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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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채 상병’ 특검법 부결, 정쟁에 시급한 민생법안 끝내 줄폐기

이제 공수처 엄정한 수사에 달려
전세사기법, 민주유공자법 강행
‘협치 부정’ 오명 남긴 21대 국회

어제 열린 21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해병대원 채 상병 순직 사건 특별검사법안이 부결됐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해당 법안을 재표결에 부쳤으나 헌법이 정한 가결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것이다. 부결이 뻔히 예상되는 상황에서 입법 폭주를 강행한 더불어민주당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거대 야당이 정략적 목적에서 특검법안 통과에 매달리느라 더 시급한 민생법안들은 줄줄이 폐기될 처지에 놓였으니 개탄스러운 일이다.

채 상병 사건은 현재 두 갈래로 나뉘어 수사가 진행 중이다. 대민지원 도중 숨진 채 상병의 정확한 사인을 규명하는 것은 경찰의 몫이다. 채 상병이 순직한 뒤 시작된 해병대 수사단의 조사 활동에 ‘윗선’의 외압이 있었는지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파헤치고 있다. 야권은 윤석열 대통령이 해병대 수사단의 조사 결과를 보고받은 뒤 불만을 표했다는 ‘VIP 격노설’을 들어 특검 필요성을 주장한다. 하지만 이 또한 현재 공수처가 수사하고 있으며 조만간 대통령실 관계자도 불러 조사할 방침이다. 특검법안이 폐기된 만큼 이제 공수처 수사가 더욱 중요해졌다. 야권도 무리한 특검론을 접고 공수처 수사를 차분히 지켜봐야 할 것이다.

여야가 채 상병 사건 특검법안을 놓고 대치하는 동안 국민 안위 및 기업 경쟁력 강화와 직결된 민생법안들은 철저히 외면당했다. 위험성이 큰 방사성 폐기물을 안전하게 처리하는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저장시설 특별법, 인공지능(AI) 시대에 대비하는 AI 기본법, 한국 반도체 산업의 미래가 걸린 K칩스법, 신속한 재판을 위해 판사를 늘리는 법관정원법 등이 21대 국회 임기만료와 동시에 폐기될 운명이다. 민주당은 이런 법안들에는 ‘나 몰라라’ 하면서도 정작 전세사기 특별법안만은 단독 처리했다. 정부·여당이 “주택도시기금 재원에 구멍이 생긴다”는 이유로 극력 반대한 사안이다. 21대 국회 폐원을 앞둔 시점까지도 여야 협치의 정신을 깡그리 내팽개쳤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이로써 2020년 코로나19 대유행 와중에 출범한 21대 국회는 역대 최악의 입법부라는 오명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곧 개원할 22대 국회는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 소모적 정쟁을 중단해야 할 것이다. 원 구성 과정에서 소수당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등 협치 불씨를 되살리기 바란다. 아울러 21대 국회 임기가 끝남과 동시에 사장되는 중요한 민생법안들 처리를 최우선 과제로 삼길 고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