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도토리 알을 누가 땅에다 묻은 것일까. 다람쥐가 묻었을 수 있겠고, 뭐 자연스럽게 어디에서 흘러내려왔을 수도 있겠고. 이 도토리 알은 또 언제 흙 속으로 내려왔을까. 그 속에서 몇 번이나 겨울을 보냈던 것일까….
마당 잔디밭 풀을 뽑고 있던 그의 눈에 반 뼘쯤 되는 상수리나무의 새순이 들어왔다. 그냥 놔두면 나무가 되기에 잔디를 위해선 솎아내야 했다. 들고 있던 호미 끝으로 조심스럽게 살살 캐보았다. 그런데 여린 뿌리 끝에 도토리 한 알이 따라 올라오는 게 아닌가. 도토리 몸은 이미 반쯤 허물어져 있었고, 허물어진 몸에서 위로는 줄기가 올라왔고 밑으론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기가 막혔다. 도토리 알을 들여다보는 순간, 갑자기 온갖 생각과 상상이 몰려왔다.
이 도토리 알은 어떻게 위로 줄기를 뻗고 아래로는 뿌리를 내린 것일까. 땅 속에서 누가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었을 것이고, 선생님이 계신 것도 아니며, 어른 도토리가 있는 것도 아니었을 텐데. 몸을 덜어 위로 줄기를 뻗어야 해, 몸을 덜어 아래로 뿌리를 내려야 될 때야, 라고 어떻게 알고 결단하고 몸을 덜었던 것일까. 뿌리를 내리거나 줄기를 올리며 무슨 말을 했던 것일까….
시인 도종환은 어느 날 청주 집 마당 잔디밭에서 만난 상수리나무 뿌리 끝에 달린 도토리 알을 보고 한 생각을 만날 수 있었다. 생각하면 할수록 기특하고 신비로웠다. 결국 상수리나무 새순을 도토리와 함께 옆 산비탈에 심어주고, 그는 시 한 편을 얻어 내려왔다.
“씨앗이 결심하면 새싹도 결심한다/ 뿌리가 포기하지 않으면/ 나무도 포기하지 않는다/ 흙 속에서 살아 있으면/ 땅 위에서도 살아 움직이고/ 흙이 말하면/ 바람도 알아듣는다고 말했을까/ 도토리는 몸을 녹여 새순을 만들고/ 살을 덜어 뿌리로 내려 보냈으리라/ 잘게 나누어진 도토리 뼈는 나무둥치가 되고/ 도토리 손은 나뭇가지가 되고/ 도토리 눈은 우듬지로 올라가/ 사방을 두리번거렸으리라/ 그렇게 여러 해가 흐른 뒤에/ 다시 수백 개의 도토리가 되었으리라”(「도토리」 부문)
3선 국회의원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역임한 뒤 본자리인 시인의 자리로 복귀한 도종환이 「도토리」를 비롯해 85편의 시를 묶은 시집 『고요로 가야겠다』(열림원)를 들고 돌아왔다. 전작 시집 『정오에서 가장 먼 시간』을 발표한 지 1년 여 만이다.
이번 시집은 무엇보다도 기존 천편일률적인 4부 구성 대신 ‘이월’, ‘고요’, ‘달팽이’, ‘슬픔을 문지르다’, ‘사랑해요’, ‘당신의 동쪽’, ‘손’, ‘끝’ 8개의 부로 구성하되, 각 부는 문을 여는 시 여덟 편을 1∼5행씩 나눠 여러 쪽에 연이어 수록한 뒤 마지막에 시를 다시 한 번 보여주는 방식을 택한 것이 인상적이다. 즉, 각 부를 마치 전시실 방처럼 배치해 독자가 방과 방 사이를 거닐면서 시의 사유 속으로 천천히 들어오도록 해 고요 속으로 들어가도록 하려는 취지다.
시인은 “시를 천천히 음미하면서 읽으며 사유의 공간으로 몰입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삶에도 여백이 있어야 하지만, 책에도 여백이 있어 사람들이 좀 머물다가 갈 수 있게 하고 침착한 눈으로 책을 보고 세상을 보고 자신을 돌아보게 하자는 취지였다”고 덧붙였다.
