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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기 서울문화재단 대표 “서울 예술창작공간 거점 활용…시민 문화 접근성 높일 것” [세계초대석]

양질 콘텐츠 공급… ‘문화향유 20분 도시’로
이동 약자 위한 ‘찾아가는 스테이지’ 확대
노들섬, 예술섬으로… 세계적 랜드마크 조성

상업성과 먼 순수 예술 뒷받침 중요 역할
작년 1570건 200억 지원… 공정심의 강화
선정 시기도 개선… 예술 지원 시계추 바꿔

초기 공무원 내려놓고 악착스럽게 일해
현장 발로 뛰며 문화예술행정가 거듭나
임기 종료 두 달 앞두고 “치열하게 살았다”

예술 창작활동 지원체계 개선, 사계절 예술축제, 서울예술인지원센터 개관, 청년·원로예술인 창작지원, 이동 약자 등을 위한 ‘찾아가는 스테이지’ 신설, ‘리스테이지 서울(공연무대 용품 재활용·공유 기반)’ 구축, 문화예술교육센터 확대….

이창기 서울문화재단 대표가 지난달 29일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문화예술교육센터에서 세계일보와 만나 올해 창립 20주년을 맞은 재단의 주요 사업과 비전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 대표는 2021년 10월 취임 후 예술인 지원과 서울시민 문화 향유 기회 확대를 위해 20여개 신규 사업을 추진하고 내부 조직·업무 혁신에도 힘썼다.   이제원 선임기자

이창기(65) 서울문화재단 대표가 2021년 10월 취임 후 예술인 지원과 서울시민 문화 향유 기회 확대를 위해 추진한 주요 사업이다. 이 외에도 많은 예술인과 시민에게 박수받을 만한 서울문화재단 사업이 적지 않다. 재단 창립 20주년인 올해 기준 총 사업비가 1300여억원에 달하는 서울시 출연기관으로서 제 역할을 톡톡히 한 셈이다. 재단 안팎에선 이 대표의 지도력과 기획력, 추진력 덕분이란 평가가 나온다. 그는 재단을 맡자마자 관성적으로 일하거나 느슨한 조직을 혁신하고 효용성이 낮은 사업을 조정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위축된 예술계와 문화생활에 갈증을 느끼던 시민들에게 실질적 도움이 될 수 있는 조직으로 개편한 것이다. 이 대표 체제에서 신규 사업만 따져도 20여개에 달하는데 큰 진통 없이 안착한 배경이다. 일례로 지난해 본격 선보인 사계절 예술축제(아트페스티벌 서울)의 경우 예술인 4000여명이 참여하고, 관람객은 연평균(25만명)을 훨씬 웃도는 35만명가량 몰렸다. 시민들이 매긴 축제별 만족도는 평균 91점 이상이었다.

자연스레 상복도 따라왔다. 이 대표 임기 중 서울문화재단은 공공기관 최초 삼일투명경영대상, 대한민국예술문화대상 등 17개 상을 받았다. 그전 10년 동안 받은 상보다 더 많다.

임기 종료를 두 달가량 앞두고 지난달 29일 서울문화예술교육센터 용산에서 세계일보와 만난 이 대표는 “시간이 참 빠르다”며 “(임기 내내) 치열했다”고 표현했다.

