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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퇴 압박 ‘53세 김부장’… 73세까지 내 일 꿈꾼다 [창간37-일하는 노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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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 시대’ 중장년 노동 실태

희망연령보다 20세 일찍 퇴직
재취업 어렵자 생계형 ‘묻지마 창업’
하루 14시간 일했지만 남은 건 빚
50대 이상 자영업 83% 1인 사장님
절반은 최저임금도 못 벌면서 버텨

해고 불안에 떠는 ‘김부장들’
감원 1순위… “임원은 임시직원” 자조
이른 은퇴 뒤 구직 정보 부족에 막막
“50대 숙련인력 中企 이직 지원 확대
경력 기반한 창·취업 교육 활성화를”
“지인이 퇴직 뒤에 편의점을 차리겠다고 하면 뜯어말려야죠.”


강원도 춘천에서 골프장 매니저로 일하는 장모(59)씨는 10년 전인 2016년 말 이른 퇴직을 했다. 중앙부처 산하 공공기관에서 22년간 몸담았던 그는 인생 2막을 빨리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컸다고 한다. 직전까지 연봉 8000만원대를 받던 그가 선택한 건 편의점 창업이었다. 소자본으로 뛰어들 수 있다는 얘기에 5000만원을 들여 가게 문을 열었다. 서울 동작구 대방동에서 3년을 버텼다. 하루에 14시간씩 근무하며 예상보다 더 지친 일상을 보내야 했다. 이후 그는 가족과 거주지를 옮겨 잎새버섯 재배에 나섰고, 그 역시 여의치 않아 2021년 다시 편의점 창업에 나섰다. 소위 ‘오픈빨’과 코로나19 당시 정부 지원금 등으로 근근이 생업을 이어갔다.

챗GPT 생성 이미지

김씨는 지난해 5월 계약 기간이 1년 남은 상태에서 본사에 위약금으로 900만원가량 물어 주고 이마저도 정리했다. 폐업 뒤 비슷한 업종으로 다시 창업하는 ‘회전문 창업’의 당사자가 된 셈이다.

지난해 6월부터는 골프장 매니저로 취직해 월급 280여만원을 받으며 일한다. 장씨는 “주 6일 근무에 잔디 깎기 등 일도 고되고, 월급도 적지만, 소속감 있는 직장 생활을 하게 된 것 자체가 좋다”며 지금 생활에 만족한다고 1일 밝혔다. 그는 창업이 인생 경험이 되긴 했으나 절대 쉬운 일도, 추천할 일도 아니라고 잘라 말했다.

일하는 고령층(55~79세)이 지난해 처음으로 1000만명을 넘어섰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고령층 10명 중 7명은 계속 일하고 싶어하며, 희망 근로 연령은 평균 73.4세다. 퇴직한 중장년들은 마땅한 일자리를 찾기 어려워 생계형 창업에 내몰리는 경우도 흔하다.

◆자영업 전환 고령 83% ‘나홀로 사장’

평생 자신이 일했던 분야에서 다른 분야로 창업한 중장년들은 최저임금 이하 소득으로 사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고용정보원이 지난해 발간한 ‘고령자의 자영업 이동과 저임금 노동’ 보고서에 따르면 2006∼2021년 중 1년 이상 임금 근로자였던 사람 중 2022년 자영업에 종사하고 50대 이상 대부분(83.4%)이 고용원이 없는 자영업, 즉 나 홀로 사장님이었다. 국가데이터처 조사 기준 전체 고용원이 없는 자영업자 비율(76.5%)보다 더 높은 비중이다.

이들이 월 최저임금 이상을 벌 확률은 반반이었다. 48.8%는 2022년 기준 월 최저임금(199만4440원)에 못 미치는 소득을 벌고 있었다. 경험이 있는 분야에서 일한 뒤 동일 산업으로 창업했을 때는 그나마 소득이 높아졌다.

서울 관악구에서 아로마 공방을 운영하는 황경화(57)씨도 29년을 다닌 통신 회사를 그만둔 뒤 창업에 나선 사례다. 2022년 11월 공방 문을 연 황씨는 소득에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있기에 운영을 이어갈 수 있는 것 같다고 털어놨다. 나홀로 사장님인 그는 “벌이는 회사 다닐 때 대비 3분의 1 수준”이라며 “평생 하고 싶던 일을 한다는 데 의미를 두고 있다”고 했다.

황씨는 중장년 창업 지원 제도가 양적으로 적진 않다고 체감하지만, 일부는 ‘중구난방’인 점을 지적했다. 그는 “정보 검색을 잘하는 사람은 중소벤처기업부나 지자체 지원금을 챙겨 받는 거고, 그렇지 못하면 사업자 등록금 내면서부터 헤매기 시작한다”며 “기관마다 지원금이나 세무 상담 등 제도가 분산될 게 아니라 하나로 통합되면 좋겠다”고 했다. 중장년 창업자를 대상으로 한 정보기술(IT) 교육 등도 강조했다. 그는 “요새 홍보는 다 인스타나 유튜브로 해서 자녀 도움에 기대야 한다”며 교육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임원은 임시직원… 불안 커”

번듯한 회사로 출근하는 중장년들도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유통 중소기업에서 임원으로 재직 중인 김모(56)씨는 최근 방영된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를 일부러 보지 않았다. 인터넷 기사로 내용을 대략 접하고 너무 공감 가는 이야기일 것 같았다고 한다. 김씨는 “너무 내 얘기라 감정적으로 힘들 게 뻔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김씨는 틈틈이 재취업 시장 정보를 알아보곤 한다. 그는 “임원은 ‘임시 직원’이란 말이 있듯 실적이 떨어져 재계약을 못 하면 그게 해고”라며 “이 나이에 임원으로 있는 게 불안감이 최고조에 달하는 시기”라고 토로했다. 올해 27살이 된 아들이 있는 만큼 소득이 계속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김씨의 근심은 결코 개인적이지 않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주된 일자리(평생 가장 오래 근무한 직장)에서 은퇴하는 나이는 지난해 기준 52.9세로 법적 정년(60세)보다 훨씬 이르다.

김씨는 “친구들끼리 만나면 ‘경비밖에 할 일이 없지 않냐’는 농담 섞인 말을 한다”며 “은퇴 뒤 취업 정보를 어디서 접해야 하나 답답할 때가 많다”고 했다. 인터넷으로 구직하던 시절을 겪지 않은 탓에 막막함은 더 크다.

전문가들은 변화하는 노동 시장에 중장년들이 적응할 수 있도록 지원이 필요하다고 제언한다. 노민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중소기업정책연구실장은 “인공지능(AI)을 활용한 교육 등 변화한 시장에 대응하는 재취업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며 “퇴직한 50대 숙련 전문 인력이 일손이 부족한 중소기업으로 연결될 수 있게 기업을 대상으로 한 고용보조금 지원도 확대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묻지마 창업’도 경계해야 한다. 노 실장은 “과밀 창업 문제로 초기 투자금도 못 건지는 경우가 숱하기 때문에 철저한 준비가 중요하고, 정부는 혁신 창업 중심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도 “주된 일자리에서 이탈한 중장년이 선택할 수 있는 게 그나마 자영업인데 생각보다 노동 강도가 세고, 소득이 안 되니 정리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며 “이런 경향이 확대하면 경제 전체의 위험 신호로 이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노동 시장을 지탱하는 중장년층이 무너지지 않도록 정부 모니터링이 중요하고, 창업에 나서는 사람들에게는 경력을 활용할 수 있도록 교육 훈련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