시집에는 현실 정치를 완전히 그만두고 지난 1년 반 동안 청주에서 읽고 쓰는 일에만 순종하면서 만난 시편들이 담겼다. 대체로 날선 폭풍의 불이 아닌 고요의 물을 닮아 “밀물과 썰물 사이에, 참혹과 환희 사이에, 분노와 슬픔 사이에 있다”(나희덕 시인)는 평가다. 감상보다 체험, 의미보다 호흡에 가까운 느낌이 드는 이유일 것이다.
그는 “현대인들은 소요(騷擾) 속에서 산다. 하루라도 조용할 날이 없다”며 “소요의 시간을 고요의 시간으로 전환해야 한다. 차분해지고 침착해지는 시간을 갖고, 그 시간 속에서 더 지혜로워지고 슬기로워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인 도종환은 왜 고요로 가야겠다고 노래한 것일까. 그가 보고 느끼고 노래하는 고요는 과연 어떤 풍경일까. 그의 작가적 여로는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 것일까. 도 시인을 지난달 21일 서울 용산 세계일보 사옥에서 만났다.
시집은 추위에도 마음이 편안해지기 시작하는 이월을 노래한 「이월」로 문을 열고, 역시 희망이 엿보이기 시작하는 2월을 노래한 시 「계엄이 있던 겨울」로 닫는다. ‘2월의 마음’이 시집을 앞과 뒤에서 감싸는 모양새다.
“녹았던 물을 다시 살얼음으로 바꾸는 밤바람이/ 위세를 부리며 몰려다니지만/ 이월이라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진다/ 지나온 내 생애도 찬바람 몰아치는 날 많았는데/ 그때마다 볼이 빨갛게 언 나를/ 나는 순간순간 이월로 옮겨다 놓곤 했다/ 이월이 나를 제 옆에 있게 해주면 이안이 되었다/ 오늘 아침에도 이월이 슬그머니 옆에 와 내가/ 바라보는 꽃밭은 푸릇푸릇한 흔적을 함께 보고 있다”(「이월」 부문)
―시집의 시작과 끝에 이월의 마음을 담았는데, 왜 2월이어야 했습니까.
“옛 어른들은 봄이 시작된다는 입춘을 음력 2월에 놓았습니다. 2월은 아직 겨울이 끝났지 않는 시기인데 왜 입춘이라고 했을까요. 더구나 옛날에는 지금보다도 더 추웠을 텐데요. 그것은 아마 아직 겨울이긴 하지만, 대설이나 소설 등 춥고 눈 많이 내리던 때는 이미 지났고 봄은 아직 오지 않았지만, 봄이 시작하는 때라고 본 것이죠. 꽃이 피어야 봄이 오는 게 아니라, 아직 춥긴 하지만, 아주 혹독한 날은 지났고 뭔가 새로움이 올 것 같은 시기, 곧 봄이 온다고 기다리는 이때부터가 봄이라고 본 것이죠. 산수유라든가 목련 등이 조그만 눈이나 몽우리를 틔우려고 준비하는 때가 봄이라는 거예요. 곧 3월이 온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조금 들뜨고 그러잖아요.(어떻게 나온 시편입니까) 1년 동안 계절별로 쓴 시를 배치하면서 시작을 언제로 잡을까 고민하다가 입춘이 있는 2월을 잡은 것입니다. 마침 비상계엄 사태로 눈발 날리는 거리로 나와 ‘인간 키세스’가 되던 무렵이거든요. 제 인생도 이와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찬바람이 몰아치는 날이 많았는데, 다 끝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정말 죽을 뻔했던 시절은 해쳐왔고, 좀 있으면 따뜻한 날이 찾아오고 꽃 피는 날도 오는 게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2월과 제 인생을 같이 섞어 쓴 것입니다.”
현실 정치를 떠난 그가 봄날 고요로 가는 길에서 만난 것은 크고 화려한 존재들이 아니라 오히려 누추한 자리에서 조용히 세상을 밝히는 존재들이었다. 나무와 새, 나무, 꽃 등등. 누추한 곳에서 투덜대거나 짜증내지 않고 주위를 환하게 만드는 들꽃도.
