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두산, 구조개편 재시동… 합병비율 조정 ‘개미 투자자’ 달랜다

에너빌·로보틱스 이사회 개최

‘밥캣’ 지분 보유 에너빌 신설법인 설립
로보틱스 자회사로 편입… 안건 의결
‘논란’ 합병비율 39%↑… 1대 0.043으로
“여전히 주주에게 불리” 시장선 의구심
대주주 밥캣 지분율 2배 증가도 쟁점

얼라인, 밥캣에 “합병 포기 공표” 요구
두산 “1년뒤 상황 보고 검토” 분쟁 여지

두산그룹이 ‘캐시카우’ 역할을 해온 두산밥캣을 두산에너빌리티에서 떼어내 두산로보틱스 자회사로 두는 사업 재편안을 재추진한다. 두산에너빌리티의 투자사업부문을 분할해 두산로보틱스에 흡수합병하는 방식의 분할합병이다. 두산에너빌리티 주주는 분할합병 비율에 따라 두산로보틱스 주식을 배정받는데 이 비율을 지난 7월 추진 때보다 40% 가까이 올라가게 됐다.

류정훈 두산로보틱스 대표가 21일 서울 중구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두산에너빌리티-두산로보틱스 분할합병 건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왼쪽부터 류 대표, 박상현 두산에너빌리티 대표, 스캇 박 두산밥캣 부회장. 연합뉴스

두산밥캣 모회사인 두산에너빌리티와 두산로보틱스는 21일 각각 이사회를 연 뒤 이 같은 내용을 의결·공시했다.

 

이날 의결된 내용은 지난 7월 두산이 발표한 사업 재편안과 구조가 동일하다. 새 재편안이 두산밥캣 지분을 보유한 신설법인과 두산로보틱스의 합병 비율을 변경한 게 차이점이다.

 

두산은 7월에 양사의 합병비율을 1대 0.031로 제시했다. 이날은 약 39% 오른 1대 0.043 합병비율로 조정했다. 이렇게 되면 두산에너빌리티 주식 100주를 보유한 주주가 받을 수 있는 두산로보틱스 주식은 3.15주에서 4.33주로 늘어난다.

 

두산 측은 신설법인과 두산로보틱스 간 합병비율에 두산밥캣 경영권 프리미엄 43.7%를 반영했다는 입장이다. 박상현 두산에너빌리티 사장은 “두산밥캣 경영권 프리미엄은 과거 10년간 시장 거래사례와 인수·합병(M&A) 프리미엄 평균치를 참고해 산출했다”고 설명했다.

앞서 두산그룹은 사업구조 재편을 추진하면서 두산밥캣과 두산로보틱스를 포괄적 주식교환 방식으로 합병하려 했으나 주주들 반발과 금융당국 압박에 8월 말 이를 철회한 바 있다. 당시 3년 연속 1조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올리는 ‘알짜’ 두산밥캣의 모회사가 되는 신설법인의 합병 비율을 밥캣의 가치가 아닌 호가에 불과한 시가총액에 맞춰 사실상 평가절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또 영업이익률이 낮은 두산로보틱스의 ‘미래 성장 가능성’을 명분으로 높게 평가하면서 두산밥캣 주주의 이익이 침해될 소지가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동시에 두산그룹 지분율(68%)이 높은 로보틱스와 평가절하한 밥캣이 합병될 경우 대주주 밥캣 간접지분율이 14%에서 약 42% 올라가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소액주주 반발 등을 달래려는 포석이 깔린 이번 재편안이 시장에서 통할지는 두고 봐야 한다. 이날 두산의 주주 친화적 행보에도 온라인에서는 “두산밥캣이 저평가됐다”, “재편안이 여전히 주주에게 불리하다”는 일부 주주의 목소리가 나왔다.

 

새 재편안에 따라 두산밥캣이 포괄적 주식 교환이 아닌 분할 합병 방식으로 두산로보틱스 자회사로 들어가게 되더라도 두산그룹의 두산밥캣 지분율이 기존(14%)보다 두 배 가까이 늘어나는 점도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박상현 사장은 “지분율 확대로 배당수익이 늘어나도 로보틱스가 가져오는 차입금에 대한 이자와 신사업 투자재원 등을 고려하면 남는 것은 매우 제한적”이라고 했다. 실제 두산 측은 사업 재편으로 1조원 이상의 투자 여력을 확보해 원전과 소형모듈원자로(SMR), 가스·수소터빈 등 투자하겠다는 방침이다.

 

두산밥캣 지분 1%를 확보한 국내 행동주의 펀드 얼라인파트너스가 최근 두산밥캣 이사회에 주주 서한을 보내 “두산로보틱스와 포괄적 주식교환을 통한 합병을 재추진하지 않을 것을 공표하라”고 요구했다는 점도 향후 분쟁 가능성을 남겼다는 분석이다. 특히 두산 측이 두산밥캣을 두산로보틱스 자회사로 편입한 뒤 양사를 합병하는 방안에 대해 “1년 뒤 시장 상황을 보고 검토하겠다”고 이날 밝히면서 양측의 대립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김범수 기자 sway@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