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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누군가 나를 살아주고 있어』 백무산 “너도, 구름 속 저 달도 나를 살아줘 한결 괜찮아진 나” [김용출의 문학삼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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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계엄을 선포한 대통령에 대한 탄핵 요구가 전국에서 요원의 들불처럼 일어나던 어느 날, 그는 “봉인된 기억 속”에 있던 오래된 한 친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20대에 함께 공장에서 일했던 친구에게서 온, 아주 오래간만의 전화였다.

 

친구는 통화에서 그가 까맣게 잊고 있었던 자신의 과거에 대한 기억을 새롭게 상기시켜 주었다. 친구가 들려준 자신의 20대 이야기를 듣고 나니, 자신이 알고 있던 자신의 과거가 조금씩 바뀌어가는 게 느껴졌다. 어둡고 “질척한 수렁” 같았던 과거에서 “태양 가득했던 짧았던 젊은 날의 파도 소리”로.

 

통화를 마친 뒤에도 친구의 이야기와 이로 인해 자신의 과거 모습이 바뀌어가는 묘한 경험은 “들뜬 심장의 여운”으로 길게 남았다. 친구로 인해 나의 새로운 과거를 얻었구나. 그래서 시인 백무산은 친구에게 고마움을 담은 문자를 보냈다. “네가 살아온 시간 동안 나도 그렇게/ 살아남았던 것이 고마워/ 잘 살아주어서 네가 나인 양 자랑스러워”….

 

친구가 자신의 과거를 새롭게 만들어 주었다는 생각은 이전에 갖고 있던 여러 생각과 더해지면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퍼져 나갔다. 과거조차도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생각. 생각을 조금 더 연장하면, 우리의 모든 기억이라거나 시간이라는 것도 다르게 인식할 수 있는 것 아닐까. 시간 또는 과거, 타자가 우리들 삶에 어떻게 개입되고 있는가…. 그리하여 한 편의 시가 백무산의 가슴 속으로 몰려오기 시작했다.

 

“문자를 보내면서 고마운 건/ 너보다도 너로 인해 한결 괜찮아진 나였던 건/ 마치 네가 나를 대신 살아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너로 인해 희미하게 알게 되네/ 내가 모르는 사람들도 나를 조금씩 살아주기도 한다는 걸// 서툴고 어리석고 나를 모르는 나니까/ 어디선가 조금씩 나를 불러주고 대신 살아주어/ 간신히 내가 나로 살아 있는지도 몰라// 그뿐 아니지, 지나쳐 보던 산들과 저물녘 강과/ 새벽안개와 겨울 바다도/ 구름 속 저 달도 나를 살아주지/ 내게 없는 내 기억을 가져다주기도 하지// 때로는 비열한 자들이 나를 살아주기도 하지/ 세상을 그들이 제멋대로 끌고 가버리니까/ 조소와 냉소와 악담으로 나를 살아버리기도 하지/ 우리를 대신해서 악의적으로 살아주기도 하지”(「누군가 나를 살아주고 있어」 부문)

 

한국 노동시의 거목 백무산 시인이 시간과 기억을 비롯한 모든 것이 서로 얽혀 있음을 갈파한 시편 「누군가 나를 살아주고 있어」를 표제시로 최근 5년간 창작한 시 56편을 엮은 신작 시집을 발표했다. 전작 『이렇게 한심한 시절의 아침에』(2020) 이후 5년 만의 신작 시집으로, 그의 열한 번째 시집이다.

 

백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직설적 화법과 반어와 역설의 수사를 통해 공동체적 사유를 바탕으로 존재의 근원을 탐구하고 자본주의 문명의 실상을 통렬히 비판한다. 탐욕스런 자본주의 사회의 폐쇄회로를 꿰뚫는 통찰력, 부조리한 현실을 비판하는 치열한 시 정신, 존재의 근원을 파고드는 철학적 사유의 깊이가 돌올하다.

