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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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팝 안무에 저작권 있다? 없다?…“창작성 기준 공감대 필요”

안무가 대상 최초 실태조사 결과 발표

안무가 5명 중 2명 “계약서조차 작성하지 않아”
계약서 필요성 느꼈더라도 관행상 요구하지 못해

안무에도 저작권이 있을까?

 

법원은 이미 10여년 전 안무에도 저작권이 있다고 인정했다. 2011년 걸그룹 시크릿 안무가 박모씨는 자신이 창작한 춤을 무단으로 사용했다며 댄스교습학원 가맹업체와 가맹점주 3명을 상대로 저작권침해 금지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서울중앙지법은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안무도 저작권 보호 대상”이라고 판시했다.

 

그러나 안무의 저작권을 둘러싼 분쟁은 계속되고 있다. 지난 5월 그룹 뉴진스 안무가들이 하이브 산하 레이블 빌리프랩 소속 그룹 아일릿의 안무 표절 의혹을 제기하며 주목받았다. 앞서 민희진 어도어 대표는 아일릿이 뉴진스를 베낀다고 주장해 왔다. 하이브는 아일릿의 뉴진스 표절 건을 인정하지 않았다.

 

한국저작권위원회와 한국안무저작권협회, 안무저작권학회는 30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국저작권위원회 서울사무소에서 ‘2024 하계 안무 세미나’를 열고 업계 관행과 권리에 대한 낮은 인지도 등으로 안무저작권이 제대로 인정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날 세미나에선 안무가를 대상으로 진행된 최초의 실태조사 결과가 발표됐는데, 전문가들은 가이드라인 마련 등 제도 개선도 필요하지만 안무저작권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30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국저작권위원회 서울사무소에서 세미나가 열렸다. 이날 세미나에는 안무가와 법조인 등이 참석했다.

한국안무저작권협회가 국내 안무가 9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실태조사를 보면 응답자 97.8%가 안무저작물을 등록해본 경험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안무저작권 등록을 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로는 ‘안무저작물에 대한 낮은 인지도’(72.2%)와 ‘등록 절차에 대한 정보 부족 및 어려움’(72.2%)이 꼽혔다.

 

안무가의 약 92%가 안무저작권을 보호하고 행사해야 한다고 답했지만, 정작 저작권에 대한 인지도와 이해도는 상대적으로 낮았다. 안무저작권에 대해 ‘정확히 잘 모른다’고 응답한 안무가는 58.7%, ‘전혀 모른다’고 답한 안무가는 5.4%를 차지했다.

 

한국안무저작권협회장을 맡은 리아킴 안무가가 실태조사 결과를 설명하고 있다.

심지어 창작 과정에서 계약서조차 제대로 작성하지 않은 안무가들도 많았다. 안무저작권 보호 현황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약 40%가 최근 3년간 안무 창작에 참여하며 정식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은 이유로는 ‘계약서 작성의 필요성을 느꼈으나 관행상 요청하지 못했다’라는 답변이 47.8%로 가장 많았다. ‘구두 계약’을 맺었다고 응답한 안무가는 26.1%, ‘아무 계약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고 응답한 이들은 13.0%였다.

 

토론에 참여한 이언 법무법인 강남 변호사는 “실용무용과를 갓 졸업한 20대 초중반 젊은이들은 학원에서 아르바이트를 몇 개씩 뛰어도 한 달 100만원 벌면 많이 버는 것이 현실”이라며 안무저작권 활성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세미나에서 토론자들이 안무저작권을 둘러싼 쟁점을 두고 이야기하고 있다.

안무의 창작성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지 논의가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안경준 본지 기자는 “안무 창작성의 기준에 대해 안무가들의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안무가들의 관점이 널리 알려져야 안무 저작권을 접하는 국민도 쉽게 공감하고 분쟁도 최소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어 “실태조사가 이뤄진 만큼 안무가들이 먼저 가이드라인을 논의해 볼 기회가 마련됐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글·사진=윤준호 기자 sherpa@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