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를 교직을 박차고 아나운서에 도전했던 때로 돌렸다. 안정적이면서도 선망받는 직업인 초등학교 교사직 대신 마이크를 잡는 아나운서가 되겠다고 했을 때도 스포츠 아나운서에 대한 생각은 그리 없었다고. 지금의 김선신을 있게 한 MBC스포츠플러스에 입사 지원을 한 것도 자의반, 타의반이었다. 아나운서 준비를 위해 다녔던 아카데미의 선생님들이 스포츠 아나운서를 추천해서였다.
“그때만 해도 제가 생각하는 스포츠 아나운서는 뭔가 키도 엄청 크고 화려한 외모를 가진 분들이 한다고 생각을 해서 지원을 안 하려고 했거든요. 근데 아카데미 실장님이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넣어봐라, 네 성격에는 가만히 앉아서 뉴스를 하는 스타일보다는 돌아다니는 게 맞을 것 같다’라며 적극 권유하셔서 넣었는데, 그게 제 길이 될 줄 몰랐죠. 지금은 정말 두고무고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을 정도죠”
그렇게 우연히 들어선 스포츠 아나운서의 길은 그야말로 천직이었다. 특유의 밝은 에너지와 통통 튀는 성격과 스포츠가 찰떡이었던 것이다.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가장 많은 현장을 찾은 종목은 야구였다. 지난 세월을 떠올렸을 때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를 들려달라는 질문에 곰곰이 생각하던 김 아나운서는 메이저리그 스프링캠프 취재를 꼽았다. 과거 MBC스포츠플러스가 메이저리그 중계권을 갖고 있던 시절 얘기다.
김 아나운서는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이 정말 많잖아요. KBO리그는 물론이고 메이저리그도 마찬가지고요. 선수들과 현장을 가까이에서 지켜볼 때마다 ‘내가 만약 스포츠 아나운서가 아니라 야구 팬이었다면 어떻게 더그아웃에서 감독님들이나 내로라하는 슈퍼스타 선수들을 인터뷰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올해 하이라이트 프로그램을 내려두고 현장 리포팅을 맡으면서 선수들의 숨소리를 느끼고, 그들의 이야기를 가장 가까운 데서 들을 수 있다는 게 더욱 감사하게 느껴졌어요”라고 말했다. 이어 “올 시즌 특히 KBO리그가 천만 관중을 처음 돌파하는 등 인기가 더욱 많아졌는데, 관중 분들은 대포 카메라를 그물에 대고 어떻게든 좋아하는 선수를 가까이에서 보고싶어 하잖아요. 저는 선수들과 만나서 가까이에서 진솔한 얘기를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을 때, 제 직업이 참 감사하고 보람차게 느껴져요”라고 덧붙였다.
인터뷰어로서의 김 아나운서는 톡톡 튀고 돌발적인 질문도 많았다. 이를 두고 호평도 많았지만, ‘보기 불편하다’, ‘무례하다’ 등의 비판도 있었다. 그런 평가나 악플에 상처를 받거나 하진 않았을까? 김 아나운서는 “당연히 제가 잘못한 부분은 수용을 했죠. 아나운서 초창기에는 인터뷰를 위해 자료도 많이 찾아보고 공부를 많이 하잖아요. 그래서 잘 하고 싶은 마음에 그랬던 게 표현이 잘 못됐을 경우도 있고...어쨌든 간에 그런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지금의 제가 맍들어진 것 같아요. 덕분에 지난해나 올해 현장에서 인터뷰할 때는 좀 더 성숙한 인터뷰를 하려고 노력도 많이 했고, 실제로도 그렇게 잘 나왔던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이어 “악플도 아나운서 커리어 초반에는 좀 봤는데, 아무래도 악플이 정신적으로 나쁜 영향을 미치다보니 점차 안 보게 되더라고요. 그래도 아예 대놓고 악플을 무시하지는 않고, 정말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려고 했던 것 같아요”라고 덧붙였다.
인터뷰이를 편하게 해주는 인터뷰 스킬과 친화력을 베이스로 김 아나운서만의 특유의 무리수 넘치는 질문 덕에 ‘선신병자’(선신+정신병자)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그는 “어쨋든 무플이나 악플이 더 낫다고, 그런 별명을 가진 아나운서가 몇 명이나 있을까요? 그래서 호감과 애정 어린 별명이라고 생각을 해요. 톡톡 튀고 독창적인 모습을 보여줄 때 그런 댓글이 달리니까, 지금은 관심 어린 표현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지금은 스포츠 아나운서를 비롯해 스포츠 현장에서 다양한 직업 분야에 여성들이 종사하는 게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김 아나운서의 초창기 때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금녀의 영역’이란게 공공연하게 있었던, 여성에 대한 편견이 가득한 시대도 있었다.
