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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에트르타' 흑산 영산도 코끼리바위 가보셨나요 [최현태 기자의 여행홀릭]

흑산도 동쪽 지키는 영산도 섬둘레 기암괴석 절경/프랑스 노르망디 에트르타 닮은 코끼리 바위 신기/마을 전망대 오르면 만삭의 여인 닮은 된볕산 한눈에/고즈넉한 해변 어우러지는 풍경 그림같아

영산도 '코끼리바위' 석주대문.
프랑스 에트르타 만포르트 절벽에서 본 바늘바위와 ‘엄마 코끼리’ 다발 절벽. 최현태 기자

바다를 향해 길게 내리뻗은 웅장하고 기다란 코와 반쯤 감은 졸리는 듯한 눈. 그리고 둥글둥글한 얼굴과 몸통까지. 멀리서 봐도 영락없는 코끼리다. 어찌 이리 신기하게 생겼을까. 전국에 많은 코끼리 바위를 가봤지만 이토록 정확하게 코끼리를 닮은 바위는 처음이다. 신이 빚은 걸작, 신안군 영산도 석주대문. 모네가 사랑한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 에트르타의 코끼리 바위를 그대로 빼닮았으니 너를 ‘한국의 에트르타’로 부르련다.

세계일보 여행면. 편집=김창환 기자
세계일보 여행면. 편집=김창환 기자

 

◆흑산 홍어가 시작된 영산도 가봤나요

 

홍어의 고장 전남 신안군 흑산도는 양쪽에 두 개의 섬을 거느리고 있다. 서쪽 바다는 장도가 지키고 동쪽은 영산도가 호위한다. 흑산도에서 남동쪽으로 6.4㎞ 떨어진 영산도의 비경을 보려면 장시간 배를 타는 수고를 감수해야 한다. 목포연안여객선터미널에서 쾌속선을 타고 2시간을 달려 흑산도 예리선착장에 내린 뒤 다시 작은 배로 갈아타고 20분을 더 가야 한다. 영산도 최성광 이장이 직접 키를 잡은 영산호에 올라 바닷길을 달린다. 날이 맑아 멀리 작은 섬들까지 또렷하다. 거친 바람에 머리카락이 마구 헝클어지지만 십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듯, 부푼 마음은 하늘로 끝없이 날아오른다.

영산호.

흑산면 영산도 선착장에 내리자 절벽에 내걸린 ‘국립공원 영산도 명품 마을’ 조형물이 여행자를 맞는다. 홍어 그림도 담겼는데 이유가 있다. 영산도가 흑산 홍어의 원조마을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영산도는 예로부터 해산물이 풍부해 고려시대 이전까지 흑산도보다 더 많은 사람이 영산도에 살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데 고려말 왜구들의 노략질이 심해지자 나라에서 섬 주민들을 육지로 이주시키는 정책을 폈다. 이에 영산도 사람들은 목포를 거쳐 나주에 정착했고 고향을 그리워하며 마을 이름을 영산포로 부르게 됐다. 영산도에서 영산포까지는 120여㎞ 거리. 영산도 일대에서 잡은 홍어를 배에 실어 영산포까지 가면 보통 열흘이 걸렸는데 항해 기간 가장 맛있게 삭힌 홍어가 만들어져 호남 제일의 먹거리가 탄생했다. 영산포에 홍어의 거리가 조성되고 홍어축제도 탄생한 배경이다.

영산도 명품마을 안내판.
영산도 전망대.

 

마을 입구 왼쪽에 전망대로 오르는 계단이 보인다. 좀 가파른 길을 헉헉대며 10여분 오르자 포근한 산자락이 마을을 말굽모양으로 감싼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작지만 아주 고운 모래사장이 깔린 해변과 푸른 바다, 선착장, 그리고 멀리 흑산도까지 어우러지는 모습이 그림 같다. 맞은편 높은 봉우리는 해발고도 220m의 된볕산. 최 이장은 햇볕이 되게 잘 들어 이런 이름을 얻었다고 귀띔한다. 

영산도 항구.
영산도 해변.

자세히 보면 길게 펼쳐지는 머리카락을 오른쪽에 두고 누운 만삭의 여인처럼 보인다. 더구나 거대한 바위 능선과 소나무가 어우러져 뭔가 신령스러운 기운도 감도는 것 같다. 바위 봉우리는 영산 12경 중 하나인 문암귀운(門岩歸雲). 이런 기운 덕분인지 섬은 해산물이 풍요롭고 물도 마르지 않는단다. 실제로 마을 사람들은 신령스럽다는 뜻의 한자를 써서 ‘영산도(靈山島)’로 부르기도 한다. 전망대에서 천박제와 깃대봉을 거쳐 선착장으로 내려오는 산책로가 이어지며 한 시간 반 정도 걸린다. 

머윗대 말리는 주민.
 석곡.

타박타박 걸어 마을길 산책에 나선다. 마을의 유일한 해변에서 아주머니가 산에서 베어온 머윗대를 말리는 중이다. 바짝 말려 나물로 묻혀 먹으면 달아난 식욕이 되돌아온단다. 목포가 고향인 그는 몇 해 전 이곳에 놀러 왔다가 아담한 포구와 해변이 너무 예뻐 아예 눌러앉았다. 아무 생각 없이 멍때리기 좋아 영산도에 정착한 뒤로는 마음이 더할 나위 없이 늘 고요하고 평화롭단다. 보건소와 치안센터를 지나면 마을을 찾는 여행자들을 위한 게스트하우스와 피크닉장이 등장한다. 화재 위험을 막기 위해 여행자들이 바비큐 등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놓았다.