 

젊은 시절 ‘노동해방’의 기치를 전면에 내걸고 기성 문단을 뒤흔들었던 백 시인이 바라본 자본주의와 인간 소외의 실상은 어떤 모습일까. 폭주하는 문명을 되돌려 세울 그의 대안은 무엇일까. 작가적 여정은 또 어디로 가는 것일까. 백 시인을 지난해 12월24일 이메일과 전화 통화로 만났다.

 

―표제시 「누군가 나를 살아주고 있어」는 존재의 연결성이나 인연성을 갈파한 절창입니다.

 

“우주의 모든 것은 연결돼 있다거나 자연과 한 몸이라는 말을 우리는 자주 듣습니다. 그러면서도 삶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지요. 당위적 인식으론 행동도 바뀌지 않습니다. 존재에 대한 성찰이 보다 근원적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의식의 저변에서 우리는 비인간적 존재와도 기억을 공유하고 있지요. 기억은 반드시 언어적이거나 감각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인간 의식의 표면에는 없는, 까마득히 잃어 버렸던 몸의 기억을 상기하는 것은 매우 현실적인 생명 활동이 될 수도 있지요. 뇌의 기억이 아니라 몸의 기억입니다. 저는 첫 시집부터 몸의 기억에 대해 말해왔지요. 우리의 의식은 현재적 삶의 조건과 요구에 종속된 효율성에 최적화되어 있는 좁은 통로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생각이 바뀌면 과거도 새로 태어나기도 합니다. 과거도 이미 지나가버린 것이 아니기 때문이죠. 시간이 과거 현재 미래로 흐른다는 의식도 기계의 시간에 충실해온 습관 때문일 수 있습니다. 세계는 우리의 인식과 다르게 존재하고 있는 것이죠. 비인간적 세계와 대화하기 위해선 인간의 시간을 멈추어보아야 한다는 의미도 담고 있고요.”

 

시집에는 자본주의와 인간 문명을 비판하는 날 선 감각이 선연한다. 속도가 생존의 조건이 된 자본주의를 “멈추지 않아 아무나 탈 수 없”고 “내리고 싶어도 내릴 수도 없는 기차”에 비유하기도 한다.

 

“달리는 기차를 본다 멈추지 않는 기차를/ 멈추지 않아 아무나 탈 수 없는 기차/ 그만 내리고 싶어도 내릴 수 없는 기차// 기차의 속도로 달려야만 탈 수 있다/ 내리고 싶을 때 내리는 자는 치명상을 입는다// 세워주지 않는 저 기차에 우리 모두 이미 타고 있다/ 탈 수 없는 기차를 이미 타고 있는 것은 악몽이다//…기차를 세울 수 없는 것은/ 기차의 목적지는 기차 안에 있기 때문이다// 목적지가 있는 사람은 기차를 탈 권리가 없다/ 기차의 목적지는 달리는 속도에 있다”(「기차에 대하여」 부문)

 

―자본주의의 속도성과 물신성을 고발한 「기차에 대하여」는 어떻게 태어났는지요.

 

