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 눈을 잃은 라마가 아이들을 지그시 쳐다보고 있다. ‘가까이 다가가면 스트레스를 받아 침을 뱉는다’는 경고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이들은 연이어 환호성을 질렀다. 라마는 그러나 꺅꺅대는 아이들을 뒤로한 채 온화한 눈빛으로 느긋하게 산책을 계속했다. 강릉에 있는 쌍둥이동물원은 원래 사슴 농원으로 아버지가 시작했다가 쌍둥이 형제의 형인 남우성씨가 이어받았다. 처음에는 사슴이나 양 같은 가축들을 위주로 체험형 농장으로 시작했다.
첫 시작이 체험형 농장이었던 만큼 쌍둥이동물원의 특색은 먹이주기에 있다. 맹수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동물에게 먹이주기 체험을 할 수 있다. 먹이를 너무 많이 먹이면 동물들도 비만의 위험이 있기 때문에 먹이주기 체험은 선착순으로 운영된다. 프레리도그, 병아리, 오리 같은 작은 동물들은 물론이고 너구리나 오소리에게도 먹이를 줄 수 있다. 양과 염소도 담장을 뛰어넘을 기세로 먹이에 모여든다. 하지만 가장 인기가 있는 것은 송아지다. 우유통을 보자마자 흰자를 번뜩이며 젖꼭지를 힘차게 빠는 송아지에 아이들은 무서워하면서도 신기함에 눈을 떼지 못한다.
남우성 쌍둥이동물원 대표는 동물원을 해보고 싶었던 아버지와 함께 준비하던 중, 선천적 장애로 오른쪽 뒷다리를 절어서 합사 부적합 판정을 받은 호랑이 루시를 만나게 됐다. 루시를 계기로 전국에 아프거나, 조금 모자란 이유로 버려지거나 사육장의 뒤편으로 밀려나 쓸쓸하게 지내는 동물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고, 최대한 그런 동물들을 구조하거나 입양하고자 노력했다.
너구리 카페가 폐업하고 버려진 흰 미국너구리, 쓸개 채취 목적으로 키워지다가 법이 바뀌면서 버려진 오소리들. 초산의 아픔으로 어미에게 버려진 원숭이 끼끼, 재작년 폐업한 부경동물원에서 온 백호. 당시 부경동물원에서 갈비가 훤하게 드러날 정도로 비쩍 말라 화제가 되었던 ‘갈비 사자 바람이’의 딸 구름이(당시 소망이)도 이곳에서 임시 보호를 받다가 청주동물원으로 갔다.
2022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전체회의에서 ‘동물원 및 수족관의 관리에 관한 법률 전부개정법률안’을 비롯한 17건의 법률안을 의결했다. 해당 개정안에 포함된 내용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동물원·수족관 등록제를 허가제로 전환하고 현재 등록제로 운영되고 있는 동물원과 수족관은 법 시행일부터 5년 이내에 허가 요건을 갖추어 허가를 받도록 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공중의 오락 또는 흥행의 목적으로 보유 동물에게 불필요한 고통을 가하는 행위 등을 금지해 동물에게 일상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학대 방지 방안을 마련해 동물원·수족관이 보유하고 있는 동물의 복지를 증진하는 것이다. 법안의 취지는 좋으나, 실제로 적용되었을 경우는 다르다. 해당 개정안에 따라 허가를 받고자 바쁘게 움직이는 민간 동물원들은 아직도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지 않는 것에 골머리를 썩고 있다.
동물원의 동물들에게도 동물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하지만 기준에 충족되지 못하는 라쿤 카페, 알파카 카페, 먹이 체험을 위해 동물들을 굶기며 동물들을 학대하던 동물원들이 과연 동물원 및 수족관의 관리에 관한 법률 전부개정법률안의 유예기간이 끝나는 2027년까지 명확한 기준도 없는 허가제를 받고자 개선 작업에 적극적일지는 미지수다.
남 대표는 ‘동물들의 실버타운’이 쌍둥이동물원의 목표라고 했다. 늙고, 병들거나 장애가 있어 버려지는 동물들에게도 머무를 안식처가 필요하다는 게 남 대표의 뜻이다. 하지만 쌍둥이동물원처럼 구조 의지가 있어도 전국에서 쏟아져 나올 동물들을 감당할 수용 공간도, 인력도 부족한 게 현실이다. 동물들을 위한 법이 오히려 동물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역설적인 상황에, 지금도 수많은 동물은 불안정한 미래를 기다려야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