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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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日, 오염수 갈등 봉합 나섰지만… 동중국해 놓고 ‘으르렁’ [세계는 지금]

자국 이익 좇아 ‘밀당’ 되풀이

13개월 만에 日 수산물 빗장 푼 中
日 수출 타격, 中은 수산물값 상승
中도 日도 “서로 득될게 없다” 판단
日은 中에 오염수 감시 확대 약속

센카쿠 대치 등 군사 갈등은 고조
中 항공모함, 日 접속수역 첫 항해
日 자위대 함정 첫 대만해협 통과
日 총리 ‘안보 매파’… 갈등 커질 듯

“양국 관계의 향방은 여전히 전망할 수가 없다.” 지난달 21일 중국, 일본 정부가 일본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오염수 조사 강화, 일본 수산물 중국 수입 재개에 합의했다는 소식을 전하며 내놓은 요미우리신문의 평가다. 지난해 8월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개시 이후 1년 넘게 이어지던 첨예한 갈등이 해소될 것임을 알리는 희소식이었지만 마냥 밝은 전망을 할수는 없었다. 비단 요미우리의 분석이 아니라 일본의 대체적인 분위기가 그렇다.

 

아시아의 두 강대국은 지리적 근접성만큼이나 모든 면에서 서로에게 강한 필요성을 가진다. 동시에 매우 껄끄러운 존재다. 미국과 보조를 맞춘 일본은 중국을 경계, 압박하고, 중국은 일본을 개의치 않겠다는 양 아시아 지역에서의 자국 이익 실현을 도모하고 있다. 끊임없이 교차하는 중·일 관계의 명암은 최근 양국 사이에 벌어진 사건, 이에 대한 대응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필요에 따른 관계개선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관련 합의는 중국과 일본이 상대와의 관계개선 필요성을 의식하고 있음을 가장 잘 보여준 일이다. 지난달 중순 일본 정부는 중국의 오염수 안전성 조사를 확대하고, 중국 정부는 1년 넘게 반입을 원천 차단해온 일본산 수산물 수입을 재개하기로 했다.

자국의 입장만을 강조하며 지루하게 이어졌던 갈등을 푼 것은 각자의 필요였다. 일본은 최대수입국인 중국의 일본산 수산물 수입 전면 금지 영향으로 올해 1∼6월 농수산물·식품 수출이 전년 동기 대비 1.8% 줄었다. 4년 만의 감소였다. 중국 수출은 43.8%나 줄어 어민, 수산업자의 피해가 컸다. 중국 입장에서는 수입 금지로 인한 일본 내 반중정서 확산, 자국 수산물 가격의 상승이 부담이었다.

 

합의는 각자 ‘불합리한 중국의 조치’, ‘일본의 핵오염수 방류로 인한 건강, 환경 파괴’의 입장을 고수하며 갈등을 이어가봐야 득이 될 게 없다는 판단에서 비롯됐다. 요미우리는 합의가 일본의 새 정권 출범을 앞두고 있던 시점에 나왔다는 점을 근거로 “중국은 차기 일본 총리가 누구냐에 따라 일본과의 관계 개선 움직임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해 기시다 정권에서 결론을 서두른 측면도 있다”고 분석했다.

갈등의 빌미를 제공한 측이 사태 악화를 원하지 않는다는 시그널을 선제적으로 보내는 것도 두드러진다. 일본이 지난 7월 중국 영해에 일시적으로 진입했던 해상자위대 ‘스즈쓰키’ 호위함의 함장을 사실상 경질한 것이 그렇다. 스즈쓰키는 중국 함정의 거듭된 퇴거 권고에도 중국 영해에 진입했다. 일본은 중·일 관계에 미칠 영향을 차단하기 위해 함장이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지 못해 벌어진 실수라고 비공식 해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달 18일 광둥성 선전에서 40대 중국인 남성이 휘두른 흉기에 일본인 초등학생이 사망하는 사건에서 보인 중국의 대응에도 이런 태도가 읽힌다. 이 사건을 두고 일본에서는 ‘중국 내 반일 교육, 선동’이 원인이라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지만 중국은 ‘우발적 사건’이라는 점을 일관되게 강조했다. 왕이(王毅) 중국공산당 중앙외사판공실 주임 겸 외교부장은 지난달 2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유엔총회에서 가미카와 요코(上川陽子) 당시 일본 외무상을 만나 “일본은 사건을 냉정하고 이성적으로 다뤄야 한다. 정치 문제로 확대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일과 관련 내용을 담은 댓글 검열에도 나섰다. 포털사이트 바이두와 동영상 플랫폼 틱톡 등은 ‘중·일 대립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관련 게시물, 계정 삭제 등의 조치를 취했다. 지난 6월 장쑤성 쑤저우에서 일본인 모자를 겨냥한 피습사건이 발생했을 때도 비슷한 대응이었다. 일본의 범행 동기 공개 등의 요구에 응하지 않아 사건을 덮는 데 급급한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려운 태도지만 반중정서를 크게 자극할 사건의 파장을 최소화해 양국 관계를 관리하겠다는 의지는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우습게 보여선 안 돼” vs “모든 것 추적”

그러나 중국과 일본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물러설 수 없는 기싸움을 벌이고 있음을 보여주는 일들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실제 충돌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는 군사분야 갈등이 고조되는 분위기여서 국제질서 안정의 위협 요소가 되고 있다.