“우리는 현대사회를 무한 경쟁사회라고 말하지만 이 말이 의미하는 바를 그리 심각하게 받아드리지 않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쟁은 불가피한 것인데 어쩌겠느냐는 식으로 대응하죠. 또 능력만큼 보상받는 것은 당연하고 공정한 것이 아니냐는 반문도 흔한 일이고요. 다른 출구가 없다면 대부분 운명처럼 현실을 받아드리고 맙니다. 자본주의적 가치화가 전일적인 사회에서 다른 출구는 보기 어렵기 때문이죠. 우리는 매일 여러 증상에 시달리지만, 깊은 병이 있는 줄 모르고 살기도 합니다. OECD 국가 가운데 매년 최고의 자살율을 기록한다든가 고립형 은둔 청년들이 계속 늘어나고, 출산율 세계 최저를 기록하며, 40대 사망자 1위는 암이 아니라 자살이라는 통계도 있고, 하루에 7명의 노동자가 아침에 출근해 집으로 돌아오지 못합니다. 열거하자면 끝도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들은 겉으로 드러난 가시적인 증상에 지나지 않는지도 모르죠. 공정하다는 착각을 불러오는 능력주의는 외부에서 강제하는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를 강제하고 착취하게 만듭니다. 인간 자체를 소진하여 자본증식에 기여하죠. 경제적 불평등뿐 아니라 능력주의는 인간 자체에 대한 선천적 우열성을 당연시하면서 인간적 존중과 존엄을 훼손합니다. 능력주의는 승자조차 성취감과 안락을 누리지도 못하죠. 스스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게 되고 멈출 수도 없게 됩니다. 자기 자신조차 통제할 수 없게 되는 거죠. 멈추지 않으면 우리가 사는 세상의 실체를 실감하기 어렵습니다. 속도 위에서는 모든 풍경이 가상의 공간이 돼버립니다.”

 

시편 「문턱」이나 「악의 우월성」 등을 통해선 부조리한 인간 문명에 편승하는 개인의 문제를 날카롭게 꼬집기도 한다.

 

“마당에 놓아기르는 개에게 문턱을 넘지/ 말라고 가르치는 건 생각보다 쉬운 일이지/ 개는 인간과 살면서 넘어서는 안 될 문턱을/ 넘지 않으려는 자제력이 있어//…넘지 말아야 할 문턱을 넘어서는 안 된다는 걸/ 사람에게 가르치는 일 또한 어렵지 않은 일이지/ 오래전에 야생의 본능이 많이 사라졌기 때문// 바로 그 때문에 문턱을 넘도록 만드는 일 역시 식은 죽 먹기지/ 야성 때문에 종종 치명적인 문턱을 넘어버린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 반대이지//…손도 대지 않고 증오의 문턱을 넘어버리게 만드는 일도/ 어렵지 않지 광란의 전쟁터로 몰아넣는 일도// 그저 몇 마디 혐오를 가르치는 것만으로도/ 학살의 문턱을 넘어버리기도 하지/ 종의 문턱을 넘어버리기도 하지”(「문턱」 부문)

 

―「문턱」이나 「악의 우월성」 등에선 인간이 쉽게 거악이 돼버리는 부조리가 보입니다.

 

“한나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에 대해 말했습니다. 홀로코스트라는 극단적인 악행을 저지른 자들은 잔혹한 괴물이 아니라 지극히 평범한 자들이며 명령의 복종에 충실한 관료적 태도에 의해 자행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죠. 하지만 우리 현대사에서 자행된 양민학살 기록을 보면서 인간의 다른 면이 보이는 것 같아 생각을 다르게 정리해 보고 싶었습니다. 간혹 잔혹한 사건을 보면서 일시에 다른 인간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자주 놀라워합니다. 평소에도 우리는 사소한 잘못에서도 상대를 ‘죽여 버리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고 있으며, 살의를 느낄 만한 행동을 자주 목격하고요. 이쪽과 저쪽의 경계가 매우 허술하다는 사실에서도 놀랍니다. 흔히 잔인한 행위는 문명에 길들이지 못한 악의 본성 때문이라고 합니다. 자신의 악행에 가책을 느끼지 못하는 무지한 집단이나 문명화되지 못한 미개인을 떠올리죠. 법도 없고 이성도 발달하지 못한 미개인을 먼저 떠올리고요. 그래서 국가폭력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침략도 합리화합니다. 하지만 문명화된 근현대에 와서도 달라진 것이 별로 없는 것을 보면서 그 반대일 수도 있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문명화되기 이전 사회가 오히려 생명에 대한 존중 의식이 강했을 수 있다는 생각이죠. 이념의 차이나 종교적 신념의 차이, 그리고 정의나 도덕적 관념의 문화적 차이를 절대적 가치로 몰아가는 사회는 오히려 이성과 문명이 지배하는 사회였습니다. 그것은 문화적 이념적 가치의 우월성이 생명 가치를 경시할 만큼 절대적 가치로 인식하기 때문이죠. 문명적 오만함으로 확증하는 신념은 대상의 존재 자체를 말살해야할 만큼의 절대적 우월 의식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확정적 진리는 사소한 분쟁 상황조차 말살의 의지로 극단화될 수 있기 때문이죠. 사실 이러한 생각은 거창한 생각이 아니라 민주화 된 이후에도 극단적으로 치닫는 현실정치를 보면서 드는 생각이었습니다. ‘문턱’을 쉽게 넘어 극단적 상황을 만들어버리는 것은 오히려 문명사회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야성적 감각을 버릴수록 ‘이성적 야만’이 드러나는 역설이 발생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시인은 그래서 ‘멈춤의 미학’을 역설한다. 멈춰야 비로소 반성 없는 자본주의의 모순이나 문명의 세월을 돌아보고, 자연과 인간성을 되돌릴 수 있다고.