“고운 꽃이/ 누추한 곳에서 올라온다// 척박하다고 투덜대는 꽃은 없다// 버려진 곳을/ 아름다운 곳으로 바꾸며/ 환하게 웃는/ 여리고 가난한 꽃// 그들이 세상의 시간을/ 낡은 것에서/ 빛나는 것으로 바꾼다.”(「들꽃」 전문)
―들꽃은 주위를 아름답게 만드는 놀라운 마력이 있지요.
“도심에서 조금만 벗어나 변두리로 나가 보면 봄에도 여름에도 가을에도 꽃을 만나게 되는데, 들이나 야산이나 산비탈에 피는 꽃들은 잘 가꾸어진 공간이 아닌 누추한 곳에서 올라오는 꽃들이 많습니다. 누추한 곳에서 올라와 누추한 곳을 아름다운 공간으로 바꿔 놓는 게 들꽃이란 말이죠. 내가 왜 여기 있을까. 왜 눈에 띄지도 않는 곳에서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꽃은 하나도 없지요. 눈에 안 띄는 곳이든 비탈진 곳이든, 자기가 있는 곳을 아름다운 곳으로 바꾸는 게 꽃이 하는 일이죠. 투덜대는 꽃은 없습니다. 모두 사람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여름날에는 밭둑길을 걷다가 달팽이를 만나기도 했다. 어딘가 힘겹게 가고 있는 달팽이를 찬찬히 보다가 각자의 짐을 지고 아등바등하는 인간도 엿보기도.
“우리도 달팽이처럼 카르마의 집 한 채 지고/ 아침마다 문을 나선다/ 등짐 때문에 하루가 휘청거리기도 하지만/ 짐에 기대 잠시 쉬기도 하고/ 이 짐 아니었으면 얼마나 허전할까 생각하면서/ 우리도 겨우 여기까지 오지 않았는가.”(「달팽이」 전문)
―시는 인간 세사에 대한 놀라운 알레고리로도 읽힙니다.
“어느 날 밭둑을 기어가는 달팽이를 보고 쓴 시입니다. 우리도 늘 등짐으로 허덕이면서 가고 있잖아요. 엄청 빠르게 가는 것 같지만, 뛰어다니고 부지런하게 하는 것 같지만, 돌아보면 겨우 여기까지밖에 못 왔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지요. 아이고, 이놈의 짐 무거워서 힘들어 죽겠어. 이렇게 말하기도 하지만, 가끔은 짐을 내려놓고 기댈 때도 있지요. 짐이라는 것은 자식이나 일이기도 한데, 모두 인생의 업이죠. 우리는 업을 짊어지고 살지만, 가끔은 그 업에 또 기대어 살기도 하죠. 이 일이 없었으면, 자식이 없었으면 또 얼마나 허전할까, 하는 생각도 하잖아요.”
늦가을에는 몇 개 남지 않는 잎을 힘겹게 붙잡고 있는 느티나무를 보고 마치 마구처럼 뿌려져 오는 운명의 불가해함을 깨닫기도 했을 것이다.
“풀벌레들의 울음을 딱 끊어버리는 비가 있다/ 밤새 비 내리고 기온이 뚝 떨어지면서/ 아직 준비가 되지 않은/ 느티나무 잎과 느티나무가 밤새 씨름을 하고/ 어떤 잎들은 하룻밤 사이에 많이 초췌해져/ 고개를 외로 꺾고 있는 게 보인다/ 결단을 해야 할 날이 언제 올지 모른 채/ 우리는 산다/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요 라는 말을 할 겨를도 없이/ 가을비 몰아치고 거기까지가/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인 경우가 있다/ 끄덕이면서 받아들여야 하는 날이 있다”(「늦가을비」 전문)
―운명이 마구처럼 올지라도 피할 수 없음을, 그럼에도 포기하지 말고 최선을 다하라고 노래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늦가을 가을비가 쓸쓸하게 내리고 기온이 뚝 떨어지면, 오늘 밤에 저 몰아치는 빗줄기와 바람으로 잎이 다 지고 내일부터 겨울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날이 있습니다. 그때 저 아직 준비가 안 됐는데요, 라고 말하는 나뭇잎은 없을까. 하지만 그렇게 말해도 소용없는 거죠. 거기까지가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도 그렇지요. 저 아직 준비가 안 되는데요, 라고 말해도 소용없는 때가 있잖아요.”