이 대표는 안정적인 공무원 신분을 내려놓고 문화예술계 울타리 안으로 넘어왔을 때부터 치열한 삶을 살았다. 학창 시절 문화예술 분야 사업가를 꿈꾸다 대학 졸업 후 대학가 축제 기획사를 운영했다. 1년 반 열심히 했지만 적자를 면치 못했다. 친구 따라 치른 서울시 공무원 시험에 붙어 1987년 공직자가 됐다. 10여년 지나 자치구 감사를 담당하는 힘센 부서에서 일해도 별로 신나지 않았다. 마침 서울시 산하 세종문화회관이 재단법인화하자 과감하게 옮겼다. 1999년 7월이었다. 이 대표는 “해외 유학파와 예술의전당, 카네기홀 출신 등이 수두룩한 곳에서 가방끈도 짧은 공무원 출신을 반기지 않아 냉대도 많이 받았다”고 떠올렸다. 그래서 더 악착스럽게 일하고 공부했다. 퇴근하면 대학로로 가 공연 보고 예술계 인사들과 교류하며 현장을 배우느라 새벽 귀가는 예사였다. 또 세종문화회관 전속 예술단체 단원들을 통해 국악·뮤지컬·클래식 등 장르별 생태계를 깊이 파악했다. 그러면서 특유의 성실함과 번뜩이는 기획으로 탁월한 업무 성과를 냈다. 그렇게 홍보실장, 공연기획팀장, 경영기획팀장 등 요직을 두루 거쳐 경영본부장 자리까지 올랐다. 4급에서 시작해 1급(본부장)까지 승진한 사례는 세종문화회관 최초였다. 그러나 안주하지 않고 박수 칠 때 떠났다. 2011년 강동아트센터 초대 관장과 2015년 마포문화재단 대표를 4년씩 맡아 명실상부한 기관으로 탈바꿈시키며 문화예술행정가로 거듭났다.

“누구에게나 다 그럴 텐데 위기에 처할 때마다 어떻게 헤쳐나가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역량이 달라지게 됩니다. 위기는 더 넓고 큰 것을 볼 수 있게 하는 기회이자 자신을 성장시키는 발판입니다. 직원들한테도 항상 ‘위기 없이 온 사람들은 성장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강조합니다.” 다음은 일문일답.

―서울문화재단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간략히 소개한다면.

“서울에서 활동하는 예술인 지원과 시민 문화 향유 확대에 힘쓰는 기관이다. 특히 수익성·상업성과 거리가 멀어 공공 지원이 필요한 순수 기초 예술 분야 예술인이 창작활동을 하고 더 좋은 무대에 설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게 중요한 역할 중 하나다.”

―지원 대상 예술인과 지원 규모는.

“기본적으로 서울에서 활동하는 예술인과 단체는 모두 지원 대상이라 전국에서 신청한다. 지난해 기준 개인과 단체 합쳐 9800건 정도 신청했다. 여러 명 참여한 단체도 많으니 재단과 연관된 예술인이 몇십만 명 되는 셈이다. 그중 예술 창작활동과 기반 지원 등 1570건을 선정해 약 200억원을 지원했다. 재단 지원에 대한 기대치가 큰 만큼 선정되지 않은 분들은 실망하거나 불만을 갖기도 한다. 심의위원 전문성 확보를 위한 검증 고도화 등 심의 공정성을 강화하고 있다. 신진·유망·중견 3그룹으로 구분됐던 창작지원 대상에 올해부터 청년·원로 예술인을 추가하고 관련 예산도 더 확보해 촘촘한 그물망 예술지원체계를 마련했다.”

―지원 시기도 획기적으로 개선했다고.

“재단 지원 사업 선정 여부에 따라 내년도 작품 구상에 들어가는 예술인이 많다. 기존에는 공모·심의 등 절차를 거쳐 3월에 결과가 발표되니 선정되건 떨어지건 그제야 뭔가를 대비하느라 대부분 1년에 반을 허비했다. 그래서 예술지원정책팀을 신설해 공모·심의 일정을 단축하고, 예술지원사업 예산만이라도 미리 짜게 해달라고 서울시의회를 설득했다. 이제는 9월에 공고 내고 12월까지 심사를 마친 후 1월에 결과를 발표할 수 있게 됐다. 예술인들이 그만큼 작품 구상·준비 기간에 여유가 생겼다. 다른 지원기관들도 우리를 따라하기 시작했다. 서울문화재단이 대한민국 예술 지원의 시계추를 바꿔놓았다고 자부한다.”

―평가 체계 역시 확 바꿨다던데.