 

“무엇을 해서가 아니라 무엇을 하지 않아서지/ 하늘이 푸르른 것도 별이 빛나는 것도// 꽃이 눈부시게 아름다운 것도 무엇을 하지 않아서지/ 초록의 나무가 저리 빛나는 것도//…사람이 무엇을 할수록/ 왜 무엇을 할 수 없는 땅이 되어가는지/ 우리가 저 말 없는 바깥 것들과 싸우면 싸울수록/ 왜 우리들과 싸우는 일이 되는지// 하지 말아야 찾아오는 새가 있어/ 멈추어야 자신을 보여주는 꽃이 있어”(「멈추어서 할 일들」 부문)

 

팬데믹 시기를 거치며 드러낸 인간의 어리석음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현재의 상황을 계속 끌고 갈 수 없다는 의식들이 팽배했음에도, 그것을 못 견뎌 아무런 미래상을 만들지 못하고 잊고 다시 과거로 회귀하고 마는 인간들의 어리석음이란.

 

“그러나 사람들의 염원은 단 하나, 더 견딜 수 없다고/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이전의 일상으로만 돌아가게 해달라고/ 기도는 오직 하나 무엇을 감수하더라도// 그 이전이란 재앙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던 무렵/ 그 이전이란 종말의 검은 바람이 불기 시작하던 때/ 그 이전이란 바로 지옥문이 열리기 하루 전의 시간”(「잔치는 다시 시작됐다」 부문)

 

―전작 발표 이후 5년만인데요, 특히 팬데믹을 비롯해 많은 변화를 겪기도 했지요.

 

“앞 세대가 3년 간 전쟁을 겪었듯이 우리 세대는 3년 동안 팬데믹을 겪었습니다. 그 양상이야 크게 다르지만, 우리 시대의 성격을 결정짓는 사건인 것은 분명해 보였습니다. 기후위기와 함께 세기적 대전환의 계기가 되었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불과 수년 만에 잊히고 있다는 것도 참 아이러니한 일이죠. 코로나19가 극성이던 때에 말 깨나 하는 사람들은 모두 언론이나 미디어에 나와 외쳤습니다. 우리는 코로나 이전 세계를 돌아갈 수 없을 거라고, 역사는 이제 코로나 이전과 이후의 세계로 나누어질 거라고, 코로나 이후는 중세시대가 될 거라고, 미국 패권주의가 무너지고 자본주의가 붕괴할 거라고, 삶의 새로운 기준이 필요하다고, 더 이상 이전 방식의 삶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돌아가서도 안 될 거라고…. 하지만 우리는 깔끔하게 이전의 삶의 방식으로 돌아갔습니다. 저는 팬데믹이 아니라 이 사실이 더 충격적이었죠. 지옥문이 열리기 하루 전의 세계로 돌아가서 내일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관심을 가지지 않는 일이 그렇습니다. 이 일을 겪으면서 인간은 그 무엇을 희생하는 일이 있어도 절대 양보할 수 없는 일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간의 역사는 자신의 욕망을 가장 잘 실현할 수 있는 방향을 말하는구나, 지금 현재가 그 정점이라고 믿고 있다는 것이죠. 지구를 살리기 위해서 인간에게 욕망을 줄일 것을 요구하는 구호가 얼마나 헛된 일인가 새삼 느꼈지요. 기후위기 시대에 윤리적 실천의 한계는 분명한 것이었습니다.”