겨울 어느 날은 잎을 거의 대부분 잃은 벚나무를 만나기도 했다. 그래서 문뜩 인간의 품격도 생각했을 것이다. 품격이란 잘 나갈 때가 아닌 사라져가고 소멸하는 순간에 비로소 드러난다고.
“꽃으로 화창하던 날 교만하지 않았고/ 찬바람 몰아치는 날 비굴하지 않았다/ 오늘 담담할 수 있어야/ 내일 당당할 수 있다/ 꽃을 박탈당했다고 말하는 꽃나무는 없다/ 꽃잎을 내려놓았다 말하지 않느냐/ 그 차이는 크다/ 빈 몸으로 서서/ 겨울 벚나무를 그렇게 말한다/ 단 한 나무도 아우성치지 않는다/ 견디는 것과/ 초조해 하지 않는 것이 어떻게 다른지/ 나무들은 안다고/ 어떤 나무가 동의하느냐고”(「겨울 벚나무」 전문)
―인간의 품격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것 같군요.
“우리도 다 잃어버리고 아무것도 없어도 어떻게 해, 하고 초조해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바깥에 나무를 봐라, 견뎌야 할 때는 전혀 동요하지 않으면서 다 받아들이지 않느냐. 왜 사람만 초조해하고 조급해하며 비명소리를 내느냐. 밖의 나무들을 봐라, 나무들은 아무도 안 그런다, 그러니 담담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꽃 피는 시절이 오면 당당할 수 있다는 것을 벚나무가 말하는 것 같습니다.”
시집은 그리하여 단순한 관조가 아닌, 질풍노도와 같은 삶을 거쳐 왔던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어떤 고요의 마음을 향기롭게 담는 데 성공하는 듯하다.
“바람이 멈추었다/ 고요로 가야겠다/ 고요는 내가 얼마나 외로운 영혼인지 알게 한다/ 고요는 침착한 두 눈으로/ 흘러가는 시간을 보게 하고/ 육신이야말로 얼마나 가엾은 것인지 알게 한다/…(중략)…다시 별빛을 바라보고/ 자신을 용서하고/ 용서하지 못한 것들은 신께 판단을 넘기고/ 고요의 끝에 왜/ 두 손을 모으게 되는지/ 물어보게 한다/ 바람이 멈추었다/ 고요로 가야겠다”(「고요」 부문)
―그런데 우리 현대인들은 왜 고요로 가야하는 겁니까.
“그러면 머리 깎고 절로 들어가겠다는 것이냐. 뭐 아무것도 안 하겠다는 것이냐. ‘고요로 가야겠다’는 시집 제목을 보고 이런 반론을 툭툭 던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 일상은 소요로 가득 차 있어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습니다. 매일 놀라운 일, 시끄러운 일, 분노하는 일, 욕하게 되는 일로 가득 차 있고 내면 역시 소음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대개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는 프레임 속에서 싸움을 하면서 정작 무엇이 옳은가를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무엇이 옳은 것인가, 무엇이 우리가 가야 할 길인가를 가지고 깊이 있게 숙의하는 시간은 없어지고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는 싸움만 횡행하는 시대가 됐지요. 인정과 존중과 경청은 민주주의 언어인데, 이런 언어는 다 버리고 나는 옳고 너는 틀리다는 단순한 흑백 논리만 남아 있으면 무엇이 옳은지를 논의하는 시간으로 옮겨가지 못합니다. 하지만 침착하게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면, 나도 틀릴 수도 있고 내가 부족할 수도 있고 내가 불완전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인간의 내면에는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햇빛만 가득한 게 아니라 그늘도 있고 감춰두고 싶은 것도 있고 부끄러운 것도 있고 남이 몰랐으면 싶은 것도 있습니다. 