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3인 체제로 운영하던 소위원회를 ‘4인 체제’로 바꾸고, 위원 1명만 반대하더라도 진정이 자동 기각되도록 규정을 바꿨다. 2001년 출범 이후 23년 가까이 유지해온 만장일치 표결 관행을 폐기한 것이다.
28일 인권위는 제20차 전원위원회를 열고 ‘소위원회에서 의견 불일치 때의 처리’ 안건을 의결했다. 이 안건은 소위 위원을 4명으로 구성하고, 소위에서 진정사건 인용에 필요한 의결정족수(3명)를 충족하지 못할 경우 진정을 전원위에 회부하지 않고 기각 또는 각하로 배척 선언을 할 수 있도록 소위 운영 방식을 변경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 안건은 지난해 김용원·이충상 상임위원 등의 주도로 발의됐다. 이들은 소위에서 구성위원 3명 이상 출석과 3명 이상의 찬성으로 안건을 의결하는 기존의 의결 정족수로 인해 진정 처리의 시급성을 확보하지 못한다고 주장해왔다. 인권위는 그간 3명으로 구성된 소위에서 1명이라도 안건에 반대하면 합의에 이를 때까지 토의하거나, 전원위에 안건을 넘겨 논의해 왔다.
이날 회의에서 김용원·이충상·김종민·한석훈·이한별·강정혜 위원 등 6명은 안건에 찬성했고, 남규선·원민경·김용직·소라미 위원 등 4명은 반대했다. 안창호 위원장은 기권했다.
남규선 상임위원은 “인권위는 그간 소위원회에서 표결 없이도 서로 합의하기 위해 노력했고, 합의가 되지 않으면 안건을 재상정하거나 전원위에 보냈다”며 “인권위가 다음 달이 되면 설립한 지 23년인데, 지금까지 20만건에 달하는 진정을 접수한 조직인 인권위가 이런 결정을 가볍게 내려도 되는 것인가”라며 항의했다. 인권위 안팎에선 이날 규정 변경에 따라 많은 진정 사건이 충분히 논의되지 않은 채 폐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안 위원장은 “(안건 통과로) 문제가 발생한다면 다시 이 부분에 대해 논의하고, 합리적인 결론을 도출하도록 하겠다”며 “개인적으로, 법리적으로는 이 안건이 타당하다고 생각하지만, 여러분의 우려를 고려해 기권하겠다”고 밝혔다.
인권위에서 지난해부터 논란이 된 이 안건은 이날로 14번째 상정 만에 개정이 이뤄졌다. 이날 전원위는 진정사건의 내용이 중대하거나 사회적으로 미칠 영향이 광범위하고, 표결에 나아갈 경우 인용 찬성 위원 수와 반대 위원 수가 같을 것으로 예상되면 소위원회는 그 표결에 앞서 해당 안건을 전원위원회에 회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안건도 의결했다.
한편 인권위는 고령이라는 이유로 헬스장 등 스포츠시설 회원 가입을 일률적으로 제한하는 것은 평등권을 침해하는 차별 행위에 해당한다며 A 스포츠클럽 사장에게 65세 이상 고령자가 차별받지 않도록 정관을 개정하는 등 재발 방지책을 마련하라고 권고했다고 이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