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판례 내지 실무가 법해석에 관해 ①결과지향적 사고에 다소 치우친 것은 아닌지, ②법관 자신을 소셜 닥터로 여기면서 문언해석보다 목적론적 해석을 과도하게 우위에 두는 것은 아닌지, ③법관이 논증의무를 소홀히 하거나 방법론적 정직성을 지키지 않는 경향이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을 품게 된다.”
판사 출신인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최준규 부교수는 2022년 법학방법론의 역자 서문에서 이런 화두를 던진다. 2012년 김능환 대법관이 일본 강제징용 사건 상고심에서 “건국하는 심정으로 판결문을 썼다”고 한 발언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이 같은 의문이 들 때가 있다.
2021년 7월 전남대병원 응급실에 온 6세 환자가 ‘장 중첩증 및 기계적 장 폐색’ 진단을 받고 같은 날 수술 뒤 다음날 사망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 결과 “수술 이후 알 수 없는 원인으로 소장 괴사가 진행돼 숨진 것으로 생각된다”는 소견이 나왔다. 유족들은 의료진이 수술 후 주의 의무를 소홀히 했다면서 소송을 냈다. 1심 법원은 1일 “의료진이 수술 이후 주의 의무를 소홀히 한 과실이 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환자가 중대한 결과의 발생을 회피할 수 있었음에도 의료진이 수술로 인해 소장 괴사와 출혈·염증이 발생할 수 있고 사망할 수도 있다고 설명한 사실을 인정하기 부족하다”면서 2000만원의 위자료 지급 판결을 내렸다.
이를 두고 한 의사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어떻게 판결이 의사와 환자를 죽이는가?”라는 글을 올려 “‘수술 이후’(부검 결과)라는 시간의 전후 관계를 ‘수술로 인해’라는 사건의 인과 관계로 혼동했다”고 비판했다. ‘소방관이 화재 진압에 나선 이후, 집이 무너졌다’와 ‘소방관의 화재 진압으로 인해, 집이 무너졌다’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는 소송 당사자로 추정되는 사람은 광주, 전남을 통틀어 유일한 소아외과 의사였다고 덧붙였다.
지난 6월 의대 증원 집행정지 사건의 재항고 기각 결정문에서도 결이 비슷한 문장이 등장한다. 대법원은 집행정지 인용 시 공공복리에 중대한 영향이 발생할 우려가 크다면서 “장래 의사가 부족할 것이라는 전망이 있는 상황에서 의대 정원 증원배정의 집행이 정지될 경우 국민의 보건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의대 정원 증원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한 중견 법관은 ‘의대 정원 증원배정의 집행이 정지되면 의대 정원 증원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한다’는 것인데 동어반복처럼 읽히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의대 증원이 과연 국민 보건에 핵심적 역할을 하는지에 대한 논증 문제도 남는다.
좋은 의도가 늘 좋은 결과를 낳지는 않는다. 문재인정부가 약자인 임차인을 돕겠다며 만든 임대차 3법이 결국 임차인들을 더 고통스럽게 만들었듯, 의료인의 법적 책임을 강화해 환자를 보호하겠다는 판결 역시 의사들의 수술실 기피라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상황을 전개시키고 있다. 채 알 수 없는 인과관계의 법칙이 도사리는 세상에서 우선적으로 필요한 법관의 덕목은 ‘소셜 닥터’가 아닌 ‘충실한 논증’에 대한 의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