 

―‘한국 노동시의 거목’으로 평가되기도 하는데요, 이번 시집에선 노동과 생명의 사유는 어떤 방향으로 얼마나 변화하고 깊어졌는지요.

 

“더 이상 노동은 사회의 다른 영역과 분리되지 않습니다. 과거 노동은 노동자의 문제였습니다. 그 이전에는 제조업 노동자의 문제였지요. 하지만 자본의 가치와 질서가 압도적으로 지배하는 사회는 노동 아닌 것이 없게 됩니다. 우리 사회는 매우 다양한 영역으로 분화되고 자본주의 사회의 기본모순인 노동과 자본 간의 모순은 여러 영역으로 분산되었어요. 경제적 모순관계에서 문화적이고 정체성의 문제로 옮겨가기도 했습니다. 그렇다고 노동 문제가 부차적 문제라는 뜻은 아닙니다. 사회의 모든 영역이 노동문제와 관계성 속에 있고 따라서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모든 문제가 노동문제 아닌 것이 없지요. 우리 사회를 더 나은 사회로 만들어가는 모든 문제가 결국 노동운동이라 할 수 있습니다. 노동을 다른 영역과 분리시키면 노동은 자본 영역에 포함될 뿐입니다.”

 

쟁기질을 해놓은 검은 흙덩이. 그 흙덩이가 뭉쳐지면서 검은 소가 되어 꿈틀꿈틀 일어나는 게 아닌가. 기괴하고 기괴했다.

 

어느 늦은 밤, 작업복을 입은 청년 백무산은 일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가다가 창밖을 바라보았다. 이때 흙덩이가 뭉쳐져 소가 돼 일어나는 이상한 체험을 했다. 너무 열악하고 피폐한 상황에서 생겨나는 환상일 터였다. 그는 이때 이유도 모른 채, 시를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10대 시절에도 문학책이 늘 가까이 있었지만, 작가가 될 꿈을 꾼 적은 없었다. 문예반 경험도 없고, 영향을 받은 선생도 없었다. 20대에도 정신적 방황은 문학으로 그를 이끌었지만, 문학을 나눌 벗은 없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절박한 갈증으로 문학을 읽고 위안을 받았지만, 그래도 다른 삶을 꿈꿀 수는 없었다.

 

청년 백무산은 열아홉 살이던 1974년 막 준공을 마친 현대중공업에 입사해 조선 노동자로 일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첫 고속도로인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마치고 그 팀들이 와서 공장을 짓고 배를 만들기 시작했다. 토목공사 경험으로 첨단산업을 시작한 셈.

 

“정말 무모하기 짝이 없는 짓이었습니다. 국내 총생산(GDP)이 겨우 300불이 좀 넘는 시절이었습니다. 세계 100위권에 드는 최빈국이었지요. 자전거 하나도 완성품을 만들지 못하던 시절이었으니까요. 무모한 시도에 시행착오를 겪는 동안 수많은 노동자들이 죽거나 불구가 되었습니다. 독재 정권은 모든 문제를 다 은폐했습니다. 울산이 국가공단으로 지정된 1962년 이후 최소 19만 명이 다치고 3000면 이상이 죽었습니다. 공개된 통계만 그렇습니다. 숨은 희생자들이 훨씬 많을 것입니다. 그 시절을 자본가들은 신화적 자랑거리로 삼지만, 노동자들에게는 전쟁터와 다름이 없었습니다. 그의 가장 친한 친구도 공장에서 목숨을 잃었지만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했습니다.”

