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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미의감성엽서] 타자기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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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타자기로 시를 쓰던 때가 그리워진다. 키를 누를 때마다 활자 막대가 종이판을 탁탁, 타다탁 치는 맑은 금속성 소리와 줄 바꾸기 직전, 딩~ 하고 울리던 경쾌한 종소리! 마치 나와 타자기가 혼연일체가 되어 글쓰기 작업을 하는 듯했던 그 시절이. 밤늦게 작업할 때면 타자기 소리가 조심스러워 한여름에도 문 꼭꼭 닫아걸고는, 조마조마 시작(詩作)에 몰두하던 시절이, 지금보다는 훨씬 더 치열한 시인이었던 그 시절이. 특히 이렇게 눈이 펑펑 내리거나 온 세상이 꽁꽁 얼어붙은 것 같은 한겨울엔 더욱더.

 

아마도 귄터 그라스의 ‘유한함에 관하여’를 읽다가 그가 1950년대 결혼 선물로 받은 올리베티 레테라22. 평생 그 타자기만으로 글을 썼다는 부분에서 감동받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다 말년엔 그 타자기 리본을 쉽게 구할 수 없어 전전긍긍했는데 그의 스페인 대학생 독자들이 새 리본 한 꾸러미를 그에게 보내주었단다. 평생 쓰고도 남을 만큼. 나는 이런 부분에 쉽게 감동한다. 대가들의 절대 바꾸지 않는 한 가지 고집스러움.

그러면서 평생 같은 모델의 타자기를 고집하며 글을 쓴 작가들이 또 누가 있을까. 헤아려 본다. 확실히 내가 아는 작가들만 짚어도 귄터 그라스, 토머스 핀천, 코맥 매카시, 조안 디디온, 폴 오스터, 제임스 볼드윈 등등이다.

 

그중 코맥 매카시! 그도 놀라운 작가다. 1963년 어느 날, 전당포에서 올리베티 레테라32를 50달러에 산 후, 2023년 타계할 때까지 그 모델 타자기로만 글을 썼다고 한다. 물론 너무 낡은 타자기를 중간에 새 타자기로 한 번 바꾸긴 했지만. 토머스 핀천 역시 올리베티 타자기를 고집한 아날로그 글쓰기 작가로 유명하다. 2024년 세상을 떠난, 우리가 무척 좋아하는 폴 오스터, 그도 타자기 사랑이 열렬했는데 그가 평생 쓴 타자기는 올리베티가 아니라 독일제 올림피아란다.

 

그렇담 왜 그들은 컴퓨터를 쓰지 않고 타자기를 고집했을까? 그건 아무래도 타자기의 가장 좋은 점, 집중도와 몰입감 때문이 아닐까. 특히 올리베티 타자기의 뛰어난 기계적 완성도(고장이 잘 안 나는)와 다양한 색상, 모던하고 우아한 생김새, 그리고 길든 친구 같은 정다움과 일체감이 아닐까. 언젠가 빨간색 올리베티 타자기를 사진으로 보았는데 정말 예쁘고 사랑스러웠다. 저 타자기로 글을 쓰면 금방 정이 들어 엔도르핀이 저절로 솟아날 것 같았다.

 

어떤 타자기를 썼든 그들은 모두 대단한 작가들이다. 디지털 기기의 유혹에 빠지지 않고, 오직 글쓰기에만 집중할 수 있는 타자기를 고집하며 오직 한 가지 목적인 글쓰기에 전력을 다한 작가들이다. 내가 타자기로 글을 쓰던 그 시절을 돌아보면, 그때만큼 집중과 몰입이 잘되고, 컴퓨터처럼 쉽게 수정할 수 없기에 단어와 문장 선택에 신중에 신중을 가했던 것 같다. 가장 좋은 점은 아무래도 세상 한가운데 타자기와 나만 있는 듯한 혼연일체감이 아니었을까. 전자책과 종이책의 확연한 차이처럼.

 

김상미 시인