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를 뜨거운 물에 담가 도살한 70대 도축업자가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로 지난달 벌금 200만원을 선고받았다. 지난해 9월에는 별다른 이유 없이 키우던 개를 오토바이에 매달고 집 앞 도로에서 200가량을 운전한 70대에게 벌금 300만원이 선고됐다. 또 2022년 2월에는 아파트에서 반려견을 집어 던져 죽인 40대가 벌금 500만원을 선고받았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가 크게 늘고 동물복지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높아졌지만 법원에서 선고되는 형량은 들쭉날쭉하고 가벼운 편이란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동물학대 범죄 유형에 대한 구체적인 양형 기준을 마련하기로 했다.
대법원 양형위는 17일 대법원 회의실에서 전체 회의를 열고 동물보호법 위반 범죄 양형 기준 설정안에 합의했다고 18일 밝혔다. 양형 기준은 일선 판사들이 형량을 정할 때 참조하는 일종의 지침이다. 반드시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기준을 벗어나 판결하려면 별도 이유를 적어야 한다.
신설 양형기준은 크게 ‘동물을 죽이거나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 ‘동물에게 고통을 주거나 상해를 입히는 행위’로 나누어 형량을 권고한다. 현행 동물보호법은 이들 범죄의 법정형을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각각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실형이 선고되는 경우는 드물다. 대법원 사법연감에 따르면 2022년 동물보호법 위반 1심 사건 82건 중 절반 이상인 46건(56%)은 벌금형 선고에 그쳤다. 징역형의 집행유예는 14건(17%), 징역형의 실형은 5건(6%) 수준이었다.
양형위는 동물학대 범죄 중 행위 유형, 피해정도, 법정형과 죄질 등을 고려해 발생빈도가 높은 범죄를 양형기준 설정대상에 포함시켰다. 우선 ‘동물을 죽이거나 죽음에 이르게 하는 범죄’와 관련해선 구체적으로 △동물의 목을 매다는 등 잔인한 방법 또는 노상 등 공개 장소에서 죽이거나 동종 동물이 보는 앞에서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 △부득이한 사유가 없는데도 다른 동물의 먹이로 사용하는 행위 △반려동물 사육·관리 또는 보호 의무를 위반해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 등에 대한 양형기준을 설정하기로 했다. 동물에게 고통을 주거나 상해를 입히는 범죄와 관련해선 △도구·약물 등 물리적·화학적 방법으로 상해를 입히는 행위 △살아 있는 상태에서 동물의 몸을 손상시키거나 체액 채취 장치를 설치하는 행위(치료 등은 제외) △도박·광고·오락·유흥 등 목적으로 상해를 입히는 행위 등에 대해 양형기준을 설정한다.
양형위는 “국민적 관심과 발생 사건수의 증가, 각계의 양형기준 신설 요청 등을 종합해 양형기준을 신설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경찰에 접수된 동물보호법 위반 범죄 신고 건수는 2010년에 69건에서 2021년에 1072건, 2022년에 1237건으로 크게 늘었다.
양형위는 지하철·공연장 등 공중밀집장소에서의 추행과 직장 등에서 발생하는 피보호·피감독자 대상 성범죄의 양형기준도 마련하기로 했다. 구체적인 권고형량 범위와 가중·감경 요소는 이번 회의에서 다뤄지지 않았다. 동물보호법 위반죄는 올해 11월, 성범죄는 내년 1월 구체적 기준을 마련하며 내년 3월 확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