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꺼낸 대전·충남 행정통합론에 더불어민주당이 빠르게 후속 조치를 보이며 보조를 맞추고 있다. 대전·충남 통합은 국민의힘이 먼저 꺼내든 의제로 그동안 민주당은 상대적으로 소극적인 입장이었는데 이 대통령이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본격 시동을 걸자 민주당도 속도 내기에 돌입했다. 국민의힘은 이 사안이 ‘민주당 이슈’가 되면 주도권을 빼앗기고 선거에도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몰라 속내가 복잡해졌다.
◆민주당, 곧바로 ‘충청특위’ 구성
민주당 황명선 최고위원은 19일 국회 최고위원회의에서 “민주당은 이재명정부와 함께 대전·충남 통합으로 대한민국 균형성장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겠다”며 “비공개 최고위에서 대전·충남 통합 및 충청지역 발전 특별위원회(충청특위)를 구성했다”고 밝혔다. 황 최고위원이 상임위원장으로 임명됐고 박범계·박정현·이정문 의원이 공동위원장을 맡았다. 이들 모두 대전·충남에 지역구를 둔 의원들이다.
황 최고위원은 “충남·대전 특별시 청사진을 마련하고 법안까지 조속히 마련될 수 있도록 하겠다”며 “나아가 충북까지 포괄하는 중부권 초광역 협력으로 대한민국 성장지도를 근본적으로 바꾸겠다”고 말했다.
박수현 수석대변인도 이날 서면브리핑을 통해 “대전·충남 행정통합은 단순한 ‘행정구역 조정’이 아니라 대한민국이 수도권 일극 체제를 넘어 균형성장 국가로 전환하는 새 설계”라며 “민주당은 충청특위를 중심으로 특별법 추진 등 제도적 불확실성을 걷어내고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겠다”고 밝혔다.
박 수석대변인은 이날 최고위원회의 후 “충청특위는 이 대통령 국정 철학이 실천되는 것을 당에서 뒷받침하겠다는 의지 출발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오늘 충청특위가 꾸려져 내년 6월 지선에 통합단체장을 뽑는 것까지 목표에 포함된다”며 “특별법은 내년 2월까지는 통과시켜야 하지 않겠느냐는 얘기가 나온 수준”이라고 전했다.
충청특위는 통합시 명칭과 청사 활용 방안 등을 논의하고 내년 1월 중 대전·충남 통합 관련 특별법안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민주당 대전·충남 민주당 의원들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었다. 박정현 의원은 회견 뒤 “숙의 과정을 거치면 (법안이) 내년 1월 말 정도에는 1차가 끝날 것 같다”며 “2월 중에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로 회부돼 공청회를 하면 빠르면 3월 초, 늦어지면 3월 중순 정도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 수 있어 지방선거 일정과는 부딪힘 없이 추진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환영하기도 거부하기도 애매해진 국민의힘
드라이브를 밟는 민주당과 대비되게 국민의힘은 입장을 정리하기가 복잡해졌다. 대전·충남 행정통합 자체는 국민의힘이 주도했던 이슈이나 민주당이 가속 페달을 밟으면서 주도권을 빼앗길 위기에 처했다. 정치적으로도 이재명정부 들어 치르는 첫 전국 단위 선거를 앞두고 중원 판도를 이 대통령이 짜면 국민의힘이 선거에 어떤 영향을 받을지 가늠하기 어렵다. 애초에 행정통합 이슈는 국민의힘 소속 이장우 대전시장과 김태흠 충남도지사, 국민의힘 성일종 의원 등이 키웠다. 대전·충남 지역 국민의힘 소속 광역단체장은 지난해 11월 ‘통합지방자치단체 공동 선언문’을 발표한 바 있으며 성 의원은 지난 10월 ‘대전충남특별시 설치 및 경제과학수도 조성을 위한 특별법안’을 발의했다.
국민의힘은 일단 환영한다는 뜻을 밝혔다. 김도읍 정책위의장은 이날 국회 원내대책회의에서 “충청권 경쟁력 강화와 수도권 집중 완화라는 문제 해결을 위해 국민의힘이 줄곧 주장해온 대전·충남 통합에 이 대통령이 화답한 점을 환양한다”고 말했다. 성 의원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기쁜 소식”이라고 적었다.
하지만 국민의힘도 내년 지선을 앞두고 특별법 통과를 지원하겠다는 입장은 아직 아니다. 송언석 원내대표는 “당 차원에서 대전·충남 통합을 촉진하기 위한 태스크포스(TF) 설치 작업을 진행 중”이라며 “뒤늦게 정치공학적 측면에서 대전·충남 통합 의제를 가져가려는 대통령실 의도는 오히려 충청인들의 자존심을 훼손하는 결과가 될 것”이라고 견제구를 날렸다.
당내에서는 이 대통령이 갑작스럽게 대전·충남 통합론을 꺼낸 자체가 지방선거용 아니냐는 의구심이 있다. 김 정책위의장은 “언론에서는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 지선 출마를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며 “대통령이 지선에 노골적으로 개입하고 있다는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강 실장은 충남 아산에서 3선을 했다. 대전·충남 통합 이슈 자체는 국민의힘이 계속 이끌어가되 정부가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시도를 하면 이는 견제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민주당은 정치적 셈은 그만하라고 국민의힘을 비판했다. 박경미 민주당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국민의힘은 국가 미래가 걸린 중대한 과제 앞에서 ‘선거용’ ‘인물 차출설’ 같은 낡은 정쟁의 언어를 꺼내며 본질을 흐리고 있다”며 “대통령이 숙원을 국정 의제로 격상시키고 국회에 계류된 법안을 조속한 처리를 당부한 것이 어떻게 선거 개입이 될 수 있느냐”고 반박했다.
◆세종, 광주·전남 통합은 선 그어
대전·충남 행정통합론이 구체적인 움직임으로 이어지면서 다른 지역까지 행정구역상 변화가 있을지 관심이 높아졌다. 우선 가까운 세종과 충북이 있다. 그러나 민주당 박 수석대변인은 “타지역 얘기는 거의 나오지 않았다고 보면 된다”고 일축했다. 전날 이 재통령과 대전·충남 지역 민주당 의원들 오찬 간담회에서 얘기가 없었단 것이다. 그러면서 “세종시는 충남, 대전이라는 광역자치단체와는 지위가 다른 측면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세종시는 세종특별자치시 설치 등에 관한 특별법(세종시법)을 따른다.
전날 광주·전남 통합설도 제기됐으나 박 수석대변인 발언으로 보면 현재로서는 당내 별다른 움직임은 없다. 박 수석대변인은 “대전·충남은 대전, 충남, 충북, 세종이 충청광역연합이라는 특별광역자치단체를 구성한 사례가 있고 더 나아간 논의가 있어서 물꼬 트기에 적합했다”며 특수성을 언급하면서도 “타지역이 대전·충남을 모델로 해서 논의가 진행되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