 

시를 쓰기로 결심한 백무산은 누구의 지도를 받은 적도 없이 시를 쓰게 됐다. 그가 처음 만난 시인은 민중가요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의 원작시를 쓴 박영근. 1980~90년대를 대표한 노동자 시인이었다. 박 시인은 그가 쓴 시를 가져가더니 문예지에 발표했다고 책을 보내왔다. 우연한 등단이었다.

 

“누구의 지도를 받은 적도 없이 시를 쓰게 됐고, 지금까지도 선배도 스승도 없습니다. 뚜렷이 어떤 시인의 영향을 받지도 않았습니다. 그 무렵 광주항쟁 정신을 담은 민중시 계열의 작품들이 무크지 형태로 발간되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영향을 받은 것 같습니다. 제가 사는 곳에서는 모든 것이 부족하고 문학적 환경은 늘 열악했습니다. 혼자 공부하고 스스로 모든 문제를 해결해야 했습니다. 그 후로도 달라진 건 별로 없습니다만.”

 

1955년 경상북도 영천에서 태어난 백무산은 1984년 『민중시』 제1집에 「지옥선」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시집 『만국의 노동자여』, 『동트는 미포만의 새벽을 딛고』, 『인간의 시간』, 『이렇게 한심한 시절의 아침에』 등을 창작 발표했다. 『노동해방문학』 편집위원을 지냈고 1992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

 

―1988년 발표된 첫 시집 『만국의 노동자여』는 압도적인 노동자 세계로 구현함으로써 한국 노동시의 지평을 확대했다는 평가를 받았는데요.

 

“열악한 상황 속에서 문학은 작은 위안이 돼 주었지만, 당시 국내 문학은 너무나 무기력하고, 현실도피적이었으며, 몽환적이었고, 퇴폐적이었으며, 독재 권력에 기생하고 부역했으며 현실을 외면했습니다. 주로 외국문학을 읽었지만 그마저도 정부 기관의 검열을 거친 책뿐이었죠. 1980년대 중반 이후 ‘민족문학’과 ‘민중문학’이라는 이름의 작품들이 힘을 얻기 시작했지만, 언론과 작가에 대한 탄압과 검열도 여전했고요. 1987년 민주화 운동이 전국적으로 전개되고 노동자 대투쟁이 시작되면서 ‘노동문학’이 독자적인 이름을 얻게 되었죠. 저는 1987년 민주화운동과 노동자 대투쟁을 직접 겪고 난 이후 그 과정을 정리한 시들을 시집으로 묶었어요. 그것이 바로 1988년에 출간한 첫 시집 『만국의 노동자여』입니다. 차분히 정리할 여유도 없었습니다. 현장의 목소리가 정제되지 않은 채 날것으로 토해낸 시들이었죠.”

 

―등단 이후 시 세계 흐름을 조금 알려주십시오.

 

