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정선군 고즈넉한 산골 마을에 세계의 인형극 인형들이 전시된 ‘아라리 인형의집’이 있다. 인형극의 대부 안정의(84)씨가 1998년 폐교된 북평초등학교 나전분교를 활용해 만든 곳이다. 아라리 인형의집은 개관 후 지금까지 전시 및 공연, 워크숍,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 운영 등 다양한 인형극 관련 활동을 해오고 있다.
설립자이자 대표인 안씨는 1962년에 인형극에 입문했다. 아직도 전국 인형극단 주문을 받아 인형을 제작하고 인형극제를 기획하는 현역이다.
아라리 인형의집은 인형극 박물관, 인형 공방, 야외공연장, 체험학습장, 버스 인형극장으로 이뤄져 있다. 인형극 박물관에는 공연용 인형, 인형극 관련 포스터, 탈, 장식 인형, 전 세계 인형극단과 일반인이 기증한 인형 총 180여점이 전시되어 있다. 각국의 다양한 인형에선 고유한 문화와 풍속을 엿볼 수 있다.
인형극은 조종 방식에 따라 종류가 나뉜다. 손에 끼워 주로 밑에서 연기하는 손 인형극, 인형을 줄에 달아 위에서 조종하는 줄 인형극, 인형에 막대기를 넣어 밑에서 움직이게 하는 막대 인형극, 그림자를 스크린에 비추어 공연하는 그림자 인형극이 있다. 인형을 만드는 데는 종이, 나무, 플라스틱, 스티로폼, 천 등이 쓰인다. 중국은 당나귀 가죽, 인도네시아는 물소 가죽으로도 그림자 인형을 만들었다.
야외공연장 옆 가정집에 있는 지하로 들어서니 사방에 인형을 만드는 데 필요한 작업 도구와 인형극에 사용된 인형들로 가득 찬 안 대표의 공방이 나타났다. 인형에 생명을 불어넣는 곳이다. 주로 빨간색 모자를 쓴다는 안 대표의 모습에선 피노키오를 만든 제페토 할아버지가 떠오른다
손재주가 좋았던 안 대표는 1960년대 초부터 한국민속학회에서 전통 탈을 만들었다. 1962년 KBS에서 인형극을 방영하면서 인형극 전문 극단인 서울인형극회가 생겨났다. 안 대표도 거기에 소속돼 본격적으로 인형극을 배우기 시작했다. 인형을 만들고 연기, 연출도 직접 했다. 초창기에는 경제적으로 어려워 아르바이트를 병행해야 했다. 1977년부터 서울인형극회를 이끌었다. 극단이 안정화되자 유네스코 산하 단체 유니마(UNIMA·국제인형극연맹)에서 4년마다 열리는 국제 인형극제에도 참가했다.
1980년대 들어서면서 유아 교육기관이 많이 생겨났다. 아이들이 볼거리가 없었던 시절 인형극의 수요가 많아져 사정이 좋아지게 됐다. 전국에 인형극단이 70~80개 생기면서 인형극이 꽃을 피웠다. 인형극은 인류가 생기면서부터 가장 먼저 시작된 예술이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아이들은 자발적으로 역할을 나누어 인형 놀이를 한다. 아이들이 직접 인형을 만들고 연극을 해보는 과정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고 자신의 적성도 찾을 수 있다. 이렇게 인형극은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고 정서발달에 도움을 준다.
서울에 최초의 인형극 전용 극장이 생기고, 강원 춘천에 어린이회관이 준공된 1989년에는 서울인형극제와 춘천인형극제를 시작했다. 10회를 마치고 손을 뗐다. 춘천인형극제는 계속해서 이어오고 있지만, 서울인형극제는 얼마 가지 않고 문을 닫았다. 지금은 춘천, 강릉, 정선, 경기인형극제 정도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미디어 발달로 대중 관심에서 멀어진 인형극을 활성화하기 위해 지속적인 관심과 전문 교육기관이 필요하다.
인형극에 평생을 바친 안 대표는 2022년에는 인형극 입문 60주년을 맞아 인형극 관련 활동에 대한 자료와 기사를 모아 책을 내기도 했다.
인형극은 연극과 달리 사람이 아니라 인형을 매개체로 활용한다. 손끝으로 인형을 조종해 감정을 전달한다는 점이 연극과 다르다. 안 대표는 인형극의 역사를 후세에 남기기 위해 인형극에 몸담았던 인형극인에 관한 유작전을 준비 중이다. 그는 “극이 끝나도 인형을 보면 시각적 여운이 남기 때문에 남겨진 인형으로 인형극을 열면 고인을 기억할 수 있다”며 “후배들이 기억하고 인형극을 역사로 기록하기 위해 앞으로 인형극인의 유작전을 열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