“저보다 먼저 스포츠 아나운서 활동을 했던 선배님들한테 들은 얘기로는, 더그아웃에 저희가 들어가면 ‘오늘 재수 없다’ 이런 식으로 간접적으로 표현하시는 분들이 계실 때도 있었대요. 이젠 너무 바뀌어서 당연해졌죠. 저뿐만 아니라 제 앞에 활동하셨던 여자 스포츠 아나운서 선배님들의 노력 덕분에 여자 아나운서가 선수들과 얘기를 나누는 게 당연해졌죠. 요즘은 스포츠 아나운서뿐만 아니라 구단 유튜브 촬영하는 PD 등 촬영 스태프들도 거의 다 여자들이에요. 저만 하더라도 선수들 출입하는 복도를 다니는 것만 해도 조심스러웠는데, 이제는 그런 것도 사라지고 인식이 바뀐 것 같아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금녀의 영역이 하나둘씩 깨지고 있지만, 여전히 여성 스포츠 아나운서들의 주요 역할은 하이라이트 프로그램 진행이나 현장 리포팅에 그치고 있다. 몇몇 종목에서 여성 스포츠 아나운서들이 캐스터도 맡지만, 대다수 캐스터들은 남성 스포츠 아나운서들이 맡아서 하고 있다. 이에 대한 김 아나운서의 생각은 어떨까.
“저 역시 캐스터가 늘 숙제였어요. 다만 제가 다녔던 MBC스포츠플러스에서는 여자 아나운서라고 해서 캐스터 역할을 못 하게 하건 결코 아니었고, 정말 감사하게도 끊임없이 캐스터 역할을 주셨어요. 저도 리틀야구나 여자야구에서 캐스터 역할을 하긴 했었거든요. 근데 리틀야구나 여자야구 캐스터를 하면서 야구라는 종목의 중계의 캐스터를 맞기엔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건 지극히 저에게만 해당하는 얘기인데, 제 목소리의 음역대, 피치가 캐스터에는 맞지 않다고 생각했거든요. 저같은 하이톤의 목소리로 3시간 정도 혹은 그 이상의 목소리를 듣게 되면 시청자들은 피로감을 느낄 수도 있거든요. 저도 야구에서 캐스터 역할의 ‘정수’라 할 수 있는 홈런콜을 진짜 연습을 많이 했는데, 어떻게 해도 어색하더라고요. 이건 저에게만 해당하는 얘기일 수도 있으니 좀 중후하면서도 안정감있는 목소리를 가진 여자 아나운서들은 캐스터에 도전해도 된다고 봐요. 그런 아나운서 후배들이 나오는 날을 저도 기다려보겠습니다”
에필로그
스포츠 아나운서에겐 인터뷰가 일상이다. 자신의 인터뷰 모니터링은 물론 다른 아나운서들의 인터뷰도 찾아보는 게 일종의 직업이다. 마치 신문기자가 매일 아침 타사의 기사를 체크하는 것과 비슷한 것이다.
김선신 아나운서에게 ‘이 친구 참 인터뷰를 잘하는구나’ 느꼈던 후배가 있느냐고 물었다. 곰곰이 생각하던 그는 “KBSN스포츠의 오효주 아나운서가 배구에서 챔피언결정전에서 최태웅 감독님을 눈물 흘리게 했던 인터뷰가 기억에 남아요.(2018~2019 V리그 챔피언결정전에서 현대캐피탈 최태웅 감독은 우승 후 오효주 아나운서와 인터뷰에서 주전 세터 이승원 얘기가 나오자 눈물을 펑펑 흘렸다) 사실 저는 인터뷰를 하면서 누구를 울려보거나 그런 적은 별로 없거든요. 그 인터뷰를 보면서 오 아나운서가 종목에 대한 이해는 물론, 우승팀의 사정을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다는 것도, 인터뷰이와 충분히 교감을 하고 있다는 것도 여실히 느껴졌어요. 저도 그런 현장에서 그렇게 인터뷰를 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지를 알거든요. 엄청 시끄럽고, 앰프 소리도 큰 상황에서 그런 감정을 이끌어낸다는 게 참 대단하다고 생각해요”라고 답했다. 본 기자 역시 스포츠 아나운서의 우승 인터뷰 중 역대 NO.1으로 꼽는 인터뷰다. 사람의 눈은 다 비슷하다는 것을 또 한 번 느낀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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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segye.com/newsView/20241203500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