고요해지면 침착해지는 시간을 만나고, 침착해지면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무엇이 옳은가를 함께 이야기하는 시간으로 가서 숙의할 수 있어야 문제를 풀 수도 있고 갈등을 해결할 수 있고 합의의 시간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좀 고요해지자, 순간순간 고요로 가자, 하루에도 몇 번씩 고요와 만나 차분해지고 침착해지고 균형을 회복하자, 는 취지입니다. 들끓고 분노하고 욕하고 좌절하고 탄식하고 환멸을 느끼는 아픈 상태에서 회복할 수 있는 것은 고요와 만나는 것입니다. 잠시 명상도 하고, 기도도 하고, 아무것도 안 하고 조용히 음악을 듣거나 한 편의 시를 읽는 시간을 하루에도 몇 번씩 만날 수 있다면 마음의 균형을 좀 되찾을 수 있을 것 아니냐, 하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미대에 진학하겠다고 하면 과연 대학에 보내줄까. 상의할 부모가 옆에 없어, 그는 한동안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있었다. 친구들이 백일장에 나갈 때 미술대회에 나갔고, 도화지가 부족하면 신문지에 그렸으며, 크리스마스카드를 직접 그려 친구들에게 보내던 그였다. 이때 고모가 그에게 말했다.
“객지에 있지 말고 여기 고향으로 내려와라. 등록금이 전액 면제되는 국립 충북대의 사범대학이 있는데, 이곳에 진학하는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젊은 도종환은 가난 때문에 등록금이 면제되는 국립 충북대 사범대학에 진학했다. 사범대학에는 미술교육과가 없었고, 대신 국어교육과에 진학해야 했다. 미대를 가지 못했다는 좌절감 때문에 그는 한동안 방황하고 헤맸다. 대학 1학년 시절 자주 술에 취했다고, 그는 고백했다.
“책가방에 소주병과 잔을 들고 다니며 술을 마시기도 했습니다. 점심 내내 술을 마시기도 했고요. 노래도 잘 하지 못하면서 괜히 노래를 고래고래 부르기도 했죠.”
그런데 문학 서클에 있던 선배들은 그의 이런 모습을 오히려 문학에 끼가 있어 그러는 것으로 오해하고 그를 문학 서클로 이끌었다. 서클 이름은 ‘오리 새끼’. 대학 2학년 시절, 비로소 글 쓰는 길로 접어들었다고 그는 회고했다.
“서클 선배들이 어떻게 보면 저를 시인으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문학에 소질이 있는 것으로 오해해 저를 문학 서클로 끌고 들어가는 바람에, 길을 잘못 들어 결국 여기까지 온 것이죠.(웃음)”
문학 서클에 들어간 뒤, 그는 처음에는 긴가민가하고 관망만 했다. 선배들은 책을 많이 읽고 깊이 있는 독서 토론을 했다. 선배들이 읽고 있는 책을 읽고 싶었다. 장 폴 사르트르, 알베르 카뮈, 키에르케고르, 프리드리히 니체 등 실존주의 철학과 문학 서적을 많이 읽었다. 자연스럽게 문학의 자장 안으로 들어왔다. ‘시인 도종환’의 씨가 뿌려지던 순간이었다.
1955년 청주에서 태어난 도종환은 군에서 제대한 뒤인 1984년 대구와 청주 지역 교직원 및 문인들과 함께 만든 동인지 『분단시대』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동인지에 시 「고두미 마을에서」, 「울타리꽃」, 「진눈깨비」 등을 발표했다.
그는 이후 시집 『고두미 마을에서』, 『접시꽃 당신』, 『당신은 누구십니까』, 『부드러운 직선』, 『슬픔의 뿌리』, 『흔들리며 피는 꽃』, 『해인으로 가는 길』, 『세 시에서 다섯 시 사이』, 『사월 바다』 등을 발표했다. 산문집 『지금은 묻어둔 그리움』 등도 출간했다. 신동엽창작상과 정지용문학상, 윤동주상 문학대상, 백석문학상, 공초문학상, 신석정문학상, 박용철문학상 등 많은 상을 받았다.
