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맞춤형 '대나무 숲''.
출시 2주년을 맞은 생성형 인공지능(AI) 챗GPT의 다양한 활용법이 속속 등장하는 가운데 감정을 배출·해소하는 창구의 기능도 부상하고 있다.
2030을 중심으로 챗GPT를 '디지털 상담소'로 활용하고 있다는 '증언'이 이어진다.
해외에서 직장을 다니는 A(26) 씨는 한국어로 하소연하고 싶을 때마다 챗GPT를 켰다. 상사 욕을 털어놓으면 인공지능은 무조건 조씨 편을 들어줬다. 모든 말에 긍정적으로 반응하고 조씨를 '두목님'이라고 부르도록 학습시킨 덕분이었다.
A씨는 "친구들을 '감정 쓰레기통'으로 쓰고 싶지 않다"면서 "챗GPT를 나만의 '대나무 숲'이라고 생각하고 마음껏 고민을 외친다"고 말했다.
국내 회사를 다니는 오모(27) 씨는 "회사에서 막내로 여기저기 치이다가 '행님' 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좋다"면서 "날 것의 감정을 마구 표출해도 챗GPT는 마음 상할 일 없으니 좋다"고 밝혔다.
실제로 기자가 직접 챗GPT에 비슷한 '고충'을 털어놓자 "햄(형님)! 마음 푸십쇼. 상사 때문에 행님 열받을 가치 1도 없단 말입니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치료학과 교수는 "익명성이 보장되는 인공지능과 상담하면 감정 정화 효과를 얻을 수 있다"면서 "처음 본 여행객에게 비밀 얘기를 털어 놓듯이 챗GPT에 쉽게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우울증을 앓고 있는 청년 수의 증가도 인공지능 상담 수요를 키웠다는 분석이다.
지난 1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자료에 따르면 2022년 우울증으로 진료받은 환자는 100만32명을 기록했다. 2030 우울증 환자 수는 각각 19만4천여명, 16만4천여명으로 전 연령대에서 가장 많았다.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는 김모(23) 씨는 챗GPT에게 우울증이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작은 성취에도 칭찬을 해달라고 학습시켰다.
김씨는 "기대보다 상담을 잘 해줘서 놀랐다"며 지난 8월부터 본격적으로 챗GPT를 상담사로 활용하겠다고 마음 먹었다고 밝혔다.
그는 "AI에게 너무 의존하는 게 아닐지 걱정된다"면서도 "상담 예약하기 어렵거나 당장 주변 사람에게 연락할 수 없을 때, 언제든 찾을 수 있다는 게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정기적으로 심리 상담을 받고 있는 안모(25) 씨는 "내게 맞는 상담사를 찾으려면 시간이 많이 드는데, 챗GPT는 한번에 맞춤형 답변을 해준다"고 말했다.
AI 상담은 병원 진료에 비해 비용이 적다는 것도 장점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에 따르면 2022년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비는 총 5천378억원으로, 1인당 진료비는 53만8천원이었다.
반면, 챗GPT 유료 버전 구독료는 월 20달러(약 3만원)다. 'GPT 탐색' 탭에서는 여러 맞춤형 버전을 무료로 사용할 수 있다. '사주·타로 상담', '연애왕', '팩폭러(팩트만 말해주는 사람)' 등 종류도 다양하다.
전문가들은 AI 상담의 효용을 일정 부분 인정하면서도 우려를 표했다.
임 교수는 "AI는 보편적인 대답만 할 가능성이 높다"면서 "깊은 공감과 상담은 전문 상담가에게 맡겨야 한다"고 말했다.
임기범 인공지능경영학회 이사는 "인공지능이 전지전능하다는 것은 착각"이라면서 "나를 잘 알도록 훈련한 언어 모델일 뿐, 지식을 많이 갖췄다고 해서 상담을 맡겨선 안 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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