최근 특히 주목을 끈 것이 지난달 25일 일본 함정 ‘사자나미’의 대만해협 통과다. 자위대 창설 이후 처음 있었던 이 일을 두고 일본 언론은 “일본의 중국 억지전략이 새로운 단계에 진입했다는 걸 보여주는 사건”으로 평가했다. 대만해협이 가지는 의미가 막대하기 때문이다.

중국은 대만을 “중국의 핵심적 이익 중 핵심”으로 여기며 미국, 영국, 독일 등 서방의 대만 주변 군사행동을 “중국의 주권과 안전을 훼손하는 도발행위”로 규정한다. 이에 대해 미국 등은 ‘항행의 자유’를 주장하며 자국 함정을 진출시켰다. 일본은 미국과 같은 인식이지만 중국의 입장을 감안해 대만해협 통과를 자제해왔다. 그러나 일본 주변에서 중국의 군사활동이 활발해지자 일본 방위 당국의 태도가 바뀌었다. 아사히에 따르면 방위성 내부에서는 “중국에 계속 우습게 보여서는 안 된다. 대만해협을 당당하게 지나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중국이 하고 싶은 대로 두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견제를 해가면서 상황을 관리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사자나미함의 대만해협 통과는 이런 상황을 종합해 기시다 당시 총리가 최종적으로 결정한 것이다.

 

중국은 강하게 반발했다. 중국 국방부는 사자나미함의 대만해협 통과 다음날 정례 회견에서 “전 과정을 추적, 감시했다”고 밝혔다. “항행의 자유라는 이름 아래 대만 독립세력에 잘못된 시그널을 보내고, 중국의 주권, 안전을 훼손하는 도발행위에 단호히 반대한다”는 비판도 잊지 않았다. “안보, 외교면에서 중국이 일본에 대항조치를 취할 우려가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것 말고도 중·일 간 군사적 긴장을 보여주는 사건은 빈발하고 있다. 양국의 영유권 분쟁 대상인 센카쿠제도(중국명 댜오위다오)에서의 대치는 일상화 수준에 이르렀다. 지난달 18일에는 중국 항공모함 랴오닝함이 오키나와현 요나구니지마와 이리오모테지마 사이의 일본 접속수역을 항해했다. 중국 항공모함의 일본 접속수역 항해는 처음이었다. 지난달 25일에는 중국군이 1980년 이후 44년 만에 태평양 해역으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했다. 일본 NHK방송은 “ICBM 발사가 오커스(AUKUS·미국·영국·호주 안보 동맹) 견제 목적이 깔려있다”며 “호주는 중국을 염두에 두고 오커스를 기반으로 핵잠수함 도입 계획을 추진하는 등 억지력 강화를 꾀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일본 총리의 등장이 중·일 관계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도 주목된다. 이시바 총리는 중국, 북한, 러시아의 군사적 위협에 대응하는 집단안보체제 ‘아시아판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창설, 미국 핵무기의 공유·반입, 자위대 헌법 명기 및 ‘국방군’으로의 전환 등을 주장하고 있다. 벌써부터 “실현 가능성이 낮은 이상적 주장”, “미국과의 관계 훼손” 등 논란이 분분하지만 ‘강한 일본’에 대한 이시바 총리의 의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중국, 일본 간 군사적 긴장이 가팔라질 수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린젠(林劍)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달 27일 정례브리핑에서 아시아판 나토 창설과 관련된 질문을 받고 “일본은 중·일 4개 정치문서에 의해 확립된 원칙과 공감대를 준수하고 객관적이고 올바른 대중인식 아래 적극적이고 이성적 정책을 추구해야 한다”고 답변했다. 중국사회과학원의 한 전문가는 일본 민영 ANN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이시바 총리에 대해 “보수정치가 중에서는 비교적 온건한 인물이라 양국 관계 안정, 발전에 공헌할 수 있다”고 평가하면서도 “아시아판 나토 창설 주장은 동아시아에서 긴장을 높여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도쿄·베이징=강구열·이우중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