영산도 마을길.
영산도 돌담길.

그 위의 건물은 흑산초등학교 영산분교. 하지만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고주파 웃음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한때 학생이 100명이 넘었지만 이제는 젊은이들이 다 육지로 떠나고 아이들이 없어 한 3년 전쯤 폐교되고 말았다. 마을에선 학교 건물을 활용할 방안을 고민 중이다. 주인이 떠나고 빈집으로 방치된 곳도 많이 보인다. 1650년쯤 최씨가 처음 살기 시작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는 마을엔 한때 400여 가구가 있었지만 지금은 13가구 33명 정도만 거주한다. 예쁜 꽃들이 꾸미는 탐방로를 지나면 제주와 비슷한 예쁜 돌담길이 이어진다. 제주처럼 바람이 아주 강한 곳이라 집집마다 돌담을 쌓았는데 소박하지만 예쁜 사진을 얻기 좋다. 

새바위.

◆배 타고 즐기는 신이 빚은 영산도 절경

 

영산도의 진가는 배를 타고 섬을 한 바퀴 돌아봐야 드러난다. 섬 전체가 자연이 빚은 거대한 조각 작품처럼 섬 둘레를 따라 파도와 바람이 빚은 절경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코끼리바위∼비성석굴∼파수문∼용생왕굴∼천연석탑∼비류폭포∼고래바위∼부처바위를 둘러보는 바닷길은 한 시간 반 정도 걸린다. 

시루떡바위.

영산도 선착장을 출발한 배가 섬의 서쪽으로 방향을 틀자 탄성이 쏟아진다. 태초의 신비 가득한 깎아지른 절벽과 억겁의 세월이 나이테처럼 켜켜이 쌓인 단층의 구조가 또렷하다. 우리나라에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있었다니. 말문이 막힐 정도로 큰 감동에 휩싸인다. 고릴라 옆 모습을 한 산을 지나면 작은 해변이 등장하는데 한때 10여 가구가 살던 액기미마을이 있던 곳이다. 액운이 있는 사람은 오지 말라는 뜻으로 지었는데 현재는 마을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해변을 통째로 빌려 나른한 오후를 즐기기 좋아 보인다.

석주대문.

새바위를 지난 배는 이제 영산도 최고의 비경, 석주대문으로 힘차게 나아간다. 멀리서도 입이 쩍 벌어지는 풍경이다. 바다를 향해 튀어나온 깎아지른 절벽 한가운데 거대한 구멍이 뚫려 마치 코끼리가 바다에 코를 박고 힘차게 물을 빨아들이는 듯한 신비로운 모습이다. 프랑스 여행 때 들렀던 노르망디의 유명한 여행지 에트르타의 축소판이 눈앞에 펼쳐지는 것 같다. 뚫린 석주대문 안으로 흑산도가 펼쳐지는데 봄과 가을에는 석주대문 안을 가득 채우는 황홀한 저녁노을도 만날 수 있다. 작은 배는 석주대문 안으로 오갈 수 있어 더욱 가까이서 절경을 즐길 수 있다. 옛날 청나라와 교역할 때 이곳을 지나는 배들이 풍랑을 만나면 석주대문 안으로 대피했단다. 밖에는 아무리 거센 파도가 몰아쳐도 석주대문 안으로만 들어서면 거짓말처럼 파도가 잔잔해졌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할아버지 바위.
용왕생굴.
낙타바위.

비성석굴은 바위 구멍으로 크게 코 고는 것 같은 소리가 나면서 세차게 바닷물이 뿜어져 나오는데 10m 이상 솟구치기도 한다. 비류폭포는 많은 비가 온 직후에만 만날 수 있는데 절벽 틈새로 쏟아져 내리는 폭포를 세 차례 맞으면 무병장수한다는 전설이 깃들어 있다. 재미있는 바위들이 많다. 석주대문을 지나면 시루떡바위가 등장한다. 단층이 사선으로 만들어진 독특한 모습인데 마치 시루떡을 차곡차곡 쌓아놓은 모습이다. 이어 등장하는 사자바위는 사자의 옆얼굴을 그대로 닮았고 입을 크게 벌려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고 포효하고 있다. 옆모습이 인자한 어르신을 닮은 할아버지 바위, 낙타가 엉덩이를 바다로 향하고 있는 낙타바위, 고래바위 등이 끊임없이 등장해 지루할 틈이 없다. 하얀 등대가 설치된 고래바위에선 염소 한 마리가 한가로이 풀을 뜯는 목가적인 풍경도 만난다.

고래바위.
흑산 홍어.

뱃놀이 삼매경에 푹 빠졌다가 흑산도 선착장에 내리니 배가 출출하다. 흑산도에 왔는데 홍어를 빼놓을 수 없다. 맛집으로 소문난 섬나라 식당에서 홍어삼합을 주문하니 고소한 홍어애까지 듬뿍 얹은 삭힌 홍어와 수육이 접시에 가득 담겨 나온다. 칠레산, 국산홍어를 다 먹어봤는데 역시 흑산 홍어는 뭔가 좀 다르다. 쫀득쫀득한 찰진 식감이 뛰어나고 홍어 특유의 퀴퀴한 향도 보다 깊이감이 느껴진다. 홍어 한 점에 수육과 묵은지 얹어 입으로 밀어 넣고 식당에서 직접 담근 막걸리 한 모금 곁들이면 남도 최고의 미식이 완성된다.


영산도=글·사진 최현태 선임기자 htchoi@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