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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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병원서 만난 70대에 ‘아빠’ 부르며 동거하다 살해한 20대男…이유는

동거 후 성적 학대, 주취 폭력에 적개심 품어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정신병원에서 만나 함께 살던 70대 남성을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한 20대 지적장애 남성이 중형을 선고받았다. 

 

13일 법조계에 따르면, 부산지법 형사5부(부장판사 장기석)는 살인 및 사체손괴 등 혐의로 기소된 A(20대)씨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10년간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 부착 명령과 특정범죄 치료프로그램 40시간 이수 등 준수사항도 내렸다.

 

A씨는 작년 12월 10일 오후 부산 영도구의 한 아파트에서 동거하던 B(70대)씨를 수차례 폭행해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다. 흉기로 B씨 시신을 수차례 찔러 훼손한 혐의도 있다.

 

두 사람은 2022년 4월 부산의 한 정신병원에서 만났다. A씨는 분노조절장애 치료를 위해, B씨는 알코올의존증으로 입원 중이었다. A씨는 B씨를 ‘아빠’라고 부르며 따랐고, 퇴원 후 같이 살자는 B씨 제안에 이듬해 1월부터 한집에 살기 시작했다.

 

‘아빠’와의 생활은 예상과 달랐다. 초반 한 달간 B씨는 A씨에게 성행위를 지속 요구했다. 술 심부름을 시키고 말을 듣지 않으면 폭행과 욕설을 했다. B씨는 과거에도 청소년에 대한 유사 강간 행위로 처벌받는 등 다수의 성범죄 처벌 전력이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A씨는 일련의 일들에 불만을 품고 있던 것으로 전해졌다.

 

둘은 자주 다퉜고 서로 폭행당했다며 경찰에 여러 차례 신고하기도 했지만, 매번 화해했다. 기초생활수급비 등을 모아 사실상 경제공동체로 생활했기 때문이다.

 

범행 당일 B씨는 A씨에게 술 심부름을 시켰고, 술을 사왔음에도 욕을 퍼부었다. 이에 A씨는 B씨를 폭행하기 시작했고 B씨는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A씨는 분이 풀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흉기를 이용해 B씨 시신을 훼손하기까지 했다.

 

A씨 측 변호인은 “B씨는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A씨 몸에 상처를 내거나 경찰에 신고해 강제로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려 했다”며 “사건 당일에도 B씨가 ‘집에서 나가라’고 말하자 또다시 버림받는다는 생각에 순간 화를 참지 못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A씨는 어릴 적 새아버지의 학대와 어머니의 방관 속에서 정서적·신체적 학대를 받아왔다. 노숙 생활을 하면서도 명의도용 사기를 당하고 B씨와 함께 생활하는 동안엔 부당한 일을 겪었다. A씨가 겪어온 세상은 보호받을 곳 하나 없는 전쟁터 같은 곳이었고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공격적 태도를 보였을 것”이라며 선처를 호소했다.

 

A씨 측은 범행 당시 심신 장애 상태에 있었음을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A씨가 범행 직전 상황에 관해 상세히 기억해 진술하고 있고, 자신이 B씨에게 한 구체적 행위 등에 대해 명확하게 인식하고 행동했다”며 “이 사건 범행 당시 정신장애로 인해 사물 변별 능력이나 의사 결정 능력 등이 미약한 상태 이르렀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사람의 생명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소중하며 반드시 보호받아야 할 절대적 가치다. A씨는 살해에서 그치지 않고 이미 사망한 피해자의 사체를 반복해 흉기로 찌르는 등 분풀이하듯 추가 범행을 저지르는 등 그 죄책이 무겁다”며 “여러 측면에서 중형으로 A씨를 장기간 사회에서 격리할 필요가 크다”고 양형 이유를 전했다.

 

재판부는 동시에 A씨의 생활과 가정환경 등 배경을 참작했다. 재판부는 “A씨는 유년 시절부터 부모로부터 적절한 보호를 받지 못한 채 방치돼 성장한 것으로 보이고 청소년기에 심한 교통사고를 당한 후유증으로 중증 지적장애 및 분노조절장애를 앓고 있으며 ‘상세 불명의 조현병’ 진단을 받은 전력이 있다”면서 “이같은 정신질환이 이 사건 범행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했다.

 

이어 “A씨는 자신보다 나이가 50세가량 많은 B씨에게 먼저 ‘아빠’라고 부르며 정신적으로 의지하려는 태도를 보이기도 했으나, 동거 생활 시작 후부터 성적 학대를 당하고 B씨가 주취 상태에서 폭력적인 모습을 보이는 등 일이 반복되자 상당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음과 동시에 피해자에 대한 적개심도 키워왔다”고 부연했다.

 


강나윤 온라인 뉴스 기자 kkang@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