않으면 美 사업권 금지
中도 ‘안보’ 빌미 美 앱 등 포괄적 규제

라인 지분 넘기라는 日

日 국민 메신저 ‘라인’ 확장세 커지자
정보유출 이유 네이버 지분 조정 요구
우방국 등 같은 진영서도 데이터 분쟁
‘스플린터넷’ 시대 새 양상 전개 신호탄

정보사회에 접어든 후 플랫폼을 통해 모이는 개인의 데이터를 지키는 것은 곧 안보와 직결되고 있다. ‘외국의 적’이 통제하는 애플리케이션을 막는 법이라는 이름으로 미국 의회에서 만들어진 이른바 틱톡금지법이 지난달 24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대통령의 서명으로 발효됐다. 최장 1년의 시간 동안 틱톡의 모기업 중국계 바이트댄스가 틱톡을 미국 자본에 매각하지 않으면 미국 내 사업권이 금지된다. 비슷한 일은 한국에서도 벌어졌다. 일본에서 국민 메신저로 통하는 라인의 확장세가 커지자 일본 정부가 네이버에 지분 매각을 요구한 것이다.

원래 하나여야 할 인터넷 세상이 진영에 따라 나뉘는 현상을 의미하는 ‘스플린터넷’(나누다라는 뜻의 ‘splint’와 인터넷의 합성어)의 시대가 확연해지고 있다. 미국은 중국 앱이 자국 망을 통해 유통돼 미국인의 데이터를 수집하는 것을 막으려 하고, 중국은 방화벽을 통해 자국민들을 타국 정보로부터 분리시키고 있다. 틱톡금지법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갈등은 스플린터넷의 상징처럼 여겨지고 있다.

여기에 더해 라인야후와 관련한 일본의 요구는 스플린터넷의 새로운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데이터 주권이 더 세분화돼 같은 진영 내에서도 인터넷 국경의 장벽이 높아지는 것이다. 일본이 우호국인 한국 기업에도 지분 매각을 요구하는 것은 앞으로 데이터 주권 문제가 훨씬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될 것이라는 신호탄으로 해석된다.

 

◆데이터 안보 상징된 틱톡금지법

틱톡금지법은 특정 법안이 하나의 플랫폼 회사를 겨냥한 거의 첫 사례다. 2016년 틱톡이 미국에서 사업을 시작한 뒤 젊은 층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하자 미국인의 보안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우려가 공화당과 민주당을 가리지 않고 꾸준히 제기돼 왔다. 하지만 단일 회사를 대상으로 법을 만들어 규제하는 방식은 상상 이상으로 전격적이었다는 평가다.

법안은 11월 대선을 배경으로 초당적 지지를 얻어 빠르게 통과됐다. 미국 내 보안 전문가들은 정치권의 틱톡에 대한 우려가 상당 부분 근거가 있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보안전문가인 존스홉킨스대 정보보안연구소 안톤 다부라 상무는 틱톡금지법에 대한 분석자료에서 “중국 정부는 지식재산권 절도의 역사가 길고, 그들이 찾는 정보의 범위는 기밀정보나 파괴적 공격의 범주를 훨씬 넘어선다”며 “그들은 (틱톡을 통해 수집한) 수백만 개의 기록을 빠르게 분류해낼 수 있다”고 말했다.

제임스 앤드루 루이스 워싱턴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전략기술프로그램 석좌의 분석에 따르면 틱톡금지법이 상정하는 틱톡의 위험은 △틱톡이 미국 정치를 혼란스럽게 하기 위한 중국 정부의 영향력 공작의 플랫폼이고 △스마트폰에 틱톡을 자발적으로 다운로드하는 행위는 기기에 중국의 악성 소프트웨어를 주입하며 △미국인의 개인 데이터를 수집하는 데 쓰인다는 것이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하지만 틱톡에 대한 우려가 근거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여전하다. 루이스 석좌는 틱톡 앱을 설치하고 업데이트하면서 틱톡 사용자들이 중국의 악성 소프트웨어를 자발적으로 주입하게 되는 것은 실체가 있는 위험이라고 설명했지만 “중국이 미국인들의 데이터를 10년간 수집해 오고 있지만 이것으로부터 이익을 얻었다는 증거는 없다”고 말했다.

특정 플랫폼을 금지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침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CSIS 내 같은 프로그램의 캐슬린 친 로트만 연구원은 연구자료에서 “(틱톡금지법은) 구조적 위험을 해결하기보다는 훨씬 좁은 접근 방식을 선택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인의 온라인 정보 보호를 위해 데이터 수집, 알고리즘 순위 조작 등에 대해 제한을 할 필요가 제기돼 왔지만, 틱톡금지법은 여러 플랫폼상에서 일어나는 안보 위협을 지키기 위한 포괄적 법안이라기보다는 중국계인 틱톡 한 회사만 겨냥한 훨씬 좁은 형태의 규제라는 얘기다. 틱톡금지법은 데이터 안보의 측면도 있지만 미국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정치적 상징성도 큰 법안인 셈이다.

