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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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슈비츠 담 하나로 나뉜 낙원과 지옥…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 6월 5일 개봉

나치 장교 일가의 평화와 소각로 연기 대비

초록이 넘실대는 호숫가, 한 가족이 한가롭게 풀밭에 누워 있다. ‘그래, 저런 게 행복이지’ 싶은 영화 도입부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사진)를 다 보고 나면 이런 감상은 온데간데없어진다. 본능을 건드리는 소름끼침, 폐부 깊숙이 스며드는 섬뜩함이 대신 자리한다.

내달 5일 개봉하는 이 작품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집단수용소를 다뤘다. 악명 높은 아우슈비츠가 배경이다. 그럼에도 구타나 총격, 피 흘리는 얼굴 한 번 나오지 않는다. 수용소와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둔 저택에서 나치 장교 일가가 향유하는 평화로운 나날이 영화 내내 흐를 뿐이다.

나치 지휘관 루돌프 회스와 아내 헤트비히는 아름다운 2층 주택에 산다. 아이들을 위한 미끄럼틀과 수영장을 갖춘 집에서 반려견마저 너무도 자유롭고 평화롭게 돌아다닌다. 헤트비히의 모친은 딸의 집을 방문해 “낙원이 따로 없구나” 하고 감탄한다. 회스는 자상한 아빠다. 아이들과 강에서 보트를 타고, 밤에는 침대맡에서 동화를 읽어준다.

이 영화의 탁월함은 모순과 대비에 있다. 이들 가족의 아름다운 날들 사이로 대학살을 암시하는 날카로운 비명, 산발적인 총성이 들릴 듯 말 듯 이어진다. 아이들이 신나게 물장구치는 수영장 너머에는 유대인을 태우는 소각로의 연기가 시커멓게 솟아오른다. 스크린에는 여전히 푸른 하늘과 따뜻한 햇살이 가득한데, 손톱으로 유리를 긁는 소리처럼 꺼림직하고 불안한 기운이 배어나온다.

어른들의 무신경함은 기괴하고 섬뜩하다. 유대인 희생자들의 소지품을 가로챈 아내는 친구들에게 “이 다이아몬드 어디서 났게? 치약 안에 있더라. 하여간 잔머리 하나는”이라고 자랑한다. 나치 장교와 기술자들은 쉴 새 없이 400∼500명을 소각할 수 있는 시설을 지극히 무덤덤한 얼굴로 검토한다.

이 영화는 나치 부역자들의 끔찍함을 고발하는 데서 나아가 인간의 본성을 묻는다. 영화 후반 나치 전범들이 드레스를 입고 모여든 우아한 파티는 문명이란 무엇인가 신랄하게 꼬집는 듯하다. 조너선 글레이저 감독은 “가해자들의 모습을 통해 어느 정도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 작품은 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국제장편영화상과 음향상, 제76회 칸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받았다.


송은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