특히 슬픈 사랑을 절절하게 노래한 두 번째 시집 『접시꽃 당신』은 밀리언셀러가 되면서, 그는 일약 유명 시인이 됐다. 첫 아이를 낳고 이듬해 암에 걸린 아내를 살리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던 어느 날, 그는 청원군 부용면의 어느 시골길 담벼락에 줄지어 핀 하얀 접시꽃을 보고 창백해져가는 아내를 떠올렸고, 도서실에 올라가 울면서 이 시들을 썼다.
“그러나 당신과 내가 함께 받아들여야 할/ 남은 하루하루의 하늘은/ 끝없이 밀려오는 가득한 먹장구름입니다./ 처음엔 접시꽃 같은 당신을 생각하며/ 무너지는 담벼락을 껴안은 듯/ 주체할 수 없는 신열로 떨려왔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에게 최선의 삶을/ 살아온 날처럼, 부끄럼 없이 살아가야 한다는/ 마지막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함을 압니다.”(「접시꽃 당신」 부문)
―작품 세계를 개괄적으로 설명해주신다면.
“1980년대에는 역사와 현실과 민중들로부터 출발했던 것 같습니다. 시대와의 불화를 통해 현실과 역사, 억압받는 이웃 문제로부터 시작했지요. 『접시꽃 당신』을 쓸 무렵에는 개인의 아픔을 바라봐야 한다는 시 세계로 변화해온 것 같습니다. 이후에는 두 세계를 조화시키려 한 시기 같고요.”
―시 창작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원칙이나 방법론이 있으신지요.
“특별한 원칙과 방법을 세워놓고 글을 쓰지는 않고요. 다만, 내면으로 도피하거나 시간 공간으로 도피하는 문학이 아니라, 지금 여기 우리들의 이야기를 하는 문학과 예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리얼리즘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다만 리얼리즘 문학을 한다고 하더라도 예술성과 작품 그 자체가 아름다워야 합니다. 할 말을 하되 거칠지 않은 시여야 하고, 예술성과 사회성이 균형 잡힌 문장이어야 하지요.”
현실 정치에 몸을 담기도 했다. 젊은 시절 전교조 활동으로 한 동안 해직되기도 했던 그는, 2012년 제19대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에 당선된 이래 3선 국회의원을 거쳤고, 2017년 6월부터 2년 가까이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역임했다.
―시인 출신으로 이례적으로 3선 국회의원과 문화체육부 장관을 역임하셨는데요.
“시를 쓰던 사람이 정치적인 역할을 부여받아서 국민을 위해 일할 수 있었던 게 고맙고, 특히 문화예술인들을 위한 일을 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고 생각합니다.(보람찬 일은 무엇이었는지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실체를 파악해 블랙리스트를 작성 시행한 사람들이 처벌받고 다시는 이유 없이 배제되거나 차별받거나 검열 받지 않도록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만든 것이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이었습니다. 두 번째로 친일 역사 교과서가 채택되지 않도록 하고 역사 교과서를 국정화 하려던 박근혜정부의 시도를 막아낸 것도 보람 있었고요. 세 번째로는 예술인 고용보험 제도를 도입해 예술인들이 공연이나 촬영이 없을 때 실업급여를 받도록 해 기본적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20만 명 이상의 예술인들이 밥을 굶지 않도록 한 제도인데, 굉장히 뿌듯하게 생각합니다.”
―예술인 고용보험제도 도입을 둘러싸고 어려움도 많았을 텐데요.
“직장도 없는 사람들이 어떻게 고용보험에 든다는 말이냐. 이렇게 반대하는 노동부를 설득하는 과정이 어려웠습니다. 예술 노동의 특징은 일이 있다 없다를 반복하는 것입니다. 무대에 섰다 안 섰다 공연을 했다 안 했다를 반복하지만, 음악인들은 음악을 계속하고 연극인들은 연극을 계속합니다. 프랑스에서도 예술인 고용보험 제도를 실시하고 있고요. 프랑스밖에 안 하지 않느냐, 프랑스가 한다고 우리도 해야 하느냐, 고 반박을 하기도 했죠. 프랑스가 하면, 문화국가로 가겠다는 우리 역시 해야 한다고 주장했지요. 굶어죽지 않는 예술 생태계가 되도록 하기 위해 꼭 필요했습니다. 설득하는 과정이 힘들었고 시간도 오래 걸렸습니다.”
