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010130] 경영권 인수를 추진하는 영풍·사모펀드 MBK파트너스(MBK)와 이를 저지하려는 고려아연 간의 싸움이 연일 수위를 높여가고 있는 가운데 이번 분쟁의 승패를 가를 '운명의 시간'이 닷새 앞으로 다가왔다.
최근 MBK가 고려아연 주식에 대한 공개 매수가를 66만원에서 75만원으로 올리는 승부수를 띄우면서 고려아연이 어느 시점에 대항 공개 매수 등 역공을 펼칠지에 시장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MBK의 공개 매수가 상향으로 이번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 MBK가 투입해야 하는 돈은 3조6천억원 이상으로, 이를 방어하기 위한 고려아연의 필요 자금은 1조1천300억원 이상으로 늘어났다.
총 5조원에 육박하는 '머니 게임'에서 승리하기 위한 양측의 명분 싸움과 지분 확보 경쟁이 한층 치열해졌다는 분석이다.
◇ 매수가 13.6% 높인 MBK…사모펀드 자금력 동원해 '승부수'
29일 재계에 따르면 사모펀드 MBK를 앞세운 영풍과 고려아연 간의 경영권 분쟁이 연일 과열 양상이다.
고려아연 인수를 위해 인수 뒤 경영권을 사모펀드에 넘기겠다고 결기를 내보인 영풍 장형진 고문에게나 이번에 패하면 3대째 가문이 경영하는 회사를 내줘야 하는 고려아연 최윤범 회장에게나 이번 싸움은 결코 양보할 수 없는 게임이기 때문이다.
고려아연 지분은 현재 최 회장 측 34.01%, 영풍 장 고문 측 33.13% 등으로 비슷하다.
영풍은 사모펀드 MBK와 함께 다음 달 4일까지 고려아연 지분 6.98∼14.61%를 공개 매수한 뒤 회사의 경영권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공개 매수 마감일은 이제 닷새 앞으로 다가왔다.
MBK는 지난 26일 공개 매수가를 주당 66만원에서 75만원으로 13.6% 상향했다. 공개 매수 발표 이후 주가가 70만원 안팎으로 오르자 기관투자자 등을 유인하기 위해 승부수를 띄운 것이다.
MBK는 영풍정밀 주식 공개 매수가도 주당 2만원에서 2만5천원으로 25% 인상했다. 영풍정밀은 고려아연의 지분 1.85%를 보유하고 있어 MBK 측이 영풍정밀 경영권을 확보하는 경우 고려아연 의결권 3.7%를 차지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공개 매수가 인상으로 경영권 인수를 위한 필요 자금이 늘어나게 됐지만, 이를 방어해야 하는 고려아연 측 부담 역시 커졌다. 아직 '치킨 게임'이라고 부를 수준은 아니지만, '머니 게임' 양상으로 흐를 소지가 다분하다.
MBK가 영풍정밀 인수에 성공하고 고려아연 지분을 최대 목표만큼 매수하면 고려아연 지분 49.59%를 확보하게 된다. 자사주를 제외한 의결권 기준으로는 50.82%로, 과반 이상 의결권을 갖게 된다.
MBK가 고려아연 인수를 위해 투입해야 하는 자금 규모는 주식 공개 매수에 약 2조2천억원, 영풍 지분 최종 인수에 약 1조4천억원 등 총 3조6천억원 이상으로 추산된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고려아연이 주당 75만원이 넘는 80만∼90만원 수준의 대항 공개 매수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도 시장에서 나온다.
여기에 MBK 측이 공개 매수가를 더 높이며 맞불을 놓을 수 있다는 시나리오도 거론된다. MBK가 다음 달 4일 안에 공개 매수가를 조정하면 공개 매수 종료일은 그날부터 10일 이후로 다시 밀린다.
◇ '백기사' 확보에 분주한 고려아연…대항 공개매수 등 '역공' 준비
고려아연 최윤범 회장 측은 대항 공개 매수 카드를 비롯해 자금 조달을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 회장 측이 경영권 수성을 위해 확보해야 하는 지분은 최소 6% 수준으로 평가된다.
MBK 측의 공개 매수가 상향에 따라 지분 6% 확보를 위해 주당 80만원에 대항 공개 매수에 나설 경우 필요 자금은 총 1조3천억원 이상으로 추산된다.
최 회장 측은 자금 확보를 위한 재무적 투자자(FI)나 전략적 투자자(SI)를 찾기 위해 일가(一家) 전체가 움직이고 있다는 전언이다.
최 회장은 지난 추석 연휴를 전후해 일본 도쿄를 찾아 세계 최대 광산 기업인 BHP 일본법인 소속 고위 관계자와 회동하고, 글로벌 투자회사인 일본 소프트뱅크 측과도 접촉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려아연 계열사인 켐코의 최내현 회장과 고려아연 호주 계열사인 아크에너지 최주원 대표 등도 글로벌 네트워크를 총동원해 우호 세력 확보를 위해 총력을 다하고 있다.
최 회장 측은 미국계 사모펀드인 베인캐피털,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 등과도 접촉해 1조원 안팎의 자금 마련을 위한 협의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베인캐피털이 투자심의위원회를 열고 고려아연 자금 지원에 대해 논의했으나 최종 결정은 내리지 않고 추가 자료·근거 제출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를 두고 투자은행(IB) 업계에서는 '부결됐다'거나 '승인됐다'는 등 혼선이 빚어지기도 했으나 아직 투자 가능성이 열려 있다.
최 회장은 고려아연의 우호 지분으로 분류되는 한화그룹의 김동관 부회장도 만난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한화가 고려아연의 '백기사'로 나서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고려아연과 사업 협력 관계인 한화그룹은 자사주 교환으로 고려아연 지분 7.25%를 갖고 있다.
이에 고려아연이 최근 기업어음(CP) 발행으로 마련한 4천억원을 한화에너지 등 한화 계열사에 빌려주고, 이 돈을 특수목적법인(SPC)에 출자해 대항 공개 매수에 뛰어드는 시나리오 등이 거론된다.
다만 한화 측은 공식적으로 "고려아연 지분 인수와 관련해 검토한 바 없다"는 입장이다.
최 회장 측이 보유한 고려아연 지분을 담보로 증권사 대출을 받아 자금을 추가 조달하는 길도 열려있다. 최 회장 측 지분 15.6% 가운데 현재 약 1.6%를 담보로 대출을 받은 상태여서 추가 대출 여력이 있다는 것이다. 다만 담보유지비율이 통상 140% 정도인 점을 고려하면 실제 대출 가능 규모는 이보다 적어진다.
CP 추가 발행을 통해 자금을 추가로 확보하고 이를 우호 세력 등에 대여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앞서 최 회장은 지난 19일 계열사·협력사 임직원에게 보낸 서한에서 "추석 연휴였지만, 외국 회사들과 소통하는 데에 아무 문제가 없었다. 많은 고마운 분들의 도움과 격려를 받아 계획을 짜냈다"며 "이 싸움에서 이기는 방법을 찾아낼 수 있었다"고 말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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