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가 무알코올 와인을 ‘와인’으로 인정했다. 유럽연합(EU)이 2021년부터 알코올 제거 공정을 거친 와인(dealcoholised)을 공식 카테고리로 인정했지만, 전통을 중시하는 이탈리아는 그동안 그러한 와인의 라벨에 ‘와인’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안 취하는 와인’에 문 연 이탈리아
이탈리아 정부는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무알코올 와인에 대한 과세 기준 등이 담긴 법령을 확정했다. 2024년 12월 알코올을 제거한 제품도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와인으로 인정하는 시행령이 통과된 지 1년 만이다.
이에 따라 이탈리아에서는 알코올 도수가 0.5% 이하인 경우 탈알코올, 0.5% 초과이면서 기존 와인 최소 도수(보통 8.5~9%)보다 낮으면 ‘부분 탈알코올’로 분류해 라벨에도 그 명칭을 표기할 수 있다.
이탈리아 와인 업계는 이번 조처를 사실상 법의 빈틈에 있던 이탈리아산 무알코올 와인 생산을 본격적으로 열어 준 결정으로 평가하며 환영했다.
이탈리아 정부가 한발 물러난 배경에는 건강·웰빙 트렌드와 젊은 세대의 절주 문화 확산, 그리고 글로벌 무알코올 시장 성장이라는 현실적인 압박이 깔려 있다.
EU는 2021년부터 알코올 도수 0.5% 이하 제품에는 ‘탈알코올 와인’, 그 이상이지만 기존 기준치보다 낮은 제품에는 ‘부분 탈알코올 와인’이라는 표현을 공식적으로 허용했다. 이 규정은 어떤 탈알코올 공정이 허용되는지, 어떤 표시를 해야 하는지까지 세부적으로 정해 회원국 공통의 기준을 마련했다. 와인 강국 프랑스와 스페인은 EU 규정에 맞춰 자국 생산자들의 무·저알코올 라인업을 확대했다. 특히 대형 그룹과 협동조합 중심으로 제품 개발이 확대되고 있다.
유럽 외 와인 강국들도 무알코올 트렌드에 적극 대응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프리미엄 무알코올 와인 전문 브랜드와 스타트업이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호주는 이미 몇 년 전부터 무알코올 와인을 적극적인 수출 상품으로 키우며 ‘웰빙’ 마케팅으로 유럽·아시아 시장을 공략 중이다.
칠레는 아직 무알코올 와인 도입 초기 단계지만, 일부 선도 와이너리가 수출용 무알코올 라인을 시험하며 새로운 시장 구축을 노리고 있다.
◆알코올 제거 기술 발달…성장 속도 가속화
무알코올 와인은 일반 와인과 똑같이 포도를 발효시켜 만든 완성된 와인에서 알코올을 제거하는 과정을 추가로 거쳐 생산된다. 주로 사용되는 기술은 저온 진공 증류, 역삼투압, 스피닝 콘 컬럼(회전식 원추탑) 등을 이용하는 것이다.
문제는 알코올이 와인의 향 성분을 용해하고 입 안에서의 질감과 바디감을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알코올을 제거하면 향의 복합성과 질감이 약해지고 단맛·산미 균형이 무너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초기 무알코올 와인은 ‘물 탄 포도주’라는 혹평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알코올 제거 기술이 발달하면서 기류가 달라졌다. 최근에는 저온에서 섬세하게 알코올을 분리하는 스피닝 콘 컬럼 기술과 고도화된 역삼투압 공정, 탈알코올 후 향 성분 일부를 재첨가하는 공법 등이 도입되며 무알코올 와인의 품질이 크게 개선됐다.
업체들은 탄산을 더해 상큼한 식감으로 부족한 바디감을 보완하거나, 산도와 당도를 조절해 알코올의 빈자리를 채우는 등 세밀한 레시피들을 개발하고 있다. 그 결과 “일반 와인보다는 부족하지만 와인다워졌다”는 평가가 늘어나며, 전통 와인 애호가가 아닌 일반 소비자층까지 무알코올 와인에 눈을 돌리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시작된 웰빙·건강 트렌드를 타고 무알코올 와인 시장은 전 세계적으로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 기관 메티큘러스 리서치는 전 세계 무알코올 와인 시장 규모가 2025년 약 13억 달러(1조8800억원) 수준에서 2032년에는 약 26억 달러까지 두 배가량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무알코올 와인이 장기적으로는 전통 와인 시장의 변두리 상품이 아니라, 핵심 카테고리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