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보기메뉴 보기 검색

총경급 경찰 교육생, 의령 4·26추모공원서 추모

입력 : 2025-12-19 09:32:18
수정 : 2025-12-19 09:32:18
폰트 크게 폰트 작게
“이제는 포용과 화합의 마음으로 받아주길”

“아픈 역사의 현장을 직접 마주하니 그 무게가 피부로 와 닿았습니다.”

 

19일 경남 의령군에 따르면 경찰대학 총경급 교육생 67명이 지난 17일 경남 의령 4·26추모공원을 찾아 헌화와 묵념을 하며 이같이 말했다.

의령 4·26추모공원서 묵념하는 총경급 경찰 교육생들. 의령군 제공

이 공원은 43년 전 의령에서 발생한 ‘우 순경 사건’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해 만들었다.

 

의령 우 순경 사건이란 1982년 4월26일 경남 의령경찰서 궁류지서에 근무하던 우범곤(당시 27세) 순경이 예비군 무기고에서 소총과 실탄, 수류탄을 훔친 뒤 궁류면 일대를 돌아다니며 주민 56명을 살해하고 34명을 다치게 한 사건을 말한다.

 

이는 단시간 최다 살인으로 기네스북에 오를 만큼 대한민국 경찰 창설 이래 최대·최악의 사건으로 기록될 정도이다.

 

이 공원은 지난 5월 ‘경찰 역사 순례길’ 코스에 추가됐다.

 

경찰 역사 순례길은 경찰 현충시설을 비롯해 독립운동과 구국, 민주·인권 등 경찰 역사 속 진지한 성찰이 필요한 장소를 선정해 경찰관들이 현장을 답사·참배하면서 그 의미를 되새기자는 취지로 운영 중이다.

 

올해 들어 경남경찰청 소속 공무원 60명, 신임경찰 160명이 공원을 방문해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며 추모했다.

 

지난해 처음 희생자와 유가족을 기리기 위한 위령제가 군에서 열렸다. 하지만 이때는 경찰이 참석하지 못했다.

 

군과 경찰이 유가족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썼다.

경남 의령군 궁류면 4·26추모공원에서 열린 두 번째 우 순경 사건 희생자 위령제가 열린 가운데 참석자들이 희생자의 넋을 기리는 하얀 비둘기 풍선을 날리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강승우 기자

그 결과 올해 4월 열렸던 두 번째 위령제에 경남경찰청장이 경찰을 대표해 참석했고, 이 자리에서 당시 김성희 경남경찰청장은 사건 발생 43년 만에 지난 과오를 공식 사과했다.

 

김 청장은 “매년 아름다운 4월의 꽃들이 필 때마다 여러분(유가족)의 가슴에는 그날의 아픔이 되살아났을 것”이라며 “오늘 이 자리가 비록 깊은 슬픔과 아픔의 자리지만 동시에 회복과 화합을 다짐하는 뜻깊은 자리가 됐으면 한다”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이 자리는 지난날의 과오를 반성하는 경찰이 굳은 다짐 속에 여러분께 더욱 헌신하고 봉사하겠다는 맹세의 순간이기도 하다”며 “함께 아파하고 함께 치유하는 가족 같은, 이웃 같은 경찰이 되겠다”고 약속했다.

 

유가족들이 경찰의 진정성 있는 사과를 받아주면서 두 번째 열린 위령제에는 더 큰 의미가 부여됐다.

 

경찰대 직무교육과장 이민수 총경은 “오랜 세월을 참아온 유족들을 만나니 더욱 가슴이 아팠다”며 “국민의 생명과 존엄을 지키는 공직자로서 책임을 다시 깊이 다짐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오태완 의령군수는 “경찰의 진정성 있는 마음을 희생자 유가족과 군민께서 포용과 화합의 마음으로 받아주시길 바란다”며 “우리는 아픈 역사를 또 하나 매듭지었다. 그 매듭은 미래를 향해 내딛는 디딤돌이자 통합의 나침반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유영환 유족대표는 “유가족들은 오랜 세월 경찰이라는 말만 들어도 마음이 무너졌다. 42년 만에 열렸던 첫 위령제에 경찰은 오지 말라고 할 정도였다”면서 “이제는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아픈 역사를 딛고, 나라를 위한 나은 경찰로 나아가길 바란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