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2당(더불어민주·조국혁신)이 9일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을 즉각 발의할 것을 국회에 요청하는 국민청원의 타당성을 따져보겠다며 이달 19일과 26일에 청문회를 여는 안건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여당 불참 속에 강행 처리했다. 정청래 법사위원장(민주당)은 여당인 국민의힘 측 법사위 간사 선임을 뒤로 미룬 채 쟁점 사안인 청문회 일정과 증인·참고인 명단 등 세부사항까지 야당 단독으로 의결했다.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도 증인 명단에 포함됐다. 여당은 “위원장의 직권남용”이라고 반발하며 회의장을 떠났다.
◆시작부터 파행
법사위 회의는 국민의힘 간사 선임을 다른 안건에 우선 처리해 달라는 여당과, 수용할 수 없다는 정 위원장이 맞서며 시작부터 갈등의 자물쇠에 갇혀 버렸다. 22대 국회 개원 직후 민주당은 법사위원장직을 확보하고 김승원 의원을 야당 간사로 선임해 반쪽 법사위를 운영해 왔다. 국민의힘은 소수당이 법사위를 맡아온 관례를 야당이 깼다며 의사일정을 한동안 거부했었다. 이날 비로소 여당 측 간사로 유상범 의원을 내세우려 했는데, 정 위원장이 접수된 안건 순으로 처리해야 한다고 해 여당의 반발을 샀다.
국민의힘 송석준 의원은 “늦게 접수됐어도 사안의 중요성, 여야 합의에 의한 진행을 위해 간사 선임을 먼저 하는 게 불가능한 건 아니다”라고 항의했지만 정 위원장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민주당에선 장경태 의원이 “새치기 안건 상정에 반대한다”며 정 위원장을 엄호했다.
장 의원은 또 법사위에 보임한 국민의힘 곽규택 의원이 채 상병 특검법 반대를 위한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 과정에서 야당 법사위원 상당수가 수사 또는 재판받는 점을 거론한 것에 대해 사과를 요구해 여야 갈등에 기름을 부었다. 곽 의원은 야당 의원들을 가리켜 “그분들 신분이 재판받고 있는 피고인이거나 수사받고 있는 피의자란 말씀은 분명히 다시 드릴 수 있다”며 “앞으로도 틈날 때마다 계속 설명할 것”이라고 맞받았다. 옥신각신 끝에 여당 간사 선임은 다섯 번째 안건으로 밀렸다.
◆절차 건너뛰고 청문회로 직행
윤 대통령 탄핵안 발의를 촉구하는 국민청원에 대한 청문회를 열어야 할지를 논의하는 토론에서 발언권을 얻은 의원은 민주당 3명(전현희·이건태·서영교), 국민의힘 2명(곽규택·주진우), 조국혁신당 1명(박은정)이었다.
야당은 윤 대통령이 채 상병 특검법에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한 점을 문제 삼고 “윤 대통령은 수사 대상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130만명 이상이 동의했다” 등 주장을 펴며 청문회를 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맞선 여당은 “법리적으로 내용이 맞지 않는 청원서 하나로 탄핵소추를 위한 조사를 하겠다는 것 자체가 헌법 위반”, “청원을 주도한 사람이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전과 5범” 등 발언으로 맞섰다.
이후 여당 의원들이 정 위원장의 회의 진행방식에 반발하며 퇴장하자 안건 처리는 야당 뜻대로 일사천리로 처리됐다. 해당 청원에 대한 심사를 청원심사 소위로 회부하는 과정도 생략됐다. 정 위원장은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한다”고 했다. 증인 39명과 참고인 7명에 대한 출석 요구 및 청문회 일정이 야당 단독으로 법사위에서 처리됐다. 대통령 부인 김 여사와 장모 최은순씨를 비롯해 신원식 국방부 장관과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 등이 증인 명단에 올랐다.
국민의힘 법사위원들은 정 위원장이 회의 진행을 독단적으로 하고 있다며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유 의원은 “정 위원장은 잘못된 법률 지식을 근거로 일방적으로 여당 의원의 대체토론 요구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종결했다”고 했다. 여당은 정 위원장을 국회 윤리특위에 제소할지를 검토하겠다는 방침이다.
앞서 국민의힘 추경호 원내대표는 당 회의에서 “민주당이 대통령 탄핵 야욕을 생각보다 빨리 드러냈다. 젊은 군인의 비극을 탄핵의 불쏘시개로 이용하겠다는 정치적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청원에 나온 대통령 탄핵 5가지 사유를 일일이 거론하며 “내용을 뜯어보면 말도 안 되는 청원”이라고 말했다. 그는 국회법과 국회 청원 심사규칙을 인용, “감사·수사·재판 등 다른 법령에 의한 절차가 진행 중인 사항은 청원 처리 예외 대상”이라고 했다. 추 원내대표는 10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야당의 청문회 추진 관련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