“창작·제작 지원은 꽤 금액(2000만∼4000만원)이 큰데 관객이 극소수에 그쳐도 간단히 결과 보고만 하면 되는 식이었다. 좋은 작품 만들어 공연 목록 쌓고, 많은 시민이 즐길 수 있도록 세금으로 지원하는 건데 너무 소홀하게 여긴다고 봤다. 시민 문화 향유권에 대한 지표를 얼마나 높였는지 등 사후 평가체계를 꼼꼼하게 정비했다. 그랬더니 경쟁도 좀 유발하면서 귀한 작품들이 나오더라.”

―심의·평가방식 변화에 반발하는 예술인도 있었을 것 같은데.

“얼굴 붉히거나 찾아와 시위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분들 주장에도 일리가 있지만 ‘보다 많은 예술인과 시민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는 원칙으로 설득했다.”

이 대표가 새 예술후원 방식인 ‘서울예술인 NFT(대체 불가 토큰)’ 도입, 서울예술상·서울희곡상 제정, 사계절 예술축제, 리스테이지 서울, 예술인지원센터 설립 등에 팔을 걷어붙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어려운 여건에서 활동하는 순수 예술인들을 존중하는 문화와 그들의 활동 공간을 확산하도록 돕기 위해서다. 예컨대 사계절 예술축제의 경우 시민들이 봄(서커스), 여름(비보이댄스·K팝), 가을(생활예술·거리예술·한강노들섬 발레·오페라), 겨울(융합예술) 내내 다양한 축제를 즐길 수 있다. 그만큼 다양한 장르 예술인이 무대에 설 기회도 늘었다.

―지난 3월 창립 20주년 비전 선포식 때 ‘문화예술 향유 20분 도시 서울’을 얘기했다.

“우리나라처럼 예술인 지원체계가 잘 돼 있는 나라가 없다. 바꿔 말하면 우리 문화예술 토양이 해외보다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경쟁력을 키우려면 예술인 육성 못지않게 잠재 관객과 국민들의 문화적 욕구 확대가 중요하다. 그래서 시민들이 생활권 내에서 문화예술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20분 이내 접근성’을 강조했다. 용산·양천·강북·서초·은평구 지역 5개 문화예술교육센터와 서울 전역 14개 예술창작공간을 거점으로 양질의 문화예술 콘텐츠를 지속 공급하게 된다. 특히 어린이들이 문화예술 잠재 관객이 되고, 정서적으로 건강한 시민으로 성장하도록 어린이 맞춤형 프로그램도 많이 마련하고 있다. 서울시와 서울문화재단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시민들이 언제 어디서나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다양한 문화예술콘텐츠 정보를 찾을 수 있다. 관심 갖고 충분히 이용하길 바란다.”

재단이 각각 2022년과 지난해 시작해 호응을 얻은 예술콘서트 ‘서울 스테이지 11’과 이동 약자 등을 위한 ‘찾아가는 스테이지’를 올해 확대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노들섬을 ‘예술섬’으로 가꾸는 게 핵심 사업인 이유는.

“노들섬은 실내·외 공연장과 전시장, 행사장을 다 갖춘 데다 주변 경치가 수려하다. 순수예술은 물론 넌버벌 퍼포먼스(말 없는 공연), 조각·조형, K팝까지 예술 전반을 아우를 수 있는 곳이다. 시민과 외국인 관광객에게 수준 높은 콘텐츠를 선보이는 복합 예술공간, 세계적인 랜드마크(상징물)가 되도록 조성할 것이다.”

노들섬 방문객은 2020년 약 46만명에서 2021년 55만명, 2022년 84만명, 지난해 116만명이다. 재단이 ‘문화가 흐르는 예술섬 노들’을 내건 올해 목표는 200만명이다.

 

이창기 서울문화재단 대표는 …

●1959년 서울 출생 ●중앙대 예술경영학 석사 ●한양대 문화콘텐츠학 박사 ●세종문화회관 홍보실장·공연기획팀장·경영기획팀장·경영본부장 ●강동아트센터 초대 관장 ●마포문화재단 대표 ●서울문화재단 대표 ●제6대 한국광역문화재단연합회 회장 ●공연예술경영대상(2019) ●대한민국예술문화대상 특별공로상(2023)


대담=송용준 문화체육부장, 정리=이강은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