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오후 2시40분쯤 충북 충주시 건국대학교 충주병원 응급실 앞 도로에는 병원을 찾는 환자와 보호자 등이 지나고 있었다. 응급실 문 앞에 ‘응급의료센터 진료 제한 안내’라는 안내 문구가 적혀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평소와 다를 바 없었다.
오후 2시50분쯤 응급실 입구에 119구급차가 도착했다. 환자를 응급실로 옮기기 위한 구급대원들의 움직임이 분주했다. 보호자를 대기실로 안내하고 환자를 응급실로 옮기자 또다시 응급실 문은 굳게 닫혔다. 구급대원들은 환자를 병원에 인계하고 응급실에서 나왔다. 119구급대 관계자는 “응급실의 제한적 운영 시간대에는 인근 원주나 청주 등지에 분산 이송을 하고 있다”며 “충주에서 가장 큰 병원 응급실 제한 운영으로 다른 지역 병원에서도 적극적으로 수용해 주고 있다”고 말했다.
오후 3시10분쯤에는 사설 구급차가 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환자를 태우고 오진 않았다. 사설 구급대 관계자는 “건국대 충주병원에서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으로 전원 요청이 들어왔다”며 “지난달에는 20명 정도 이송했고 이달 들어서는 처음이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응급실 제한 운영으로 전원 이송 건수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한다”고 덧붙였다.
◆지역 유일 대학병원 응급실 셧다운 막았지만
건국대충주병원은 이달부터 응급실 진료 제한에 들어갔다. 평일은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다. 응급실 접수는 응급처치 등에 걸리는 시간을 고려해 오후 5시에 마감한다. 그 이후에는 응급환자를 받지 않는 셈이다. 또 주말(토요일, 일요일)에도 문을 닫는다.
지난달까지 7명의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있었으나 5명이 사직하고 이달부터는 2명의 전문의가 진료를 맡기 때문이다. ‘지역응급의료센터’로 최소 인원(전문의 2명)을 갖추고 간호사 18명, 응급구조사 10명, 간호조무사 등 5명이 응급환자를 돌보고 있다.
응급실 전문의들은 12시간씩 팀을 구성해 2교대 근무를 해왔다. 하지만 배후 진료 의사가 없고 의료 갈등으로 응급환자 전원마저 어렵게 되면서 심적 압박감과 피로감이 쌓여 병원 측에 사직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나마 2명이 남기로 하면서 충주지역의 유일한 대학병원 응급실이자 지역응급의료센터 운영 전면 중단이라는 초유의 사태는 막았다.
병원 측도 응급실 전문의 구인에 나서고 있지만 전국적인 응급의학과 전문의 구인난으로 쉽지 않다. 충주시보건소 관계자는 “의료사태가 시작된 지난 2월보다 중증 응급환자 수용도가 높아지면서 응급실에서 응급처치 등의 시간이 몇 배로 늘었다”며 “(신경외과, 외과)당직 의사가 없어 응급처치 후 연계가 안 되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상반기까지는 강원 원주시에 있는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이나 충북대병원 등에서 중증 응급환자 전원을 받아주었는데 하반기 들어 전원이 어려워지면서 압박감이 더 컸다”며 “병원에서도 일찍부터 응급의학과 전문의 구인 공고를 내고 있지만 쉽지 않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
◆“눈앞에서 생명이 꺼져가는데 어찌 보냅니까”
응급실은 응급환자가 오면 수술 준비 등을 위한 처치 등에 1~2시간이 소요된다. 이마저도 뇌출혈이나 복강 내 출혈이 발생한 중증 응급환자는 신경외과나 외과 전문의가 수술할 수 있을 때의 준비 과정이다.
충주지역의 한 전문의에게 지역응급의료센터이자 건국대충주병원 응급실에 관해 묻자 “뇌출혈이나 복강 내 출혈 등 중증 응급환자는 신경외과나 외과 전문의가 받쳐주지 않으면 응급실에서 환자를 받을 수 없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며 “환자 상태가 정말로 위급상황이면 응급처리를 해서 1~2시간 정도 버틸 수 있도록 한다”고 답했다. 이어 “환자가 눈앞에서 죽어가는데 어떤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그 환자를 그냥 보낼 수 있냐”며 “어떻게든 환자의 생명을 살릴 방안을 찾는 곳이 응급실이다”라고 강조했다.
충주지역 곳곳에서 불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난 3월 충주에서는 발목 골절상을 입은 70대 주민이 수술을 받지 못해 사고 9시간 만에 숨지는 일이 있었다. 대학병원과 공공의료원 등에서 이송을 거부하다 수지접합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복부 안에 출혈이 발견돼 인근 상급병원의 문을 두드렸으나 거부됐고 결국 100㎞ 정도 떨어진 경기 수원의 아주대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사망 판정을 받았다.
