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민족 사회 대한민국/ 손인서/ 돌베개/ 1만8000원
한국 사람이 스스로 일컫는 표현 중에는 ‘단일민족’이라는 말이 있다. 그 앞으로는 ‘반만년의 역사’라는 수사가 따라온다. 고고한 역사 속에서 혈연적 동일성을 유지해 온 자부심이 묻어나는 말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분위기가 바뀌었다. 저출생으로 인해 인구 재앙 위기감이 커지면서 이주민 도입을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인구, 돌봄, 노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한국이 직면한 현실을 타개할 해결책으로 ‘값싸고 편리하게 내놓은 대책’인 셈이다.
신간 ‘다민족 사회 대한민국’은 낙후된 산업 구조조정이나 복지정책 개선 등 한국사회의 고질적인 문제가 개선되지 않으면 이렇게 ‘수단’으로서 추진되는 이주민 도입은 임시방편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고 꼬집는다.
실제로 국내 이주민 인구는 이미 200만명을 넘어섰지만 이주민과 관련된 사회문제는 최근 더욱 커지고 있다. 대구에서는 이슬람 사원 건축 문제를 놓고 갈등을 빚었고, 포천에서는 베트남 출신의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10대 청소년들에게 폭행을 당하기도 했다. 당국은 인종차별 사건이 발생하면 ‘포용’을 강조하며 넘어간다.
책은 정부의 정책 자체가 이미 이런 문제를 잉태했다고 지적한다. ‘다문화 가정’이라는 키워드가 사용된 지 오래됐지만 한국인과 결혼한 외국인, 재외동포를 제외하고는 외국인의 영주를 원칙적으로 허용하지 않는 정책이 대표적이다. 혈연을 제외하고 다른 문화, 민족, 인종을 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의미다. ‘전문인력’은 장기체류 신청에 유리하지만 정부가 정착을 유도하는 인력은 유럽과 미국보다 한국을 매력적으로 느끼지 않는 게 현실이다.
저자는 또 이주민에 대한 각종 ‘사회통합 프로그램’은 한국어와 한국문화, 한국사회 이해 등 이주민을 한국사회와 문화에 흡수시키는, 동화교육 과정에 가깝다고 지적한다. 단기 이주인력 수입 확대, 결혼이주민과 재외동포의 ‘2등 시민’ 편입을 조장하며 인력의 대상으로만 이들을 대하며 시민으로서 기회를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차별적인 이민정책은 출신과 피부색, 직업에 따른 인종의 구분을 만들어낸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그 결과 선진국, 백인, 전문직 이주민은 세련되고 똑똑해 우리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부류로 인식하게 됐고 반대로 개발도상국, 유색인종, 비전문직 이주민은 거칠고 무식하고 게을러서 사회의 일원이 될 수 없다는 인식으로 연결되는 ‘인종화’ 과정으로 귀결된다.
국내 본격적인 이주민 유입의 역사가 이제 20년을 넘어섰다. 2세대 이주민 중에는 이제 성장해서 성인에 진입하는 인구 비율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앞날은 어둡다. 서구의 경우 이주민 2세대는 내국인보다 고용률은 낮고 실업률은 높다. 차별의 대물림이다. 국내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대한민국이 이주민 없이는 유지되기 어려운 나라라는 점을 지적하며 냉정하게 현실을 평가하고 새로운 이민정책과 담론을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