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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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협, ‘제국의 위안부’ 저자 박유하 교수의 특별공로상 돌연 취소

입력 : 2025-10-01 21:27:48
수정 : 2025-10-01 21:2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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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협, 1일 긴급회의 열어 돌연 수상 계획 취소
정의기억연대 등 반발 의식해··· 갑작스럽게 수상 철회
박 교수 “내가 취소해달라고 했다. 평가는 후대가 해줄 것”

‘제국의 위안부’ 저자인 박유하 세종대 명예교수와 발행인 정종주 ‘뿌리와이파리’ 대표의 올해 책의 날 한국출판공로상 특별공로상이 돌연 취소됐다. 

 

대한출판문화협회(출협)은 지난달 29일 발표한 박 교수와 정 대표의 수상 계획을 철회했다고 1일 밝혔다. 출협은 이날 오후 긴급 상무이사회의와 책의 날 한국출판유공자상 및 관련 업계 유공자상 운영위원회를 소집해 특별공로상 취소를 결정했다. 

‘제국의 위안부’ 저자 박유하 세종대 명예교수.

출협은 오는 13일 서울 광화문 프레스센터에서 여는 제39회 책의 날 기념식 및 출판문화발전 유공자 포상 시상식에서 두 사람에게 특별시상식을 수여한다고 공지한 바 있다. 한국출판공로상은 출판문화 발전에 기여한 공로자를 시상하는 출판계의 대표적인 상 가운데 하나다. 지난해에는 민주화운동의 자양분이 된 사회과학 서적을 오랫동안 출판한 고(故) 나병식 도서출판 풀빛 대표가 특별공로상을 받았다.  

 

박 교수는 ‘제국의 위안부’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지난 2015년 기소됐으나 2023년 대법원으로부터 명예훼손죄로 처벌할 만한 ‘사실의 적시’로 보기 어렵다며 무죄 취지의 판단을 받았다. 파기 환송된 사건을 이어받은 서울고법은 지난해 사건을 무죄로 판단했고, 검찰이 재상고를 포기해 무죄가 최종 확정됐다. 또한 책의 일부 내용을 삭제하는 조건으로 출판·배포를 제한했던 기존 가처분 결정도 지난 7월 취소됐다. 

 

출협은 앞서 박 교수를 한국출판공로상 특별공로상 수상자를 발표하며 “1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치열한 법정 투쟁을 벌였고, 2025년 마침내 학문의 자유와 언론 출판의 자유를 지켜내는 데에 헌신하였기에 출판사 대표와 저자에게 공동 수여를 추천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학술적 논쟁이 치열한 저작물의 저자에게 상을 수여해, 책의 내용을 정당화할 수 있다는 일부의 주장이 제기되면서 출협은 이날 시상 계획을 돌연 철회했다.

 

출협은 입장문을 통해 “올해 대법원 판결에 사법적 판단이 종결돼 수상자를 선정했다”면서도 “수상자 선정 과정에서 일제 식민지배를 겪은 우리 국민들의 고통스러운 역사와 위안부 할머니, 또 그의 아픔에 동감하여 그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활동하고 성원해온 많은 분의 아픔과 분노를 깊게 헤아리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국민들과 위안부 할머님 당사자들은 물론 함께 염려하고 활동해온 많은 분들과 걱정을 끼쳐드린 점에 대해 출판인 여러분들께도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수상 철회 배경을 밝혔다. 

 

정의기억연대는 지난달 30일 성명을 통해 “기가 막히는 일”이라며 “법리적 해석으로 현실의 법정에서 최종 무죄를 받았다고 해도 있는 역사를 부정하고 피해자들의 마음에 대못을 박은 것까지 무죄일 수는 없다”고 밝혔다. 정의연은 이어 “피해자에 대한 역사 부정 세력의 명예훼손과 모욕 행위가 극에 달하고 있는 이때 피해자들이 직접 고소해 재판까지 진행한 책의 저자를 버젓이 수상자로 정했다는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며 수상 소식에 반발했다.

 

박 교수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내가 위안부 할머니들을 명예훼손했다고 목청 높여 외쳤던 사람들은 10년 이상 땅에 떨어진 내 명예를 회복시켜줄 생각이 전혀 없는 듯하다. 이 문제의 배경에는 학문적· 운동적 배경의 차이를 넘어 정치문제가 있다. 그 사실을 알기까지 나조차 7, 8년이 걸렸다”고 밝혔다. 박 교수는 “(논란이 일자) 내가 취소해달라고 했다. 나는 수상 결정만으로 충분히 보상받았다. 그들에 대한 평가는 후대가 해줄 것으로 믿는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