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검팀 출신 윤석열 대통령이 특검 제도를 부정하는 듯한 발언을 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영화 ‘변호인’의 한 장면이었다. 영화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변호사 시절 ‘부산 학림사건’으로 억울하게 기소된 학생들의 무죄를 주장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피고인들이 영장 없이 불법 체포·구금돼 고문에 시달리다 재판에 넘겨진 것은 에드워드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등 ‘불온 서적’을 학습했단 이유에서였다. 변호사는 그 책들이 서울대 선정 권장도서인 점을 강조하고선 서울대 출신 재판장과 검사를 번갈아 보며 일갈했다. “불온단체 출신이신데 어찌 된 겁니까.”
특검 제도가 김대중정부 시절 처음 도입될 때부터 위헌 논란을 일으켰단 윤 대통령의 한 달 전 기자회견 발언이 지금도 정치권에 여진을 일으키고 있다. 윤 대통령은 “대통령과 여당이 반대하는 특검을 임명한다는 것 자체가 헌법에 반하는 발상”이라며 “특검을 국회가 결정해 임명하고 방대한 수사팀을 꾸리는 나라는 없다”고 했다. 자신의 배우자를 특검 수사해야 한다는 야권의 주장을 반박하면서다. 특검 후보 추천 과정이 어떻고 수사 대상이 누구냐를 떠나 제도 자체의 정당성을 부정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는 말이었다.
윤 대통령은 특검과 인연이 깊다. 그는 2008년 이명박 당시 대통령 당선인의 BBK 주가조작 의혹 수사를 위한 정호영 특검팀에 파견검사로 들어갔다. 그때 정 특검은 이 당선인을 서울 시내 한 곰탕집에서 만나 식사를 하며 조사해 ‘꼬리곰탕 조사’란 뒷말을 남겼다. 이 당선인은 무혐의 처분을 받고 대통령 임기를 마쳤지만 퇴임 후엔 윤 대통령이 이끌던 서울중앙지검에서 다스 실소유주 등 의혹으로 조사받고 구속기소됐다. 윤 대통령은 2016년엔 박근혜정부의 국정농단 사건 수사를 위한 박영수 특검팀에 수사팀장으로 들어가 활약했다. 두 번째 특검팀 경력이 그가 검사로서도 정치인으로서도 ‘최정점’으로 향하는 단초가 됐다.
그랬던 윤 대통령이 특검 제도의 정당성을 부정하는 듯한 발언을 하는 건 어색한 면이 있다. 더구나 이미 2019년 2월 헌법재판소는 박영수 특검 추천이 야권 주도로 이뤄진 것은 부당하다며 제기된 헌법소원 사건에서 재판관 만장일치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 흔들림 없는 헌재 결정에 맞선 윤 대통령의 주장은 다소 공허해 보인다.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 “검사가 수사권 갖고 보복하면 깡패” 등 거침없는 발언으로 화제를 모았던 ‘검사 윤석열’을 향한 국민적 지지를 ‘대통령 윤석열’이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은 많은 국민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대통령의 성공’이 곧 ‘국민의 성공’이란 믿음 때문일 것이다. 꽉 막힌 여야 특검 정국을 풀어갈 키를 쥔 유일한 이가 바로 윤 대통령이다. 그는 “이제 ‘정치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다는데 그 ‘정치’를 검사가 수사하듯, 변호사가 변론하듯 하는 것처럼 비치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 대통령이 국민 대신 법전만 바라보며 정치하는 것처럼 보여선 곤란하지 않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