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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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연기 인생”… 대학로서 마지막 인사 [고인을 기리며]

입력 : 2025-12-21 21:00:00
수정 : 2025-12-21 22:5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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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계 거목’ 윤석화 영면

추위 속 한예극장 마당서 노제
고인의 애창곡 ‘꽃밭에서’ 제창
“위대한 예술가 떠나보내” 눈물
“선생님은 ‘연극이란 대답할 수 없는 대답을 던지는 예술’이라 말하며 관객에게 질문을 건넸고, 그 질문이 삶 속에서 계속 이어지기를 바랐습니다. 오늘 우리는 무대에 대한 열정으로 그 누구보다 뜨거운 연기 인생을 사셨던 한 명의 배우이자 한 시대의 공연계를 이끈 위대한 예술가를 떠나보냅니다.”
길해연 한국연극인복지재단 이사장이 21일 서울 종로구 한예극장 앞에서 열린 배우 고 윤석화의 노제에서 추도사를 하고 있다.
뉴시스

2022년 10월 뇌종양 수술을 받고 투병하다 지난 19일 별세한 배우 윤석화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는 노제가 21일 오전 10시쯤 서울 대학로 한예극장(옛 정미소 극장) 마당에서 엄수됐다. 고인이 2017∼2020년 이사장으로 재직했던 한국연극인복지재단 길해연 이사장이 떨리는 목소리로 추도사를 낭독하자 노제에 참석한 유족과 동료 예술인들이 고개를 숙이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영하의 추운 날씨에도 배우 박정자와 손숙, 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연출가 손진책 등 동료 예술인 100여명이 참석해 고인을 배웅했다. 최정원과 배해선, 박건형 등 고인이 2003년 제작한 뮤지컬 ‘토요일 밤의 열기’에 출연한 후배 배우들이 고인의 애창곡이던 정훈희의 ‘꽃밭에서’를 부르며 추모했다.

 

1956년 서울에서 태어난 윤석화는 1975년 연극 ‘꿀맛’으로 데뷔한 뒤 ‘신의 아그네스’, ‘햄릿’, ‘딸에게 보내는 편지’ 등에 출연하며 연극계 스타로 발돋움했다. 선배 손숙, 박정자와 함께 연극계를 대표하는 여성 배우로 자리 잡았다. 커피 광고에 출연해 ‘저도 알고 보면 부드러운 여자예요’라는 대사를 유행시키기도 했다. 연극 외에 뮤지컬 ‘아가씨와 건달들’(1994), ‘명성황후’(1995)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활발한 작품활동을 펼쳤다. 1999년에는 경영난을 겪던 공연예술계 월간지 객석을 인수해 발행인으로 활동했다. 2002년에는 서울 대학로에 실험적 연극의 산실인 정미소 극장을 설립했다. 2019년 만성적인 경영난으로 문을 닫기까지 ‘19 그리고 80’, ‘위트’ 등을 공연하며 신선한 작품들을 선보였다. ‘토요일 밤의 열기’를 비롯해 여러 뮤지컬을 직접 연출·제작하기도 했다. 투병 사실을 공개한 뒤에도 무대를 그리워했던 윤석화는 2023년 LG아트센터 서울에서 열린 손숙 주연의 연극 ‘토카타’에 5분가량 우정 출연한 것이 마지막 무대가 됐다. 아들과 딸을 입양한 고인은 입양기금 마련을 위한 자선 콘서트를 꾸준히 개최하는 등 입양문화 개선에도 앞장섰다. 백상예술대상 여자연기상을 네 차례 받았고, 동아연극상, 서울연극제 여자연기상, 이해랑 연극상 등도 수상했다. 정부는 연극계 발전에 기여한 고인의 공로를 인정해 문화훈장 추서를 추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