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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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주명 선생 곤충표본 90년 만에 日서 귀환

1930∼40년대 수집한 120여점
규슈대, 국립생물자원관에 기증

한국 곤충연구의 선구자인 ‘나비 박사’ 석주명(1908∼1950·사진) 선생의 곤충 표본 120여점이 90년 만에 일본에서 돌아온다.

환경부 소속 국립생물자원관은 25일 일본 후쿠오카에 있는 규슈대학교로부터 석 선생이 1930~40년대 한반도에서 수집한 곤충표본 120여점을 기증받는다고 24일 밝혔다.

석 선생은 일제강점기 한반도 전역을 다니며 나비를 채집하고 분류한 세계적인 나비학자다. 그가 영국 왕립 아시아학회 한국지회 의뢰로 ‘조선산 접류 목록’을 펴낸 것은 식민지 학자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연구서를 내놓은 매우 이례적인 일로 꼽힌다. 석 선생은 한국산 나비를 248종으로 정리하고 동종이명(같은 종에 붙은 다른 이름) 844개를 제거했다.

라틴어, 일본어 등 여러 언어에 능통했고 경성제국대 제주도생약연구소장으로 제주에서 방언을 연구하기도 했던 석 선생은 한국산 나비에 개성 있고 아름다운 우리말 이름을 붙여준 주인공이다. 날개 뒷면이 서울 시가지 지도와 닮았다고 해서 붙인 ‘시가도귤빛부전나비’가 대표적이다.

그는 1930년대 초부터 사망한 1950년까지 75만마리의 나비를 채집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60만마리 표본은 석 선생이 연구에 더 몰두하고자 교직을 떠날 때 표본을 관리할 사람이 없다면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여겨 스스로 불태웠고, 나머지 15만마리 표본은 한국전쟁 때 표본이 보관된 서울 남산 국립과학박물관이 포격을 맞아 모두 불탔다.

국내에는 석 선생의 동생 석주선씨가 피란하며 챙긴 표본 32점만 남은 상황인데, 이 표본은 국가등록문화재 610호로 지정됐다. 이번에 귀환하는 표본들은 석 선생이 기증 또는 다른 표본과 교환하는 방식으로 규슈대 연구실에 전달한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에는 북한 고산지대에서 채집된 ‘차일봉지옥나비’나 ‘함경산뱀눈나비’ 등 희귀종 표본도 포함됐다.

국립생물자원관 연구진은 올해 3월 규슈대에 석 선생 표본이 있다는 것을 확인한 뒤 대학 측을 설득해 기증을 이끌었다.


정재영 기자 sisleyj@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