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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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안 가결로 정치적 불확실성 해소됐지만…대내외 악재 여전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되면서 경제적인 측면에서 하나의 큰 불확실성이 해소됐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내수 부진이 지속되는 가운데 내년도 1%대 저성장이 예고되는 등 경제 여건은 녹록지 않다는 지적이다. 특히 내달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 2기 출범과 맞물려 수출 하방압력이 높아지는 등 지난 두 번의 탄핵 심판 국면과 달리 대외 여건도 우호적이지 않은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그간 경제 정책 측면에서도 ‘정치’가 실종됐었다면서 이제는 정치권과 정부가 원만한 협치를 통해 경제 안정을 꾀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한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지난 14일 국회 본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가결하자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 의원들이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15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지난달 카드승인액은 전년 동월 대비 2.9% 증가하는 데 그쳤다. 10월 증가폭(1.2%)보다 1.7%포인트 올랐지만 올해 전체적으로 보면 두 번째로 낮았다. 승용차 판매량과 백화점 카드승인액도 각각 1.7%, 5.5% 감소하는 등 상품 소비는 좀처럼 회복세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 수출도 전년 동월 대비 1.4% 늘어 10월(4.6%)보다 증가폭이 크게 둔화됐다.

 

서민 경제도 벼랑 끝에 몰리고 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현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서민금융진흥원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저신용·저소득층 정책금융상품인 소액생계비대출 연체율은 지난 10월 기준 29.7%에 달했다. 소액생계비대출은 신용평점 하위 20% 이하이면서 연 소득 3500만원 이하인 저신용·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연체가 있거나 소득 증빙 확인이 어려운 경우에도 최대 100만원까지 당일 즉시 빌려주는 제도다. 지난 10월 말 신용정보원 채권자변동정보 시스템에 등록된 연체 개인 및 개인사업자 차주 수는 614만4000명으로 집계됐고, 이들의 연체잔액도 49조4441억원으로 50조원에 육박했다.

 

이런 상황에서 탄핵안이 가결된 점은 대외신인도나 금융시장 안정 측면에서 긍정적이란 평가다. 무디스레이팅스가 지난 6일 보고서를 통해 정치적 여파가 장기화할 경우 성장 둔화, 어려운 지정학적 환경 등 수많은 과제를 해결해야 하는 정부 능력에 부담을 줄 수 있다고 우려하는 등 여러 신용평가사들은 정치적 불확실성이 지속되는 상황을 위험요인으로 거론한 바 있다. 한국은행은 이날 ‘비상계엄 사태 이후 금융‧경제 영향 평가’ 참고자료를 통해 2차 탄핵안이 가결되면서 “향후 정치 프로세스와 관련한 예측 가능성이 높아짐에 따라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완화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탄핵안 가결 이후에도 악재는 여전히 상당하다는 지적이다. 먼저 지난 두 번의 탄핵 국면에서는 대외적으로 좋은 상황이 전개돼 충격이 흡수됐지만 지금은 오히려 상반된다는 분석이다. 과거 탄핵 국면에는 중국의 고성장(2004년), 반도체 경기 호조(2016년) 등 우호적인 대외여건이 수출개선을 통해 성장세를 뒷받침할 수 있었다. 반면 이번에는 트럼프 2기 정부 출범 등 통상환경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반도체 등 주력산업의 글로벌 경쟁 심화로 대외여건의 어려움이 커진 상황이다.

 

이번 정치적 혼란을 반영하지 않더라도 현재 한국 경제에는 ‘저성장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진 상태다. 한은은 내년 한국의 성장률을 1.9%로 하향 조정했고, 골드만삭스도 1.8%로 제시하는 동시에 하방 가능성을 강조하는 등 글로벌 투자은행(IB)의 평가도 좋지 않은 상황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은 내년 성장률을 1.7%로 제시하며 종전 전망치(2.2%)보다 0.5%포인트 내려 잡기도 했다.

 

성장률이 떨어지면 올해보다 부정적으로 예측된 고용시장이 추가로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커지는 등 취약계층을 중심으로 경제적 어려움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내년 취업자 수 증가폭이 14만명으로 올해(18만명)보다 낮아질 것으로 예측한 바 있다.

 

이에 비상계엄 사태 여파로 통과된 감액예산을 보완하기 위해 추가경정예산안(추경)을 조속히 마련하는 등 정치권과 정부가 합심해 경기 회복에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은은 “과거 탄핵 국면시 경제정책이 정치 프로세스와 분리되어 집행되고 경제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는 신뢰가 유지되면서 그 영향을 감내 가능 한 수준으로 관리할 수 있었다”면서 2004년 상반기 재정집행 실적이 87조5000억원(연간계획의 55.0%)으로 당초 목표 87조2000억원을 초과하고, 2016년에는 정치갈등 중에도 여야 합의로 차기 예산안 통과(2016년 12월), 중장기 투자활성화 대책 및 내수활성화 방안을 마련(2017년 2월)한 사례를 소개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지금까지는 (정부가) 야당을 배제한 정책을 실시한 측면이 있었다. 야당이 요구하는 것은 들어주지 않고, 야당은 거기에 예산삭감으로 대응한다든지 하면서 정치가 작동을 하지 않았다. 그것 때문에 탄핵이 된 측면도 있다”면서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에서 새로운 일을 벌이기 쉽지 않은 상황이지만 트럼프 2기 대응이라든지 추경 편성 등 중요한 현안은 정치권과 정부가 협의해 가면서 무리 없이 처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제팀은 이날 긴급회의를 개최하며 시장 안정을 위한 메시지를 발신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긴급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대외신인도 제고의 핵심인 외국인 투자에 대한 인센티브를 획기적으로 강화하겠다”면서 “경제·외교부처가 함께하는 ‘대외관계장관 간담회’를 정례화해 경제협력과 통상 현안, 공급망 안정성을 점검하고 즉각 대처하겠다”고 말했다. 최 부총리는 이어 “반도체와 항공·해운물류 분야에 이어 석유화학, 건설 분야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방안도 바로바로 마련하겠다”면서 “재정, 공공기관, 민간투자 등 가용재원을 총동원한 내년도 상반기 신속집행 계획을 곧 발표하고, 취약계층을 위한 추가 지원방안도 과감하게 강구하겠다”고 말했다.


세종=이희경 기자, 김수미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