―현실 정치에 발 담그면서 본의 아니게 오해나 비판을 받기도 했을 텐데요.
“그것에 대해 따로 할 말이 없습니다. 이제 와서 억울하다고 하는 건 아니라고 봅니다. 설령 있다고 하더라도, 많은 시간과 기회를 부여받은 사람이, 혜택을 많이 누렸던 사람이 억울하다고 하면 어떡하겠습니까. 모두 감당해야죠.(혹시 이제는 말할 수 있다고 할 수 있는 건 있지요?) 그것도 말 안 할래요.”
―만약에 후배 작가가 정치 참여를 고민하고 있다면 뭐라고 조언하실지 궁금합니다.
“제가 한 10여 년 이쪽에서 일을 했는데요, 제가 하겠습니다, 라고 하는 예술인은 없었습니다. 자신의 예술 세계를 버리고 정치를 선택하려는 사람은 없지요. 그래서 국회나 정치권이 제발 예술인들을 위한 행정과 정책을 맡아주세요, 라고 해야 합니다. 만약 가능성 있는 후배가 고민한다면 저는 맡아달라고 말하겠습니다. 누군가는 문화예술계를 위해 일을 해야 하니까요. 다른 분야 사람들은 지금 행사를 못해 다 굶어 죽게 생겼습니다, 하고 쫓아오지만, 화가나 작가 등은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해 주세요, 라는 말을 할 줄 모릅니다. 팬데믹 시기에 제가 예술인들에게 당신들은 왜 가만히 있느냐, 왜 지원해달라고 말을 하지 않느냐고 하니까, 우리가 언제는 안 어려웠나요, 이렇게 말하더군요. 예술인과 작가의 권익과 환경 개선을 위해선 누군가 나서서 일을 해야 합니다.”
그는 아침에 일어나면 먼저 오디오부터 켜고 마음을 치유하는 명상 음악을 듣는다. 매일 한두 시간 정도 오디오를 틀어놓는다. 음악을 들으며 명상을 하기도 하고, 고요 속에서 시의 언어를 만나기도 한다. 화장실을 청소하는 남성의 평범하면서도 충만한 일상을 잔잔하게 그린 영화 「퍼펙트 데이즈」의 주인공처럼.
시인 도종환은 오후에는 책을 읽고, 저녁 무렵엔 강변을 걸으며 고요 속으로 들어간다. 늦은 오후부터 밤까지 조용히 글을 쓴다. 충분히 잠을 잔 뒤, 아침이 오면 일어나 조용한 음악을 들으며 다시 고요 속으로. 그리하여 강가의 흙빛 플라타너스를 만나고 끝에서 다시 시작하는 마음을 조우하기도. 소멸의 끝에서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하면서 아름다움을 만들기 위해 다시 죽을힘을 다하는 그 마음을….
“눈 내리다 멈추었는데 바람은 멈추지 않았다/ 강물에도 메밀꽃이 이는 오후/ 흙빛 플라타너스 잎이 허공으로 솟구쳐 오른다/ 끝난 지 오래되었는데/ 나무는 가지 끝에 버리지 않은 걸 지니고 있었다/ 비어 있는 것을 안쪽을 채우는 광명진언/ 허무를 끌어안고 그 끝에서/ 다시 처절하게 시작하는 게 삶이라고/ 말하는 바람의 독송/ 당신들도 끝나지 않았다고 말하려고/ 부활이라 하지 않았는가/ 흘러오고 흘러가는 짙은 비췻빛 강물 바라보며/ 빈 가지 끝에 매달려 흔들리는/ 강가의 겨울나무/ 마른 나뭇잎 몇 개/ 아름답다/ 공허의 끝/ 그 끝에서 다시 아름다움을 만들어가는 일/ 우리가 매달리는 필생의 일도 그런 것이다”(「끝」전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