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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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곳곳서 응급실 파행 확산…"길어지면 큰 병원도 장담못해"

강원대병원·건국대충주병원·세종충남대병원 등 '일부 진료 중단'
현장선 환자 못 받을까 전전긍긍…"지역은 이미 심각한데, 추석연휴 우려 커"

전국 곳곳에서 응급실 진료 중단이 현실화하면서 의료계 안팎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서울시내 대형병원 응급실은 완전히 문을 닫는 '셧다운'은 없을 것이라면서도, 지난 2월 전공의들의 집단사직으로 빚어진 인력 부족이 해소되지 않는 탓에 진료 제한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특히 현 상황이 길어질수록 어떤 병원도 응급의료 위기에서 예외일 수는 없을 것이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추석 연휴 기간을 앞두고 응급실 과부하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지난 1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의료진이 걸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 지역 대학병원 응급실 일부 중단…서울서도 '응급실 진료제한'

2일 의료계에 따르면 강원대병원, 세종 충남대병원, 건국대충주병원 등이 야간이나 주말에 응급실 운영을 중단하면서 환자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

강원대병원과 세종 충남대병원은 응급의학과 전문의 부족으로 야간 응급실 운영을 중단했다.

건국대 충주병원 역시 인력 부족으로 야간과 휴일 응급실 운영이 불가능해졌다.

전국의과대학교수 비상대책위원회(전의비)에서 자체 파악한 결과 이들 병원 외에도 순천향대 천안병원, 국립중앙의료원, 이대목동병원, 여의도성모병원도 응급실 운영 중단 등을 검토 중이다.

지난 2월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나면서 전국의 응급실 진료제한은 이미 '상시화'됐다.

이날 오전에도 서울시내 권역응급의료센터 7곳 중 서울의료원을 제외한 6곳에서 일부 환자의 진료가 제한됐다.

권역응급의료센터는 중증·응급환자의 진료를 담당하는 거점 병원으로, 상급종합병원 또는 300병상을 초과하는 종합병원 중에서 지정된다. 서울에는 서울대병원, 고려대안암병원, 서울의료원, 고려대구로병원, 이대목동병원, 한양대병원, 강동경희대병원 등 7곳이 있다.

지난 1일 문이 닫힌 충북 충주시 건국대 충주병원 응급실 앞으로 환자가 걸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대병원과 고려대안암병원은 각각 안과 응급 수술이 불가능하다고 알렸고, 한양대병원은 수술이 필요한 중증외상 환자나 정형외과 환자, 정신과 입원 환자 등을 수용할 수 없는 상태다.

의료계 관계자 A씨는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난 후 남아있는 인력으로 응급실을 운영하다 보니 진료 제한이 지속될 수밖에 없다"며 "최근 들어 상황이 급변했다기보다는 그동안 쌓여온 문제가 하나씩 드러나는 게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누적된 피로로 응급의학과 전문의들이 잇따라 사직하고, 의사 인력 부족으로 인해 '배후 진료'가 원활히 제공되지 않는 상황이 겹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해당 분야 전문의가 환자에게 필요한 수술이나 치료를 제공할 수 없는 한 응급실에 병상이 있어도 환자를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예컨대 중증 외상 환자가 응급실에 방문하면 응급의학과 의사뿐만 아니라 필요한 수술을 할 수 있는 외과 의사가 있어야 하고, 심근경색 환자는 결국 심장내과 또는 흉부외과 의사가 있어야 한다.

수도권의 한 응급의학과 전문의 B씨는 "응급실 의사들이 단순히 힘들어서 환자를 안 받는 게 아니"라며 "배후 진료가 되지 않으면 환자를 받으려고 해도 받을 수가 없는데, 그 부분부터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 시내 한 대형병원 응급실 앞에서 한 환자가 구급차로 이송되고 있다. 연합뉴스

◇ 지역 상황은 이미 심각…"장기화하면 서울 큰 병원도 장담 못해"

의료계는 특히 지역의 응급의료 위기가 이미 심각한 수준이라고 토로한다.

서울의 경우 애초 병의원 등 의료기관이 많은 편이고 인력 운영도 지역보다는 나은 편이지만, 지역에서는 배후진료 위기로 환자들이 이미 권역을 넘나들면서 진료받을 병원을 찾아 헤맨다는 것이다.

지역의 한 상급종합병원 교수 C씨는 "병원이 많은 서울이야 어떻게든 되겠지만, 지방은 몹시 어렵다"며 "정부가 당장 응급실에서 경증을 보지 말라고 하는데, 그러면 지방의 경증 환자들은 갈 곳이 없다"고 말했다.

C교수는 "목에 가시가 걸린 환자는 경증이라 대학병원에서 받을 수가 없는데, 지방에 있는 2차 병원은 밤에 의사가 없다. 이러면 일반 환자들은 꼼짝없이 갈 곳이 없어 헤매야 하는 것"이라며 "중증을 받아야 하니까 돌려보내기는 하는데, 답답할 노릇"이라고 덧붙였다.

지역에서 시작된 응급의료 위기가 서울까지 번지는 게 아닌지에 대한 위기감도 고조되고 있다.

A씨는 "당장 서울에 있는 큰 병원 응급실은 버티고 있긴 하지만, 길어지면 어떤 것도 장담할 수 없을 것"이라며 "응급실은 물론 배후진료를 제공할 인력이 부족한 탓에 문을 닫지 않더라도 못 받는 환자는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서울 시내 한 대형병원에서 한 의료관계자가 응급실 앞을 지나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빅5' 병원 소속 응급의학과 D교수 역시 "지금도 응급실이 24시간 진료는 하되, 경증환자가 아닌 중증환자 위주로 보면서 겨우겨우 지탱하고 있지 않으냐"며 "서울에서도 응급의학과 전문의들의 사직이 발생하기 시작하면 운영을 중단하는 병원이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서울에서도 현 상황이 길어지면 한두 개 응급실이 폐쇄될 가능성이 있겠지만, 그게 지방만큼 큰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며 "지금 문제는 지방이 훨씬 심각하다"고 전했다.

머지않은 추석 연휴를 향한 우려도 적지 않다.

우선 경증 환자를 분산하는 게 관건이지만, 정작 이들을 어떤 병의원에서 수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대책도 마련돼있지 않은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박준범 순천향대서울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응급실의 진료역량이 이미 크게 떨어져 있는 상태"라며 "지금 얼굴 부위 단순봉합 같은 건 하지 않는 응급실이 워낙 많아서 연휴에는 더 갈 곳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경증환자라고 해도 어디선가에서는 치료받아야 하지 않느냐"며 "그냥 경증환자를 응급실 못 오게 한다고 해결이 아니다. 환자들이 고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어서 그 부분이 가장 걱정"이라고 덧붙였다.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