미국이 틱톡을 금지하면서 자유주의 진영의 다른 국가에서도 비슷한 조치가 잇따르고 있다. 유럽의회는 지난달 틱톡 앱 사용을 금지하기로 했으며, 덴마크 의회도 모든 의원과 직원들에게 업무용 기기에 설치된 틱톡 앱을 삭제할 것을 강력 권고하는 내용의 이메일을 보냈다. 캐나다, 영국, 호주, 뉴질랜드, 일본 등에서도 틱톡과 관련된 규제가 논의 중이다.

 

◆데이터 보호 선제조치 나선 中

데이터 안보 강화는 필연적으로 인터넷상에서의 국경을 높이게 되고 국가 간 외교 분쟁을 불러일으킨다. 중국 정부는 미국 의회와 정부가 틱톡 사업권을 매각하라고 하는 것에 대해 “타인의 좋은 물건을 자기 것으로 삼으려는 건 완전히 강도의 논리”라고 꾸준히 비판해 왔다.

틱톡은 7일 워싱턴 법원에 미국 내 사업권 강제매각과 관련한 소송을 공식 제기했다. 틱톡은 소장에서 “모호한 국가안보 우려에 근거해 비상하고 위헌적인 권력을 주장하며 헌법이 보장한 1억7000만명 미국인들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에 사업권을 넘길 바에야 막대한 손해를 감수하고라도 사업을 접겠다는 얘기도 들린다.

하지만 중국의 데이터 안보 주권 보호 조치는 사실 역사가 더 길다. 애플은 지난달 중국 인터넷 관리 당국인 국가사이버정보판공실의 명령에 따라 중국 서비스에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왓츠앱과 스레드 등을 삭제했다. 중국 당국이 든 이유는 ‘국가 안보’였다. 애플 앱스토어에서 미국 앱이 사라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영향을 받는 국가는 미국뿐만이 아니다. 중국은 2017년부터 시행한 네트워크 안전법을 통해 주요 데이터의 국외 반출을 금지해 왔는데, 2021년 9월에는 기존 법에서 다루지 않은 데이터를 대상으로 더 포괄적인 규제를 시작했다. 이는 중국 내 사업을 하고 있는 한국 기업에도 영향을 미쳤다.

데이터 안보를 둘러싸고 중국에서 이달부터 국가기밀보호법 개정안이 발효되자 법안 적용 대상의 모호성 등을 둘러싸고 업계 우려가 커지고 있다. 법안은 사용자가 국가 기밀 등 민감한 정보를 게시할 경우 인터넷 기업이 조치를 취하도록 강제하고 있는데 어떤 것이 구체적으로 ‘국가 기밀’에 해당하는지 모호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우방국 간에도 데이터 주권 갈등

데이터 주권과 관련된 갈등은 진영 간 갈등에서 진영 내 갈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네이버와 소프트뱅크가 50%씩 보유한 라인 서비스 운영자 라인야후의 지분율을 조정하라고 일본 정부가 압박하고 나서면서다.

일본 정부는 일본인의 85%가 사용하는 메신저 라인을 관리하는 네이버 클라우드에서 정보 유출 사태가 발생하자 네이버 측의 지분율 조정을 요구하고 나섰다.

한국에서는 기업에 대한 재산권 침해로 받아들이고 반발이 일고 있다. 미·중 관계처럼 진영 경쟁을 벌이는 사이가 아니라 우방국으로서 오히려 최근 관계 호조를 맞고 있는 한·일 사이에 이 같은 일이 벌어진 것에 대해 국내에선 당황스러워하는 분위기다. 미국과 중국처럼 공개적으로 일본과 싸우기 어렵고, 자국 기업의 상황을 모른 척할 수 없는 한국 정부도 난감한 처지에 놓인 것으로 보인다.

다만 네이버 클라우드에서 지난해 11월뿐만 아니라 2021년에도 비슷한 정보 유출 사태가 있었고, 당시에도 일본의 시정조치 요구가 있었다는 점을 근거로 네이버의 보안 조치에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사이버안보를 연구하는 송태은 국립외교원 교수는 통화에서 “경제적 문제를 넘어서는 데이터 안보에 대한 요구가 늘어나는 중”이라며 “데이터 주권과 관련한 분쟁과 이에 따르는 각국의 조치는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평가했다.


홍주형 기자, 베이징=이우중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