병원에서 만나 50대 간병인 김모씨는 “누가 병원에 오고 싶어서 오는 환자가 어디 있냐”며 “갑자기 아프거나 다칠 때 병원을 찾는데 밤늦게나 주말에 아프면 어떻게 해야 할지 앞이 캄캄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개인 병원 등에는 응급실이 없고 충주에는 중증 응급환자를 진료할 곳도 마땅치 않다”며 “만성적인 중증 질환을 가진 사람도 불안해하고 있다”고 전했다. 병원 앞 도로에서 만난 70대 택시기사 박모씨는 “대학병원이 이곳 한 곳밖에 없는데 밤에 갑자기 몸이 아프면 갈 곳이 없다”며 “손님들도 불안해하고 있다”고 했다.
병원 인근 상인들도 울상이다. 건국대충주병원에 환자가 의료사태 이후 줄었고 감소 폭이 최근 증가했는데 응급실마저 제한적으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한 상인은 “예전에는 환자가 많아 보호자 등이 줄을 이었는데 지난 2월부터 확실히 손님이 줄었다”며 “지난 7월부터 손님이 더 줄어 걱정이었는데 응급실마저 제한적으로 운영한다니 앞으로 더 걱정이다”라고 속내를 털어놨다.
◆추석 연휴에는 더 큰 응급의료 공백 우려
충주시는 건국대 충주병원 응급실 제한 운영으로 응급의료 비상진료대책반 가동에 들어갔다. 응급환자 중증도 분류체계(K-TAS)에 따르면 응급환자 1, 2, 3등급은 ‘지역응급의료센터’ 3, 4, 5등급은 ‘지역응급의료기관’에서 맡는다. 지역 의료 비상 상황으로 충주의료원(지역응급의료기관)의 응급실 운영 병상을 13병상에서 21병상으로 늘리고 중환자실도 12병상에서 15병상으로 확대 운영한다. 또 응급실 간호인력 추가배치와 응급실 전담 의사 추가 채용을 공고했다. ‘응급의료시설’인 미래병원 응급실도 응급실 환자 집중 시간 때 의료인력 4명을 추가 배치했다. 충주지역은 응급환자가 40명 발생할 때 낮에 25명, 밤에 15명 정도다.
여기에 다른 병원에 파견한 시 공중보건의 4명에 대한 복귀명령도 내렸다. 이들은 추석 전까지 복귀할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함께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과 제천서울병원, 명지병원 등에 충주권 응급환자 수용 협조를 구하고 충북 응급의료센터 협의체를 가동해 분산 수용을 요청했다.
119구급대와 사설 구급차 업체에도 협조를 요청했다. 지역엔 119구급차 12대(예비 2대 포함)와 사설 구급차 15대가 운영 중이다. 지역 의원급 병원은 오후 9시까지 진료 시간을 늦춘 곳도 있고 의원급 병원 진료 시간 연장으로 인근 약국도 함께 연장 근무에 돌입하기도 했다.
보건당국은 추석 연휴 응급환자 대책 마련에 고심 중이다. 시보건소에 따르면 충주지역은 응급환자가 하루 40명이면 낮에 25명, 밤에 15명 정도의 비율로 발생한다. 또 추석 연휴 기간에는 평소보다 1.5배의 응급실 이용도가 많은 것으로 분석했다. 이는 의원급 병원이 문을 닫아 경증 환자들이 응급실을 찾기 때문으로 경증 환자의 분산 진료가 관건이라는 분석이다. 시 보건소 관계자는 “의원급 병원에서 추석 때 문을 열면 경증 환자 응급실 이용도를 낮출 수 있다”며 “다만 의원급 병원이라도 간호사, 행정 등 의료인력이 동참해야 하기에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충북대병원도 추석 명절 비상 응급 대응 체계 협조를 호소했다. 지난달 29일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 주재로 열린 응급의료체계 유지를 위한 관계 병원장 영상회의에서 충북대병원 측은 응급실 전문의 채용 협조, 원내 응급실 배후진료과 중 필수과에 대한 지원 강화, 비상 응급 순번제 당직 시스템 홍보 등을 요청했다.
충북대병원 관계자는 “추석 명절 비상 응급 대응주간에 맞춰 중증 응급환자 대응에 최선을 다하겠다”며 “지역 내 유관기관과의 협력 체계를 한층 강화해 추석 기간 응급상황 시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