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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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의 계엄발동’ 제대로 된 ‘통제 시나리오’도 없었나…‘육사 4인방’ 주도

대통령실 참모, 여당 지도부도 ‘패싱’, ‘깜짝 발표’
야당이 ‘해제안’ 통과시키면 무용지물 되는데
어설픈 국회 통제, 의원들 담벼락 넘어 본청 입성

윤석열 대통령이 3일 저녁 전격 발표한 비상계엄은 대통령실 고위급 참모와 국민의힘 지도부와 상의 없이 비밀리에 이뤄진 것으로 파악됐다.

 

윤 대통령에게 비상계엄 선포를 건의한 김용현 국방부 장관(육사 38기)를 필두로 계엄사령관을 맡은 박안수 육군참모총장(46기), 소속 부대에서 계엄군 병력을 동원한 곽종근 육군특수전사령관(47기), 이진우 수도방위사령관(48기) 등 육군사관학교 출신 ‘4인방’이 주도 세력으로 거론된다.

윤석열 대통령이 4일 새벽 용산 대통령실에서 비상계엄 선포 해제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거야 국회’에서 야당의 계엄해제 결의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 바로 계엄이 해제되는 점과, 이러한 상황을 감안한 철저한 통제 없이 다소 어설프게 일을 치른 점에서 의구심이 제기된다.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건 3일 오후 10시25분쯤이었다. 계엄사령관에 임명된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은 그에 맞춰 국회와 정당 등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지한 계엄사 1호 포고령을 내렸고, 포고령이 발표되고 30분 후 계엄군이 국회에 들이닥쳤다.

 

그러나 계엄군이 들이닥치기 전인 오후 10시30분부터 11시 사이 야당 의원뿐 아니라 여당 의원들도 국회로 이동해 본회의장을 향했고, 11시에 계엄군이 국회 정문을 바리케이트로 막아선 이후에도 일부 의원들은 국회 담벼락을 넘어 본청으로 이동했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비상계엄령이 선포된 지난 3일 밤 서울 여의도 국회 담을 넘어 경내로 들어가고 있다. 국회 사무처 제공

‘계엄 해제안’을 의결할 수 있는 의원 정족 수를 채우지 못하도록 사전에 차단하는 시나리오가 제대로 가동됐는지 의문이다.

 

그만큼 이번 비상계엄 선포가 일부만의 밀실 협의로 이뤄져 군 병력이 체계적으로 움직이지 않았거나, 계엄의 명분이 부족해 제대로 명령이 이행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다양하게 제기된다.

 

이날 군과 정치권에 따르면 김 장관은 이번 비상계엄 사태에서 핵심적 역할을 맡은 것으로 평가된다. 김 장관은 윤 대통령에게 비상계엄 선포를 건의한 인물로, 철저한 보안 속에서 비상계엄 계획과 실행을 준비했다.

 

이번 계엄 선포는 대통령실 고위급 참모를 비롯해 군 고위 당국자들에게도 공유되지 않은 채 긴박하게 이뤄졌는데 김 장관이 이 과정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장관은 계엄사령관으로 육사 8기수 후배인 박안수 육군참모총장(대장)을 윤 대통령에게 추천했고, 박 사령관은 대통령 재가를 받아 임명됐다.

윤석열 대통령이 3일 저녁 비상계엄령을 발표한 이후 4일 오전 국회 내부로 진입한 계엄군과 국회 보좌진들이 대치하고 있다. 뉴시스 

동원된 계엄군 병력의 원소속은 특전사 예하 707특수임무단과 제1공수특전여단, 수방사 소속 군사경찰특임대 등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 고위급 참모들에게도 상의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정진석 대통령비서실장과 신원식 국가안보실장, 성태윤 정책실장 등 3실장과 수석비서관 이상 고위 참모진은 이날 일괄 사의를 표명했다.

 

국민의힘 지도부와의 사전 논의도 없어 여당에선 3일 저녁 즉각 계엄 반대 입장을 밝혔다. 한동훈 대표는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됐다.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했고, 친한계 의원들은 이날 새벽 국회 본회의에 참석해 비상계엄 해제 결의안에 찬성표를 던졌다.

비상계엄이 선포됐다 해제된 4일 수원시 국민의힘 경기도당 당사의 외벽에 김용현 국방부장관을 비방하는 낙서가 쓰여 있다. 뉴스1

한 대표는 국회 본회의가 끝나고 기자들과 만나 “집권여당으로서 이런 사태가 발생해 대단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윤 대통령은 국방장관을 즉각 해임하는 등 모든 책임자에게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밝혔다.

 

친윤계로 분류되는 추경호 원내대표도 “국민들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추 원내대표는 ‘대통령실과 사전에 의견 교류가 없었냐’는 질문에 “저도 뉴스를 보고 알았다”고 답했다.

 

윤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한 배경이 여전히 의문에 휩싸인 가운데, 일각에선 자극적인 극우 성향의 유튜브 콘텐츠에 영향을 받은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이현미 기자 engin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