“제가 처음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진 건 노동문제가 아니라 환경과 생태와 관련된 문제였습니다. 노동문제는 그 시대에 사상적으로 금기시되기도 했지만, 당시 공단 건설과정에 너무 많은 것이 파괴되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세계 최악의 오염 도시로 해외에도 악명이 높았고요. 강에 나가보면 악취가 진동하는 검은 물에 팔뚝만한 고기들이 끝도 없이 허옇게 뒤집어져 있곤 했지요. 대기오염 때문에 공단 주변사람들은 큰 고통을 받고, 바닷가 주민들은 알 수 없는 괴질에 시달려 죽어가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공장에서는 비용을 줄이기 위해 정화시설을 가동하지 않고 그대로 바다로 흘려보내 중금속 오염이 심각했습니다. 고기를 잡아놓고도 먹질 못하고 버렸지요. 저는 노동자인 우리들 문제 역시 그와 동일한 문제로 보았습니다. 한편으로는 자연에 가한 일을 다른 한편으론 인간에게 저지른 일이라고 생각했지요. 그 당시에 ‘생명의 회복’이라는 단어가 미숙하면서도 절실한 의미로 항상 뇌리에 맴돌았습니다. 자연을 파괴한 힘은 곧 나 자신을 파괴한 힘과 동일한 것으로 이해했기 때문이죠. 당연한 말이지만, 노동은 목적이 아니고 노동은 인간적이지도 않습니다. 노동과 역사 문제를 거쳐 점차 제 시는 노동과 인간의 역사 이전으로 시선을 옮겨가게 되었습니다.”

 

―시를 쓰면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원칙이나 방법이 있다면 무엇인지요.

 

“시는 ‘쓰기’와 ‘말하기’ 중간쯤이거나 말에 더 가까운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그 때문인지 몰라도 제가 쓴 시를 다시 읽지 못하는 습성이 있어요. 그래서 시를 오래 다듬질 못합니다. 그렇다고 즉석에서 쓰고 마는 것은 아니고, 오래 마음에 담겨져 있던 것이 밖으로 나오지만 그러고 나면 다시 읽어볼 마음이 내키지 않아요. 그래서 제 시집 관련한 행사에는 잘 가지 않거나 힘들게 치릅니다. 시 쓰기에 시론을 가지고 원칙을 고집하진 않지만, 시가 머리에서 나온 것인가 몸에서 나온 것인가, 그 구분은 꼭 하려고 합니다.”

 

백무산은 보통 오전 7시쯤 일어나서 밤 11시쯤 잔다. 딱히 고정된 일도 없어 간헐적으로 일할뿐이다. 가끔 사회단체나 후배의 일을 도와주거나 상담을 해주기도 한다. 글쓰기를 위한 일정한 시간이나 계획이 있는 것도 아니다. 보통 일을 하지 않을 때 글을 쓰거나 책을 읽는다.

 

그는 몸을 쓰는 활동을 여전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몸으로 생각한다, 는 관념은 그에겐 비유적이거나 생각의 방향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이고 구체적이다. 구석기인들이 그랬듯, 지리를 찾아다니는 일도 그의 일상의 일부. 특히 요즘에는 옛날에 가지 못했던 산에 다닌다든가 운동도 한다. 현재 인간이 안고 있는 거의 모든 문제는 정착에 대한 집착 때문이 아닌가, 도시에 살면서도 유목민의 기질을 잃지 말아야 한다, 는 생각에서다.

 

집을 나서도 그만이고 누워 있어도 그만. 그럼에도 시인 백무산은 질주하는 자본주의와 인간 문명의 어떤 입구에서 서성거리고 난감해 하기도 할 것이고, 때론 봄날을 입고 서기도 할 것이다.

 

“기계라는 스승에 효율이라는 성과임금에/ 책이라곤 사용 설명서나 팔리는 세상에/ 인간을 덜어내고 기계를 주입하는 것이/ 인간세의 우성 유전자/ 인간 따위가 왜 필요해 엄연한 기계세에/ 더 이상 인간이 될 이유가 어디 있어 골치 아프고/ 변덕스럽고 잔인하기까지 한 인간이/ 인간 닮은 기계는 없지 기계 닮은 인간 투성이지// 멈추고 벗어버리고 덜어내는 특권이 있지/ 아무것도 하지 않을 능력 말이야/ 그보다 멈춘다는 걸 이해하는 능력 말이야/ 그리고 네 곁에 내가 있어주는 일이지/ 곁에 있어주는 능력 말이야”(「곁에 있어주는 능력」 부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