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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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포럼] 기로에 선 한동훈

임기 전반기 차별화는 유례없어
韓의 강점인 여론 지지율 하락세
전면전·타협 사이에서 고심할 듯
취임 100일 회견 발언도 수위조절

현재권력과 미래권력의 갈등은 필연이다. 1987년 현행 5년 단임제를 도입한 이후 임기 말이 되면 여권 대선주자는 어김없이 대통령과 불화했다. 1997년 대선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회창 후보가 충돌했고, 2007년 대선에서 노무현 대통령·정동영 후보가 부딪쳤다. 이회창은 김영삼의 탈당을 요구했고, 이회창 지지자들은 김영삼 마스코트 화형식까지 치렀다. 정동영은 노무현이 창당한 열린우리당을 와해시켜 새로운 당의 대선 후보가 됐고, 노무현은 전화를 걸어온 정동영에게 불쾌감을 여과 없이 표출했다.

 

현직 대통령과 차별화를 시도하며 대립했던 이회창, 정동영은 대권 도전에 실패했다. 박근혜정부의 김무성 대표 역시 마찬가지다. 김무성 역시 한때 지지율 1위를 내달렸지만, 중도 하차했다. 이명박·박근혜(2012년), 노태우·김영삼(1992년) 때는 애초부터 힘의 우위에 있던 미래 권력이 결국 승리했지만, 양자 관계는 시종 살얼음판을 걷는 듯 아슬아슬했다.

박창억 논설위원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의 반목도 피할 수 없었다. 언젠가 한 대표의 차별화도 불가피하다고 봤다. 그런데 차별화가 이렇게 일찍, 광범위하게 진행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임기 반환점도 되기 전에 미래권력이 현재권력을 겨냥해 차별화를 시도한 경우는 없었다. 윤 대통령 지지율이 곤두박질치며 여권 내 장악력이 약화한 데다 김건희 여사라는 초대형 악재가 터졌기 때문이다.

 

상궤를 벗어난 김 여사의 행보가 윤·한 갈등의 근인이지만, 한 대표는 사사건건 용산과 충돌했다. 한 대표는 친윤(친윤석열)계 정점식 정책위의장 교체, 김경수 전 경남지사 복권 문제를 놓고 윤심에 반기를 들었다. 윤 대통령의 도움과 지원이 없었다면 지금의 한 대표는 존재할 수가 없다. 윤 대통령이 한 대표에게 가진 배신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한 대표의 차별화에 맞서는 윤 대통령의 대응이 어느 경우보다 거칠고 매서운 이유다.

 

권력투쟁의 명분은 우위에 있지만, 한 대표의 세력은 소수파다. 초·재선, 비례대표 중심으로 구성된 친한(친한동훈)계는 20명 안팎이다. 친윤계는 40명에 육박한다. 여론 지지를 받는 특별감찰관 추천 문제도 친윤계의 제동에 걸려 표류할 정도로 한 대표는 세가 부족하다. 홍준표 대구시장에 이어 오세훈 서울시장 등 대권 경쟁자의 견제도 본격화하고 있다.

 

한 대표는 정치력에도 의문 부호가 따라다닌다. 전당대회 기간에 약속했던 ‘제삼자 추천 채 상병 특검법’은 야당에 공세의 빌미만 제공했다. 당내 논란을 초래해 좀처럼 추동력을 얻지 못하고 있다. 의·정 갈등 해소를 위해 역점을 둬온 여야의정 협의체 구성도 진척이 없다. 지난달 친한계(신지호 전략기획부총장) 스스로 “대표에 취임하고 두 달 가까이 됐는데, 뚜렷한 실적을 낸 게 없다고 하는 게 제일 아픈 대목”이라고 토로할 정도다.

 

한 대표가 내세울 강점은 여론 지지율이지만, 이 역시 약세다. 윤 대통령과 차별화에 나섰지만, 한 대표 기대와는 달리 윤 대통령·한 대표의 지지율은 한 묶음으로 움직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의 격차는 커지고 있다. 야당과의 정당 지지율도 벌어지고 있다. 당 지지율이 떨어질수록 ‘한동훈 체제’의 효용성에 대한 회의가 깊어지고, 한 대표의 지지율이 하락할수록 그의 발언은 힘을 잃을 수밖에 없다.

 

한 대표의 차별화 승부수는 성공할까. 그는 현직 대통령과 세력균형을 이뤄 결국 대권을 쟁취한 김영삼, 박근혜의 길을 걸으려 할 것이다. 현재 지지율이 최악인 윤 대통령은 정상적인 국정 수행이 어려운 상황이다. 그런데도 윤 대통령이 한 대표를 압박할 수단은 수없이 많다. 지난 21일 용산 회동에서도 윤 대통령은 한 대표를 홀대했고, 한 대표는 속수무책이었다. 어제 취임 100일을 맞아 기자회견에 나선 한 대표는 발언 수위를 조절했다. 특별감찰관 관철 의지를 확인했으나, 김 여사 특검 관련 질문에는 즉답을 피했다. 한 대표는 배수진을 치고 전면적인 차별화에 나서야 할까. 아니면 현실과 타협해 후일을 도모해야 할까. 한 대표는 지금 기로에 서 있다.


박창억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